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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꿈

기자명 성원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05.01 13:33
  • 수정 2023.05.01 13:38
  • 호수 1679
  • 댓글 0

오랜 세월 전에 넘어진 경주 남산 열암곡의 마애부처님을 바로 세우자는 원력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중흥을 꿈꾸는 ‘천년을 세우다’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있었다. 모든 불자들에게 종책 방향을 명확히 전하고 함께 나아가자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영상으로 내용을 접한 불자를 만났다. 대뜸 “십년, 백년도 아니고 천년을 꿈꾸고 준비하는 불교의 모습에 사람들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한다”며 자신도 “묘한 자긍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시시각각 흘러 밤과 낮을 만들고, 일일이 흘러 계절을 만들어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연년이 흘러 산하대지의 모습까지도 바꾸어간다. 이러한 자연의 변화뿐만 아니다. 시간은 옳고 그른 일까지 변화시킨다. 한때 정의로웠던 일이 바뀌어 부정한 것이 되기도 하고 당시에는 부적절한 견해가 정당성을 가지기도 한다. 

일상에서 피부로 와 닿는 일 중에 출산문제가 그렇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다출산은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공식표어까지 나왔을까? 지금은 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 최고의 화두로 떠올라 있다.

사회적 문제도 그렇지만 사상적 문제는 시류에 더욱 민감하다. 한때 정의라는 이름으로, 또는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심지어 살상까지 벌어졌던 사안들이 오늘날 관점이 바뀌며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새로운 사실로 평가가 제대로 내려져 서로 화합된 경우는 별개의 문제다. 제주4.3문제 같은 경우 국가 국가 최고의 사법기관에서 그 부당성을 질타하고, 정당성을 인정했음에도 비록 소수의 의견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표출하는 경우들이 여전히 많아 여러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시공간에 갇혀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정당과 부당을 오가며 방황한다. 그 옛적 세존이 살아계셨던 시기에도 이러한 현상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부처님은 시간과 지역의 굴레를 벗어난 불변의 진리를 찾아 고민했다. 무엇보다 일생이라는 유한한 삶 속에서 영원불멸의 진리를 찾아 나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존경을 받는 분, ‘세존’이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출가했을 때 행자실에는 ‘신심으로 욕락을 버리고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자들이여!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히 걸어서 가라’는 우바리존자의 말씀이 걸려 있었다. 출가 직후 이 게송을 접하면서 영원성에 대해 수없이 사색한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는 ‘영원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었다면 이제는 ‘영원성을 갖춘 가치가 우리들에게 왜 이토록 간절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불교는 시간을 초월한 의지를 불태운다. 티베트의 밀라레빠 성자께서도 ‘우리 함께 있다해도 영원을 기약하지 못할 것, 나 불멸의 진리를 찾아 수행에 정진하리라’는 게송을 전하고 있다.

천년을 세우겠다는 원력을 듣고 천년의 시간에 놀랐다지만 영원불멸의 진리를 찾아 길을 나섰고, 일체중생의 영원한 안락을 꿈꾸는 우리 불교의 관점에서 어쩌면 천년은 짧은 시간이지 않을까?

부처님오신날 가장 애용하는 발원문 첫 구절 ‘우주에 충만하사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만유에 평등하사 두루 살펴주시는 부처님!’을 다시 보면 만유세월의 영원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천년의 시간을 세우는 일’에 당당하면 좋겠다. 현재는 늘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길게 생각하면 고통도 쾌락도 그토록 몸부림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불멸의 진리를 찾아 나섰고, 영원의 진리를 체득하신 부처님 제자답게 우리도 장대한 시간 위에서 좀 더 유유자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열암곡에 누우셔서 천년의 세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신 부처님께 지극한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성원 스님 조계종 미래본부 사무총장 sw0808@yahoo.com

[1679호 / 2023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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