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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바달다의 선한 시기심

제바달다의 시기심에 내재된 비밀스런 미덕

현장법사 ‘대당서역기’에도 제바달다 따르던 이들 등장
제바달다 추종자들은 ‘우유죽 먹지 않는 사람들’로 소개
교단분열 시도가 ‘시기심’ 아닌 ‘선한 동기’였음을 각인

제바달다가 야생 코끼리를 이용해 부처님을 시해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진은 3~4세기 간다라에서 조성된 부조.
제바달다가 야생 코끼리를 이용해 부처님을 시해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사진은 3~4세기 간다라에서 조성된 부조.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처음으로 제바달다가 석가모니를 세 차례나 시해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 석가모니 같은 성자는 항상 고요한 물과 같고, 선한 역할만 하며, 또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잘생기고 의젓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정원 뒤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왠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글은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바달다를 분석한 것이며, 현장과 연관된 문헌들에서 본 두 개의 문구 즉 ‘우유죽을 먹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선한 시기심[善妬]’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 제바달다에 대한 나의 분석이 불교의 역사 안에서 최초의 것도 최후의 것도 아니겠지만, 약간의 실화에 기반한 허구적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것과 다르다. 따라서 특정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대당서역기’에는 7세기 초 현장이 동인도 지역의 금이국(金耳國·까르나수바르나)을 지나며 목격한 장면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사교와 정교를 아울러 믿는다. 가람 십여 곳에서는 이천여 명 스님들이 소승 정량부의 법을 배우고 있었다. 천사(天祠) 오십여 곳에는 이도(異道)가 참으로 많았다. 따로 세 개의 가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유죽을 먹지 않았으며 제바달다 유훈을 따랐다.’ 그러니까 불교도의 신앙 연력[佛紀]으로 천년이 넘을 때까지 제바달다의 무리들은 자신들만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었다. 현장은 에둘러서 ‘우유죽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 앞서 4세기 말에 인도를 여행했던 법현은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이렇게 분명히 기록하였다. ‘제바달다에게도 대중들이 있었으니 항상 과거삼불(석가모니불 직전에 출현했던 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긴 해도 석가모니불께 공양하지는 않았다.’

이 기록들에서 유독 눈에 띠는 것은 ‘그들은 우유죽을 먹지 않았으며’라는 현장의 문구다. 약간의 냉소가 느껴지는 이 문구가 아마도 제바달다의 의문스런 행적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것 같다. 그러니까 현장이 동인도 지역의 이교도들 사이를 지나면서 저 ‘우유죽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포착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것의 정체는 바로 천여 년을 살아남은 제바달다의 의지다. 제바달다는 진심으로 수행자에게 우유죽은 사치라고 여겼고, 그래서 ‘우유죽을 먹지 말라’는 유훈을 남김으로써 우유죽을 먹는 석가모니의 후예들로부터 자기 교단의 금욕주의를 구분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자기가 석가모니를 세 번 시해하려 했고 한 비구니를 살해하며 교단을 분열시킨 것은 ‘한갓 시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런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그의 추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그는 이런 식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어섰기 때문에, 무엇에도 꺾이지 않았던 그의 의지가 저 우유죽을 먹지 않는 무리 속에서 영속하면서 그가 불행한 배신자로 기억되는 것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처럼 스스로 진화하는 제바달다에 대한 불교도들의 불가사의한 대응이다. 먼저, 그들은 제바달다가 지은 오역죄의 마땅한 대가로서 산 채로 지옥 구덩이에 던져졌다는 전설을 만들어낸다. 이것으로 끝냈더라면, 제바달다의 이름은 마하제바(大天: 초기 교단 분열의 주동자로서 오역죄를 지음) 앞에 놓여서 불교사의 악당 명단에 오른 첫 번째 주자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 대신, 석가모니의 전생 스승으로서 미래의 천왕여래가 된다고 하는 수기를 내림으로써(‘법화경’의 ‘제바달다품’) 석가모니와 맞먹는 인물로 거듭나게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중국의 한 선사 어록에는 석가모니의 존엄을 부정하는 위험천만한 제바달다가 다시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부처님이 아난을 시켜 지옥에 있는 제바달다의 의중을 떠보게 하였다. 아난이 조심스레 “지옥에서 견딜만한지, 거기서 빼내 주길 바라는지”를 묻자, 그는 이렇게 응수한다. “나는 비록 지옥에 있지만 마치 삼선(三禪)의 천락(天樂)을 누리는 듯하다. 세존이 여기로 오면 그때 내가 여기서 나갈 것이다. 세존이 오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나가겠느냐.”(‘대혜보각선사어록’)

그런데 저 제바달다가 우유죽을 먹지 않는 행위만으로 성공적으로 자기의 삿된 시기심을 ‘선한 동기’로 둔갑시키고 있을 때, 어째서 불교도들은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일까. 나의 감상평에 이렇게 적기로 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제1인자에 대한 제2인자의 시기와 배신이라는 행위 유형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제바달다의 시기는 바로 2인자의 것이기에 오로지 석가모니에게 향하게 되어 있다. 그는 평생 석가모니의 정원에 돌을 던지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만약 고요한 물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충격을 허용하고, 다채로운 물결을 일으켰다가 다시 고요해질 것이다. 석가모니의 정원에서도 그런 충격을 허용한다. 제바달다가 던진 충격의 여파로 흥미진진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지만, 옛 문헌에 거듭 언급된 몇 가지 말고는 대부분은 잘 모르고 넘어간다. 그러니까 그 정원의 뒤편에서는 ‘이제 교단은 내게 맡기고 좀 쉬시라’고 말하는 뻔뻔한 제바달다에게 세존이 다소 심한 언사를 날리거나(‘미사색부화혜오분률’권3), ‘라훌라에게 애틋하게 대하면서 왜 제바달다한테 꾸짖기만 하느냐’는 외인의 비난에 직면하기도 하며(‘인왕경소’의 ‘수지품’), 앙심을 품은 제바달다의 살해 위협 때문에 세존은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 우주의 역사에서 제바달다만큼 질투의 화신 역을 과감하고 실감 나게 하는 자가 없었기에, 그에게 “선한 시기심[善妬]”(‘팔식규구송주’권1)이라는 명예를 수여하고 천여 년이 지나서도 그를 다시 출현시키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점점 노련해지는 제바달다의 시기심 때문에 우리 불교도들이 어쩔 수 없이 더 불편하고 혼란스런 장면들을 봐야 할 운명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방법은 제바달다의 사례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었듯, 우리도 자신을 가둬놓는 어떤 관념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설사 고통에 찌들고 슬픔에 짓눌렸으며 게다가 못 생기기까지 한 석가모니를 보게 된다 해서, 그것이 우리의 참된 믿음에 무슨 해를 주겠는가. 석가모니의 온갖 선행과 마찬가지로 라훌라를 사랑하고 제바달다에게 성낸 것 또한 그의 온전한 삶의 일부이므로 우리가 마음대로 그것들만 빼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석가모니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열정과 분노와 두려움을 가진 사람으로 이 세상을 충실히 살다 갔음을 기뻐해야 하고, 또 그러한 기쁨이 그가 슬픈 성자로 기억되는 것을 막아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제바달다의 시기심에 내재된 비밀스런 미덕이기도 하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79호 / 2023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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