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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율주 덕문 스님

단 한 곳이라도 대중이 화합해 정진하는 곳 있으면 정법시대입니다

생전예수재‧가사불사 등 여법한 의식도 믿음‧이해 필요
신심을 바탕으로 의식에 참여할 때 목표도 명확해질 것
여실히 보고 정진해서 부처님 제자답게 능력 발휘하길

덕문 스님은 “목표가 뚜렷하고 방법이 뚜렷하고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뚜렷해야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것”이라며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덕문 스님은 “목표가 뚜렷하고 방법이 뚜렷하고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뚜렷해야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것”이라며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계묘년 윤 2월을 맞이해서 통도사에서는 생전예수재와 가사불사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불교 의식에 대해 잘 모를 때만 해도 의식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차 사찰에서 하는 의식 하나하나에 근거가 있고, 반드시 부처님께서 적극적으로 권하셨고, 여러 전적을 통해서 검증되고, 또 그 법회들을 통해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가사(袈裟)를 ‘복전의(福田衣)’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사 불사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가사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미율의’에 보면 열 가지로 가사의 공덕을 설명합니다. 내용 중에 ‘만약 조그마한 가사 조각 하나라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가 용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용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용을 잡아먹을 정도니까 금시조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닌 새이겠습니까. 그러한 금시조가 용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가사 조각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용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큰 위신력을 가진 것이 가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사는 일반적으로 보면 그냥 천 조각입니다. 천 조각이 어떤 요술을 부려서 그런 힘을 발휘하는 조건으로 바뀌게 되는 것일까요?

부처님마다 교화하시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극락, 즐거움만 있는 나라로 장엄을 해서 그 장엄으로 교화를 하십니다. 그 세계에 가면 착한 즐거움만 있어서 수행하겠다는 마음만 내게 됩니다. 이렇게 장엄으로 교화하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유마경’에는 ‘향적여래(香積如來)’라는 분이 등장합니다. 그분의 경우는 향기로 교화를 합니다. 그 향기만 맡으면 모든 번뇌가 다 없어져서 부처님 나라에 능히 살 수 있는 변화들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 방법은 더 좋습니다. 언설(言說), 말씀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법문을 통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처럼 공감할 만한 내용을 말해서 청중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내면 그 마음의 수준에 맞게 자신의 능력이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법문을 통해서 가능한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의식을 통하는 것입니다. 청정하게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가사를 공양 올리는 가사불사도 회향하는 날 종정스님께서 증명하시고 의식에 아주 밝은 스님들께서 점안의식을 여법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계율에서는 ‘갈마(羯磨)’라고 표현합니다. 갈마는 범어의 ‘까르마’라는 단어를 한문으로 바꾼 것입니다. 부정적인 업이 긍정적인 업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음력 3월이 되면 통도사에서는 보살계 수계 산림을 합니다. 보살계 수계의식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보살계를 받게 되면 그 순간 범부의 몸이 아닌 보살의 몸으로 바뀐다. 대지를 황금칠보(黃金七寶)로 변화시키고, 강물은 소와 낙(酪)과 제호(醍醐)로 변화시키고….” 여기서 황금이나 칠보는 세상의 귀한 것을 말합니다. 강물도 아주 좋은 음식으로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만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의식이 그런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갈마와 관련하여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여법하게 갈마를 하면 금강륜(金剛輪)이 이루어져서 겁화(劫火)에도 파괴되지 않는다.” 금강륜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 대지가 황금칠보보다 더 좋은 다이아몬드로 바뀌는 것과 같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금강은 이 세상 그 어떤 강한 것으로 충격을 가해도 깨지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완전하게 파괴하는 재앙인 겁화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실하게 변화 하나하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가사불사, 생전예수재와 같은 법회에 동참해서 우리가 무엇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한 결과물은 어떻게 나오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의 삶이 법회에 동참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느낌도 있어야 하며, 구체적인 여러 가지 변화도 알고 또 그 원리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누군가 “절에 뭐 하러 다녀요?”라고 물었을 때 “지금 절에는 어떤 불사가 있는데, 또는 어떤 공부를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이러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고 그것이 구체화 되면 우리의 삶이 정말 ‘대박’ 인생으로 바뀌기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내어 절에 다니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자녀들이나 어린 손주들이 물을 때 “너희들 좋으라고 다녀.”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의식을 통해서 금강륜이 이루어지고, 그 금강륜이 이루어지면 겁화에도 소멸되지 않는 능력들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한 곳이라도 여법하게 갈마를 하고 대중이 화합해서 정진하는 곳이 있으면 그 시대는 정법시대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통도사에는 어른 스님도 많이 계시고 또 청정하게 정진하는 스님들이 많이 계셔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대중들이 다 좋다고 할 때까지 논의하는 갈마를 해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갑니다. 또 여러 법회를 할 때 그 법회가 여법한 지 아닌지를 잘 따져서 동참하는 분들이 후회 없이 긍정적으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애쓰는 대중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법한 도량이고,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는 정법시대, 부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는 시대입니다. 부처님께서 늘 상주하시고, 우리가 하는 여러 일을 늘 증명해주시고, 늘 가르침을 주시고, 그런 도량에 인연을 맺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는 것은 정법시대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 기도와 불사는 어떤 것인가, 어떤 원리로 변화들이 가능한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다 보면 ‘내가 참으로 연금술사구나’ 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불공할 때 ‘삼보통청(三寶通請)’을 합니다. 삼보통청 할 때 ‘사다라니(四陀羅尼)’라고 해서 변식진언(變食眞言)도 외우고 시감로수진언(施甘露水眞言)도 외웁니다. 그리고 혹시 조금이라도 빠진 것이 있으면 보완해서 원만하게 성취될 수 있도록 보궐진언(補闕眞言)도 합니다. 이렇게 의식 하나하나가 치밀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의식을 여법하게 하더라도 불자님들이 믿는 마음이 없으면, 의식하는 중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곤란합니다.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할 때도 ‘지금 부처님 전에 올린 한 불기의 마지가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려도 남을 그런 음식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정확하게 관상하시기 바랍니다. 

불자님들께 “가난합니까? 부자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나는 무엇이 부족해요.” “나는 무엇이 없어요.” 이런 답이 많습니다. 무엇이 그리 없습니까? 다 갖추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일곱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은 거지가 아니다.” 이제 거지 생각을 버리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부자의 생각으로 삶을 설계하고 살아보라는 내용이 ‘법화경’입니다.

수행이 별 것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스님, 저는 번뇌가 많습니다. 참선하려고 앉아 있으면 무슨 번뇌 망상이 그리 많은지 공부할 체질이 아닌가 봅니다.” 때로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불자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어제의 번뇌와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켰을 때의 번뇌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제의 번뇌와 오늘의 번뇌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을 여실히 보면 정말 열심히 목숨 걸고 수행할 수밖에 없는 신심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불사에 동참하는 것, 의식에 동참하는 것도 그러한 신심을 바탕으로 합니다. 또 그 신심으로 참여할 때 정확해질 수 있습니다. 신심이 없으면 그저 ‘남들이 좋다니까, 남들이 하니까 그냥 나도 한번 따라서 해보자.’ 이렇게 됩니다. 목표가 뚜렷하고 방법이 뚜렷하고 이루어내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뚜렷해야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것입니다. 

뚜렷한 신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특별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불자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스님들도 의식을 진행하기가 더욱 수월합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망념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롯하게 의식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대중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정진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으로 열심히 정진하셔서 모두 목적하는 바를 다 이루시기 바랍니다. 모든 불자님이 삼계의 대도사이시며 사생의 자부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답게 능력을 발휘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4월2일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덕 스님) 설법전에서 봉행된 ‘가사불사 및 생전예수재’ 5재 법회에서 영축총림 율주 덕문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77호 / 2023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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