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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공직생활의 시작과 사법과 합격

3연속 차석·최연소 합격이란 결과

상공부 행정관 임명돼 근무
와선과 새벽 예불 어려워져
사법과 합격으로 고시 마무리
한국전쟁 발발 후 차출되기도

통보받은 대로 지정된 날에 경남도청에 있는 총리 비서실을 찾아가니, 제3회 고시 행정과 합격자 중 8~9명이 나와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미국 유학 준비라 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은 이미 행정기관에서 주사(主事)로 근무하고 있어 실무수습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비서실에서 10여분을 기다리는데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정장을 입은 사람이 차를 가져다주면서 총리 수행비서관인 김영삼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당시에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뒤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였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총리 비서관 한 분이 와 회의실로 자리를 옮기도록 안내했다. 그를 따라가니 2열로 줄을 지어 서라고 했다. 줄을 서 있자니 장택상 총리가 들어와 간단히 훈서를 한 다음 임명장을 나눠줬다. 나는 상공부 근무 수습행정관으로 임명됐다. 임명 날짜가 3월7일 바로 당일이었기에 다음날 출근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공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기에 앞서 차를 가져다 준 김영삼 비서관에게 위치를 물었다. 그는 상공부는 “토성동의 남선전력회사 건물을 함께 쓰고 있다”며 토성동 전차정류소 바로 옆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히 가르쳐줬다.

공직생활이 시작되자 내 일상은 자연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간장종지를 이용한 와선과 아침 일찍이 하는 예불독경(禮佛讀經)이 어려워졌다. 생각 끝에 예불독경은 잠자리에 들기 전으로 하고 간장종지를 이용한 와선을 갈음하여 내가 늘 몸에 지니고 있는 단주(短珠)를 가슴의 명치 바로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현실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상공부에 출근하기 시작한 지 약 2개월이 지난 5월 중순, 그해 2월에 실시한 제4회 사법과의 필기고사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나는 다행히 16명의 합격자 속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약 1주일 뒤 구술고사에도 합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선고께서 기뻐하심은 필설로 다 나타낼 수 없을 정도다. 일부러 부산에서 열린 합격증서 수여식에도 참석했다. 국가고시를 향한 나의 긴 여정은 막을 내렸다.

1951년의 제2회 보통고시를 시작으로 52년, 53년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를 통틀어 볼 때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타났다. 나는 제2회 보통고시 합격자 36명 중 차석, 제3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자 13명 중 차석, 제4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 16명 중 차석으로 합격했다. 뿐만 아니라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 모두 최연소 합격자였다. 이런 결과는 퍽 믿기 어려웠다. 어떻게 모두 차석 합격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치고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결과가 어디 한두 가지 겠는가. 그런 경우에 우리는 흔히 ‘운’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운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 인연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1953년 6월에 접어들자 정부에서는 그해 7월 환도(還都) 계획을 발표했고, 각 부처에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선 20명 안팎의 1차 환도팀을 구성해야 하는 데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방에서는 아직 전투가 한창이어서 전선에 근접한 위치에 있는 서울로 간다는 것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강을 건너려면 미 민사처 CAC의 통행증이 있어야 했다.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었다. 결국 상공부에서는 미혼자 중 나이가 적은 순으로 뽑기로 했다. 단장은 최하 3급 이상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어 미혼이고 최연소자인 내가 가도록 됐으나 특별히 싫을 것도 없었다. 수습기간이니 이런 기회에 중요한 정부시행 수행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환도열차는 6월29일 경 떠났다. 첫 단원들에게는 집을 정리하기 위해 1주일 정도 휴가를 줬고 단원들은 출발 전날 한 달간의 한강도강 패스와 여비 등을 받았다. 서울의 상황은 비참했다. 명동은 국립극장, 명동성당을 제외하고 폭격과 포격으로 모두 파괴됐다. 미도파백화점 건너편에 위치한 상공부건물은 그대로여서 몸을 의탁할 곳이 있었다. 우리는 우선 2층에 있는 총무과와 경기과, 회의실을 정리했다. 환도한지 불과 3주 후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정부는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게 됐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79호 / 2023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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