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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결심했던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린 관음보살의 가피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법보신문사장상 - 이수현

남편의 외도로 자살 결심…하직 인사차 들른 절에서 부처님 가피 받아
관음보살께 지극정성으로 기도…홀로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키워 뿌듯
역경 이겨내고 내집도 마련…이제는 베푸는 삶 살며 남은 삶 회향 결심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아들이 대학생, 딸이 수능을 앞두었던 때,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도의 광풍이 몰아치니, 딛고 있는 땅은 그대로 싱크홀(sinkhole)이었다. 땅이 꺼지면서, 몸은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배신감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남편을 가정으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필요로 하는 자식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눈이 멀어 요지부동이었다. 나를 받치고 있던 기둥이 무너졌고, 삶의 지향점은 상실됐다.

식욕이 달아나면서 물 한 모금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게 됐다. 깊은 우울이 나를 덮쳤다. 죽으면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귓전을 맴돌았다. 그래, 죽으면 끝이야. 푸른 물이 넘실대며 나를 어서 오라고 유혹했고, 달리는 차로 뛰어드는 상상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약국을 순례하며 수면제를 모았다. 목을 매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포함해 여러 방법을 검토하다 수면제를 먹고 잠자듯 세상과 하직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살계획이 세워지자 이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메모를 하고 실천에 옮겼다. 아이들의 옷을 세탁해 정리했고, 형제간이나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했다. 계획했던 일들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다니던 절에 가서 부처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나는 언니를 따라 처음 절에 갔었다. 초하루와 보름에는 가급적 법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잘되기를 빌었던 남편이 나를 버리자 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독실한 불자가 아니었다. 독실한 불자도 아니면서 마지막에 부처님을 참배할 생각은 왜 했을까.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차를 내린 나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백운대를 향해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일주문을 통과하고도 등에 땀이 흥건히 배어날 만큼 걸어 올라가서야 지붕 위로 햇살이 내려와서 출렁이고 있는 당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가람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극락보전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보름이었다. 예참이 끝났고, 주지스님의 법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불살생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과보를 받는 죄는 자기의 생명을 빼앗는 자살입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알고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준비해 들려주시는 것 같았다. 스님의 말씀은 다시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자살하는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지 내가 온 정성을 다 기울여도 한 번으로는 천도가 되지 않더군요. 그만큼 업장이 두터운 거에요. 자살은 수십억 겁이 지나도 인간의 몸을 다시 받기가 어려운 중한 과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부처님만 뵙고 내려가면 세상과 하직할 판인데, 스님 법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은 아미타부처님께서 나를 불러 가피를 내려 주신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후불탱화와 팔상도, 극락구품도에 둘러싸여 있는 아미타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어 보이시는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나를 살리셨다.

주지스님은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갈 방도를 알려주셨다.

“여러분 힘드시지요?”  신도들이 합창으로 대답했다.
“네에!”
중생의 삶이란 남편의 배신이 아니라도 힘들기 마련인 모양이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며칠 전에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일가족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법회 때는 자살이 얼마나 엄중한 과보인지에 대하여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살생을 저지르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 절 마애관음보살님은 영험한 보살님이십니다. 힘들면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리세요. 간절하게 염호하면 반드시 가피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내 발길이 법회로 연결이 된 것은 아미타부처님의 가피였다.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수면제를 버렸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나의 전부인 아들과 딸을 두고 죽으려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목숨을 버려서는 안되는 어미였다. 

나는 부실애정을 정리했다. 이혼장에 도장을 찍기 전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따라가겠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이미 새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버린 아버지라는 위인은, 자식들을 맡을 생각은 일도 하지도 않았다. 집을 정리해 허름한 전세를 얻을 정도의 위자료를 받았다. 밤이슬을 피할 거처는 마련되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혀야 할 돈이 없었다. 막막한 순간에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리라고 했던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리기로 결심했다. 먼저 ‘관음경’부터 한 권 구했다.

새벽 3시에 눈을 뜬 후, 목욕재계를 하고, 경전을 펼치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경전을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경전의 내용이 내 마음속에 또렷이 살아있도록 온 심혈을 기울여 간경을 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절로 향했다. 그리고 마애관음보살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시방세계에 충만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세세생생 지은 죄업을 참회드립니다. 저희 아들과 딸이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살펴주시옵소서.”

이어서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를 3번 염송하고, 경의 이름을 3번 반복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서 절을 했다.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 때까지 계속된 절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를 필요로 했다. 장딴지에 알이 배기고, 몸무게가 쑥 빠졌다. 21일을 기한으로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버스를 타고 절을 오고 갈 때나 기도할 때나 밥을 먹으면서도 온통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고 기도했다. 그렇게 21일이 되어가던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목이 쉴 때까지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절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동네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카트를 몰고 나에게로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다. 야쿠르트 아줌마였다. 얼굴 가득히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웃음은 관세음보살의 미소 같았다. 나는 마주 웃으며 물었다. 

“이렇게 장사를 하면 수입이 좀 돼요?”
“힘은 들지만, 이것 팔아서 애들 교육시키고 먹고 사니까 결코 적게 버는 것은 아니죠. 큰 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는 다급해졌다. 
“나도 이 일을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튿날 관세음보살님의 안내를 받으며 야쿠르트 대리점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나는 눈 내리던 계절에 야쿠르트 거리 판매를 시작하여, 우의를 입고도 팔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는 일이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관세음보살님이 인도해 준 일이라 여겼기에 천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아픈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아들은 대학원까지, 딸은 대학을 마치도록 가르칠 수 있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을 나와 버스를 탔고, 종점에서 내려 백운대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애관음상 앞에 선 나의 핸드백 속에는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둘 다 직장을 구하자, 이제 관세음보살님께 전세가 아니라 아파트 한 채만 갖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번 돈과 아들과 딸이 월급을 보태서 함께 마련한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나는 등기부 등본을 꺼내 들고 관세음보살님께 말씀드렸다.
“관세음보살님, 당신이 주신 아파트예요.”

감사의 마음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흘렀다.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는 모든 것이 원망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감사했다. 잘 자라준 아들과 딸에게 감사하고,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아파트라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가피한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드렸다. 나의 모든 감사 중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불교공부를 한 일이었다. 계도 받았다. 그리고 심주(心珠)라는 법명을 얻었다. 무엇이 심주인가. 영롱하게 빛나는 내 마음속 심주는 바로 불심이었다. 나는 ‘금강경’을 한 구절 듣고 문득 깨달으셨다는 육조 스님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그동안 중생으로서 번뇌에 물들고 더럽혀진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내가 청정한 부처였구나.”

나무꾼이었던 육조 스님 또한 스스로가 더없이 존귀한 부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왜 야쿠르트 아줌마인 나는 부처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오랫동안 지지리도 못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박복한 여자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살았다. 그런데 ‘금강경’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됐다. 나는 모든 것을 갖춘 이미 부처였다. 다만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해 알지 못한 것뿐이었다. 내가 부처임을 알게 되자 자살은 부처가 부처를 죽이는 살불(殺佛)임을 깨닫게 됐다.

모든 것을 스스로 구족하였기에 이제 더는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 작정이다.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것을 세상으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아름답게 인생을 회향하겠다는 서원을 담아 두 손 모아 합장한다. 그리고 나직이 염송해 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1682호 / 2023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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