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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불교 넘어 회통의 문을 연 중국불교 사상사의 ‘터닝포인트’

  • 출판
  • 입력 2023.03.29 19:44
  • 수정 2023.03.30 12:57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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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론-불교철학의 자기 넘어섬과 실현
승조 스님 지음 / 자운 스님 주해/ ​​​​​​​학담 스님 평석 / 푼다리카 / 1199쪽 / 5만원

‘조론’은 ‘희대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승조 스님(僧肇, 384~414)의 저술이다. 승조 스님은 현장 스님(玄奘, 602~664)과 더불어 중국불교 역경사의 양대 산맥인 구마라집 법사의 역장에 참여하며 격의불교의 한계에 갇혀 있던 중국불교에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연 인물이다. 승조 스님은 ‘조론’을 통해 남북조시대 중국인들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도불교 공(空) 사상과 반야, 열반, 연기, 중도 등 불교의 핵심 개념들을 중국의 언어로 정의,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의 토대를 닦았다. ‘노자’ ‘장자’ ‘논어’ 등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을 과감히 끌어들여 불교의 핵심 교의를 설함으로써 제가사상이 장악하고 있던 중국 사회에서 불교가 중심철학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는 중국불교의 새 지평이자 이후 수·당 시대 불교가 사회 통합의 중심 이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조론’은 그 표현이 함축적이고 내용 또한 심오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논서로도 손꼽힌다. 이러한 ‘조론’에 주석과 해설을 붙인 인물은 자운준식 스님(慈雲遵式 964∼1032)이다. 자운 스님은 고려 보운의통 스님의 제자로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승조 스님이 조론에 담아낸 깊은 안목이 자운 스님의 주해를 통해 비로소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것이 학담 스님의 평가다.

학담 스님.
학담 스님.

앞서 ‘육조법보단경’ ‘학담평석 아함경’ 등의 저서를 통해 경전에 대한 깊은 안목을 드러낸 바 있는 학담 스님은 조론의 번역과 더불어 자운 스님의 주해를 상세히 수록하고 그 뒤에 스님의 평석을 붙였다. 선방 수좌였던 학담 스님이 30대에 처음 강의를 시작하며 선택한 책이 ‘조론’이었다. 하지만 그 번역과 이해에 한계를 느낀 학담 스님은 이후 50대에 이르기까지 ‘조론’ 번역에 매진했다. 그리고 자운준식 스님의 주해를 만나고서야 비로서 ‘조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무려 50여 년에 걸친 스님의 수행과 교의 참구가 이 책 한 권에 녹아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학담 스님은 “승조 스님은 구마라집 법사의 회상에서 역경에 참여했지만 이미 그 과정에서 깨달음의 안목을 얻었을 것”이라며 “구마라집 법사 또한 승조 스님의 ‘반야무지론’을 보고 그 경지를 인정했다는 점은 승조 스님이 20대에 이와 같은 논서를 집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학담 스님은 이 책을 편찬하며 ‘불교철학의 자기 넘어섬과 실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는 ‘조론’이 오늘날 한국불교에 시사하는 점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론’은 불교의 핵심 사상들을 설하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 같은 이야기를 다른 단어와 해설로 이야기하던 남북조시대의 불교를 하나로 통합해 주는 길을 열었다. 특히 도가와 유가로 크게 양분돼 있던 중국에서 불교가 중국 사회의 보편철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조론’의 영향이 크다는 점에 스님은 주목한다.

“'조론'은 초기 전역 시대에 이미 '연기'라는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실상' '돈오'와 같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회통할 시각을 열어준 논장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유효한 회통과 화쟁의 철학입니다. 연기, 실상, 중도가 한 뜻이라는 승조 스님의 설명은 선불교에 기울어져 있는 오늘날의 한국불교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간화선은 수행의 방법론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느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느 문을 택하든 문을 통과한 후에는 깨달음이라는 하나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선종의 수행관이 간화선과 같은 특정한 방법론을 붙들고 있어 많은 수행자들에게 수행관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책 말미에 ‘보장론’ 번역본을 수록한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보장론’은 승조 스님의 저술이라고 전해 지지만 그 문체와 전승 배경에 비추어 승조 스님의 이름을 빌어 쓴 후대 누군가의 저술이라는 것이 오늘날 대다수 학계의 평가다. 그러나 학담 스님은 “‘보장론’이 승조 스님의 저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채택해야 할 것은 ‘그 내용이 불교의 근본에 접근하고 있는가’ 이다”라며 “특히 ‘보장론’에 대한 번역과 연구가 아직 미진한 한국불교계에서 이에 대한 접근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별도의 주해 없이 번역만을 시도했다”며 더 많은 후학들의 정진이 뒤따르기를 희망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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