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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직접 만들던 그 정성이 그립다

기자명 진원 스님

나는 불교학생회 출신 스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의 밤’에 초대되어 처음 불교를 접했다. 그 시절 시골의 학교는 대부분 사찰로 소풍을 갔고, 나의 유년시절도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모두 9년을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사찰로 소풍을 갔다. 그 절에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9년을 들은 설명이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사찰에 대한 연기와 법당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인된 기억은 이상한 옷(가사 장삼)을 입은 도인과 같은 스님의 낮선 모습과 곰팡이 냄새와 섞인 처음 맡아 본 짙은 향냄새, 연등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불교에 대한 기억은 빛바랜 연등처럼 희끄무레 했다.

도시 고등학교로 입학한 나는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책을 좋아하는 내게 짝꿍은 ‘문학의 밤’(그때는 시낭송회를 하고 시를 예쁘게 꾸며 전시하는 그런 문화가 유행했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얼씨구나’ 하고 따라 나섰고, 그곳이 불교학생회에서 하는 ‘문학의 밤’이었다. 물론 내가 소풍을 다니던 그 사찰의 정서와는 다른 도심의 사찰은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스님들도 젊고 크게 부담이 없었다. 무엇보다 남학생이 많아서 더 좋았다. 불교를 믿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뒤로 나는 108배도 수련회도 열심히 하는 열혈 불교학생이었다. 나무의자가 있는 응접실에서 늘 남녀 학생들이 웃고 떠들어 스님들과 보살님들에게도 많이 혼났지만 전혀 노엽지 않은 기억이다.

사실 우리는 불자여서라기보다 그냥 남녀 학생이 모여 있어서 재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제법 분과별로 토론도 열심히 했다. 초파일 즈음 우리는 둘러 않아 연꽃잎을 만들었고 스님들과 보살님들에게 재미있는 신행과 기도 가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초파일 시가행진을 위해 학생회에서는 장엄등을 만드는 등 우리도 스님들 못지않게 몸도 마음도 무척 바빴다. 초파일 하루를 위해 우리는 한 달 내내 정성을 들여 그렇게 부처님오신날 준비시간을 보냈다.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초파일 당일이었다. 그때는 법당에 일년등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날 하루의 축제였다. 도량(마당)에 줄을 쳐주면 연등을 건 뒤 온 가족 이름이 적힌 축원꼬리표를 달고 하는 것들은 모두 학생회의 몫이었다. 봉축 꽃사지를 단 보살님이 개선장군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각단에 향이 빼곡한 향로에 또 향을 피우게 하고 절을 시키고 불전을 올리게 하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밤에는 연등 하나하나에 촛불을 밝혀야 했다. 가끔은 촛농이 옷에 떨어지기도 하고, 도량마당에도 촛농이 탑을 이루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량에 신도들이 종일 북적였다. 지금도 뚜렷한 기억 하나가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처럼 촛불 밝힌 연등 아래서 108배를 하는 보살님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다. 고단한 삶을 담은 소원이었을까, 미래의 희망일까, 빼곡히 적혀 있는 가족들의 이름 속에서 다양한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불교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졌다. 내게도 신심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법 삼배의 절에도 마음을 담기 시작했고, 용돈을 모아 불전이라는 것도 살짝 부처님 앞에 놓기도 했다. 물론 작은 불전이었지만 나는 할머니들처럼 소원이 많아졌다. 출가한 스님들도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반야심경도 외웠고 무상한 삶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출가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한 추억을 가지고 출가한 나는 그 정서가 그립고 보살님들의 그 정성이 귀해서 주지소임을 보면서도 연꽃잎을 말고 속지를 붙이고 꽃잎을 붙여 연등을 만드는 번거로운 작업과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시절 한 달 내내 준비하던 초파일 축제에 발심하고 신심을 내었던 나에게는 빈자일등처럼 꺼지지 않는 축복의 등이 아니었을까.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우리 모두 빈자일등의 정성어린 등공양을 올려보자.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80호 / 2023년 5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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