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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시스 여신의 관과 한국의 고깔모자

기자명 윤소희

이집트 여신도 한국 장례 두건 닮은 관 썼다

나우니 무덤서 발견된 파피루스에서 예수재와 닮은 점 발견
죽은 이 과거 재판 관장하는 오시리스·이를 지켜보는 이시스
오시리스 능력 준 이시스, 유일신 이전 가장 숭배받던 존재

나우니 묘에서 발굴된 BC1050년경의 파피루스(위). 1)한국의 작법무, 2)장례 두건, 3)이시스 4)오시리스.
나우니 묘에서 발굴된 BC1050년경의 파피루스(위). 1)한국의 작법무, 2)장례 두건, 3)이시스 4)오시리스.

지구촌 인류 문명과 음악 역사를 탐색해 보면 단연 압도적인 곳이 이집트라 그 역사와 자료를 수시로 찾아보게 된다. 그중에 아문(Amun-Re)을 섬기던 나우니의 무덤에서 발견된 BC 1050년대의 파피루스는 불교의 예수재와 상통하는 점이 많다. 나우니의 오른손 위에는 두 개의 눈과 한 개의 입이 그려져 있고, 왼손 손목에 묶인 끈이 저울과 연결되어 생전에 행한 신구의(身口意) 행업을 달고 있다. 자칼 머리를 하고 저울 가운데 있는 아누비스는 미라의 신이자 죽은 자의 수호자이다. 그는 마치 물고기의 비늘을 세듯이 나우니의 행적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그 앞에 작고 까맣게 그려져 있는 원숭이는 이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이 재판을 관장하는 오시리스, 왼편에는 우리네 두건과 닮은 모자를 쓴 이시스가 증명법사처럼 지켜보고 있다.

오시리스는 히타이트 12신들과 같이 높이 솟은 원뿔형 모자를 쓰고 있다. 백성들을 대신하여 맹독을 마셔 목이 푸르게 변한 그의 녹색 피부는 인도의 푸른 목의 신 쉬바를 연상시킨다. 쉬바는 불교로 들어와서 스스로를 희생하여 맹독을 마셔 목이 푸르게 변한 청경신(靑頸神)이 되었다. 천수다라니에 “니라간타야(푸른 목이여)…”라는 대목과 용수(龍樹, Nagarjuna, 150?~250?)의 ‘대지도론’ 한역본 제2권의 마혜수라천 즉, 대자제로 서술되는 내용과 상통하는 캐릭터가 이집트에도 있어 흥미롭다.

이집트 신화 속 창조의 신 에네아드의 아들 오시리스는 백성들에게 농업·신학·법학을 가르친 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를 전하러 떠나고, 아내이자 여동생인 이시스가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러자 그녀의 또 다른 형제 세트(이시스의 오빠)가 이를 시기하여 오시리스를 죽여 나일강에 던져버렸다. 이시스는 나일강 갈대숲에서 오시리스의 시신을 찾아 지극한 사랑의 마력으로 그를 부활시켰다. 

되살아난 오시리스는 사자(死者)의 죄를 심판하며 죽음과 부활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고, 나우니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파피루스에는 “신을 향해 찬양의 노래(chanting)를 바쳐온 나우니가 오시리스와 함께 내세를 누리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두 눈과 입, 손으로 전해지는 업식에 대한 심판을 통과하여 오시리스와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된 나우니의 캐릭터를 불교적 관점으로 보면 염불하는 청정 비구니의 왕생극락 성취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명부의 시왕은 심판만 하고, 극락은 아미타불이 관장하는데 오시리스는 명부시왕과 아미타불의 역할까지 모두 다 하고 있어 주목된다.

오시리스의 이러한 능력과 권한은 이시스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한국의 장례 두건과 흡사한 관을 쓰고 있는 이시스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상하기 전까지 그리스와  아라비아에서 성모마리아 이상으로 숭배받았던 여신이다. 그녀를 상징하는 앙크(ankh) 매듭은 삶의 풍요를, 소뿔로 둘러싸인 태양판은 우주를 상징하며, 시스트럼(방울)을 흔들어 악령을 물리치고, 거대한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죽은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

그러고 보면 이시스 여신을 상징하는 관, 오시리스의 고깔모자와 한국의 3층 구조 작법무 고깔과 장례 두건의 친연성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지닌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에는 가톨릭의 성모마리아, 불교의 관세음보살, 인도의 사라스와띠, 아라비아의 아나히따를 관통하는 준제(准提) 공덕과 사후 심판이 있어,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궁극적인 두려움과 위안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2006년 여름, 이집트를 다녀 보니 과거와 현재가 극과 극이라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 나라의 과거를 보면 기원전 4000~3000년에 왕조가 성립된 이집트는 초기 왕조를 지나 고왕조 시기(BC 2649~2152)에 상형문자와 신화를 완성하였고, 10~12현의 하프를 연주한 중왕국 시기는 12줄의 신라금·가야금보다 2000년이 앞섰으며, 이집트의 광개토대왕이라 할 수 있는 람세스 2세의 신왕국 시기(BC 1580~1090)에는 오케스트라 급의 합주와 지휘자까지 있어, 도저히 지구인이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신왕국 이후 국력을 쇠진하며 파라오의 힘이 약화되자 부족들이 들고일어나 피라미드의 보물들을 훔쳐가다 못해 한 해에도 몇 번이나 파라오가 바뀌는 혼란기를 맞았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페르시아 오스만제국, 나폴레옹, 서구 열강의 팽창주의에 휩쓸리며 오늘에 이른 이집트. 엘리트는 해외로 떠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고, 군인 아파트와 병원만이 번듯하였다. 빵과 생필품은 저렴하였지만, 나머지는 턱없이 고가이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기초생활에 묶여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집집마다 둥그런 접시모양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술집과 유흥문화가 없어 남자들도 퇴근하면 드라마를 보니 위성안테나가 그들의 유일한 해방구인 듯했다. 귀국 직후 산행길에서 히잡을 쓴 여인이 있어 인사를 나누고 보니 이집트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수입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 후 이집트 사람 중에 대장금을 안 본 사람이 없었으니 그녀의 사업이 대박 났으리라.

이후에도 무슬림 친구들을 만나보면 순수하고 진중하고 인정 있어 신뢰와 정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움이 밀려왔다. 한 생명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 폭력성을 풀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테러를 완화하려면 이슬람 사회에 술과 유흥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왔다. 문제의 발단과 해결이 때로는 의외의 곳에서 풀릴 수도 있으므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680호 / 2023년 5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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