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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참여불교와 불교윤리

비폭력적 불교 사고에 바탕을 둔 시대적 행동

참여불교는 틱낫한 스님이 베트남 불교 반전운동 기술 위해 사용
1893년 세계종교의회를 기점으로 서구이념과 가치 불교 내 수용
참여불교는 불교윤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함께 녹아 있어

참여불교는 아시아와 서구의 가치체계가 수렴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비폭력적 실천방식이다. [법보신문DB]
참여불교는 아시아와 서구의 가치체계가 수렴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비폭력적 실천방식이다. [법보신문DB]

불교윤리의 역사는 참여불교의 전개 과정과 상황적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쯤에서 참여불교의 성립배경과 지향점에 대해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본으로 삼은 논문은 크리스토퍼 퀸(Christopher Queen)이 쓴 ‘65살의 참여불교:공통 가치의 뉘앙스를 읽다(Engaged Buddhism at Sixty-Five: Nuancing The Consensus)’ (Journal of Buddhist Ethics(vol.30, 2023)이다.

저자는 불교윤리 행동의 네 가지 중첩되는 길(path)들인 ‘계율, 덕목, 이타주의, 참여’ 중 마지막의 ‘참여’를 참여불교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이라고 평가한다. 사실 불교윤리의 네 가지 길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활동가들에 의해 폭넓게 실천되고 있는 가치들이다. 이 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계율(살생과 도둑질, 성적 비행, 해로운 말과 취하게 하는 것을 삼감); 덕목(자애, 자비, 기쁨, 평정심, 관대함, 도덕성, 참을성, 활력, 집중, 지혜 등의 함양); 이타주의(사회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하기); 참여(인간의 고통과 환경의 손상에 대한 사회적 원인과 제도적 원인을 지적하는 집단적 행동).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났던 불교의 역사와 해방 운동들에서 윤리적 계율과 덕목 및 집합적 이타주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들은 확실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불교’의 독특한 특징들은 현대의 인권 개념과 사회 정의, 비폭력 항의, 평화 만들기(중재), 제도 개혁 및 체계적 사회변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굳건하게 정착했다. 이런 사유들은 이전의 불교사상과 행동의 특징이 아니었다. 이 새로운 현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반에 아시아와 서구의 가치체계가 서로 수렴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1950~1960년대에 등장하여 불교권 국가들로 퍼져나간 참여불교 운동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 그런 점에서 참여불교가 사회 봉사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모든 불교가 참여적이었으며 언제나 그랬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도 참여불교라고 불리던 단체나 조직들은 비폭력적이었다.

물론 불교의 역사에서 폭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와 미얀마 정부가 주도했던 내전과 인종청소 캠페인들은 역사학자들이 참여불교라고 규정했던 비폭력적 패러다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자부심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할 필요는 없다. 많은 참여불교도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인종적 유산 및 종교적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의 자부심과 헌신을 당당하게 표명했다. 그렇다고 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암베드카르가 아쇼카 대왕의 법륜과 사자 도상을 인도의 국기와 화폐의 현대적 상징으로 삼자고 제안했을 때, 마하 고사난다가 시민들에게 킬링필드였던 은신처로부터 나오라고 촉구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거리를 걸었을 때, 슐락 시바라크사가 태국이 아니라 불교도 샴족(Siam)의 종교적 가치를 고수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나 체포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 참여불교도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깊은 애국심을 드러냈다. 이들의 행위 동기는 국가와 진리에 뿌리를 두었으며, 그들의 실천 행동은 그야말로 비폭력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교학자들은 ‘참여불교’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불교’ ‘불교 해방 운동’을 불교의 폭력성과 연관 짓지 않는다. 여기서 보듯 폭력적인 참여불교는 하나의 모순어법(oxymoron)으로 인식될 만큼 참여불교는 비폭력적인 가치추구를 지향하는 불교 사회 운동으로 각인되었다.

참여불교란 용어는 틱낫한이 1960년대 베트남의 사찰들이 이끌었던 비폭력 반전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많은 활동가와 학자들은 지역의 역사적 상황에 맞게 참여불교를 받아들이고 또한 이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오늘날 참여불교의 범위는 봉사에 기반을 두거나 마음 챙김에 바탕을 둔 ‘약한 목적(soft-end)’의 참여로부터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강한 목적(hard-end)’의 참여로 이어지는 하나의 광범위한 연속체로 파악되고 있다. 일부 불교도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관심사와 정체성이 참여불교와 유사하므로 넓은 의미의 참여불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의 참여불교는 하나의 통일된 지구적(global) 운동이 아니라 온 세계의 개인들과 집단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동기부여를 제공했던 사상과 행동의 한 양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불교의 요소들은 불교가 실천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목격할 수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참여불교는 토마스 야르날이 주장하듯이 아시아의 신심 깊은 불자들에게 제공하려고 ‘아시아의 재료로 미국에서 만든 물건’은 결코 아니다. 신 식민주의적이거나 오리엔탈리즘의 음모론일 수도 없다. 1893년의 세계 종교 의회(the 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를 기점으로 아시아의 불교도들은 동시대의 가치들인 과학, 사회정의, 인권 등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반영하는 미래의 지구적 불교에 대해 그들만의 고유한 비전을 과감하게 선언했다. 아시아의 참여불교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서구의 이념과 가치들을 서구의 불교도들과 학자들이 고대 불교의 저술들을 깊이 음미하면서 아시아 각국의 사찰들에서 수행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가르침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말하자면 참여불교는 불교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시대적 행동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실천적 관점으로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참여불교는 4.0 내지는 5.0의 불교 버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참여불교에는 불교윤리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가 다 녹아 있다. 싫든 좋든 ‘관념의 깊이’는 ‘실천의 넓이’를 통해 그 진리성을 입증받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시대를 거치면서 종교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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