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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조의 스승, 무상대사-하

기자명 정운 스님

티베트에 선을 전한 최초의 선사

삼매 들 방편으로 염불 활용
​​​​​​​선종에 영향 준 정중종 조사 
중국 오백 나한 중 455번째 
종밀로 무상·마조 관계 확연

무상의 대표적인 선사상은 인성염불과 3구(三句)설법이다. ‘역대법보기’에 전하는 내용을 보기로 하자. “무상대사는 매년 12월과 정월달에 사부대중 백천만인에게 계를 주었다. 그는 엄숙하게 도량을 시설하고 스스로 단상에 올라가 설법하였다. (제자들에게) 먼저 소리를 내어 염불하도록 하고(引聲念佛), 마음을 다하여 집중해 소리가 가늘어지면서 끊어지려는 무렵,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억(無憶) 무념(無念) 막망(莫妄)하라.’”

이는 인성염불을 말한다. 무상대사는 염불행자·정토행자는 아니다. 다만 삼매[=선정]에 쉽게 들기 위한 방편으로 염불을 활용하였다. 단지 부처를 염해 청정한 자성 자리에 입각한 본성을 자각하기 위한 것이 무상대사가 활용한 인성염불의 의미이다. 이는 누구라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방편이다. 

▲무상의 선종사적 위치= 첫째, 무상은 중국에서 선종 종파가 성립되기 전에 활동했다. 곧 하택신회가 혜능을 6조로 치켜 올리는 현창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종파를 ‘남종’이라고 명명했다. 몇몇 선종의 선사들도 자파의 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정중종(淨衆宗)도 이때 서남 지역의 선종 종파로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무상은 정중종의 조사로서 중국 초기선종사에 영향을 미쳤다. 둘째, 무상의 선(정중종)이 티베트 불교에 최초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원래는 선종사에서 치손데첸왕 때에 북종선의 마하연 선사가 781년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들어감으로써 선을 전한 최초 선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돈황에서 고대 유물과 경전이 출토되어 ‘역대법보기’가 발견되면서 이전 기록에서 알 수 없었던 무상의 모습이 드러났다. 즉 돈황 자료가 발견됨으로써 티베트에 최초로 선을 전래한 선사가 신라인 무상대사로 재평가되었다. 셋째, 무상은 중국불교에서 공인한 500나한 가운데 455번째 나한으로 모셔져 있다. 넷째, 무상은 동아시아 선종 조사선의 개조인 마조의 스승으로 인식되고 있다. 

▲무상과 마조가 조우했을 가능성= 첫째, 마조가 태어났던 고향·출가지·삭발한 곳이 모두 사천성이다. 한편 무상대사 또한 사천성에서 수행하고, 줄곧 이곳에서 활동하고 열반하였다. 게다가 ‘처적’ 선사는 마조에게는 삭발해준 스승이요, 무상에게는 법을 전해준 스승이다. 이런 공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 분이 조우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무상대사가 사천성에 머물 당시, 대략 세납 45세이다. 무상대사가 729년 무렵부터 사천성에 머물기 시작해 평생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조는 출가 당시 20세 전후로, 728년 혹은 729년이다. 출가 후 수년간 사천성에 머물다 호북성으로 옮겨갔다. 정리하면 무상과 마조가 수년간 사천성에 함께 머물러 있었다. 무상과 마조의 세납 차이는 25년이다. 필자가 이곳을 모두 순례했는데, 무상과 마조의 활동 지역이 모두 지척거리였다. 셋째, ‘무상·무주, 마조·서당의 진영을 모시고 공양하였다’는 시인 이상은(812∼858)이 쓴 ‘사증당비(四證堂碑)’의 기록이 있다. 즉 사천성 삼대현 장평산에 위치한 혜의정사 조사당에 무상과 무주, 마조와 서당의 진영을 벽화로 그려놓고, 공양올렸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이 사찰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복원 중이었다. 도량은 퇴락했지만 부처님도 그대로 모셔져 있었고, 몇십 년 전까지만해도 승려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넷째, 무상과 마조의 사제 관계를 제기한 인물이 종밀이다. 종밀(780∼841)의 고향도 사천성이다. 그는 출가 전 유·불·도에 뛰어났고, 여러 유학자·도사·승려와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28세 출가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꽤 늦은 나이다. 그는 사천성 출신으로 30년을 그곳에 머물렀는데, 무상과 마조를 몰랐을 리가 없다. 어쩌면, 무상과 마조는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운 법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섯째, 무상대사에 관련된 기록이 최치원의 지증대사적조탑비에도 기록이 전하고, 사굴산문 범일의 제자인 행적(行寂, 832∼916)의 기록에도 ‘무상의 영당에 찾아가 예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다. 당연히 신라국 승려들은 입당해 무상대사의 행적지를 순례코자 했을 터이다. 또한 신라 승려들이 마조계 문하에 찾아갔던 것은 마조가 무상의 법을 받았다는 소문이 신라 승려들에게는 인지된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무상과 마조를 스승 제자 관계로 추측해볼 수 있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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