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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마음이 만든 내면세계' 체득 후 ‘감사의 바다’서 유영!

기자명 법보

[신행수기 당선작] 교정교화전법단장상 - 이OO

 부‧명예 좇다 8년 형 선고 확정…불서 읽으며 영혼의 상처 치유
 “너 자신 소중히 생각하고 부처님께 기도하자!” 위로에 큰 변화
 간절함으로 써간 ‘신행 수기’ 어머니께 닿아 암 완치되길 ‘기도’ 

그림=정은주
그림=정은주

삶이란 고통과 비탄의 진창에서 뒹구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영원한 열반에 이르신지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우리는 숨 막히는 슬픔에 몸부림치며 고통의 바다에서 유영한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어머니는 난소암 진단을 받으셨다. 구속된 내가 소식을 듣고 극심한 불안에 떨까봐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나 결국 동생과의 전화 통화로 알게 되었다. 통화를 마치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으로 운동장을 걸었다. 내 마음은 절박하고 숨 막히게 고통스러운데 명징한 봄빛이 쏟아지는 하늘은 너무나 파랗다는 것이 슬펐다. 

정기법회 시간이 다가왔다. 사금파리처럼 바스러진 마음을 안고 법당에 들어갔다. 스님의 ‘반야심경’ 외는 소리가 법당에 흩어졌다. 귀를 울리는 목탁 소리와 ‘반야심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염주 건 손을 모아 부디 어머니가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하여 송경(誦經)하는 동안 숨 막히는 슬픔으로 혼곤해진 의식 때문에 불단 위 황금빛 본존의 청초한 모습이 망막에서 번졌다. 그날 밤은 고요하고 소슬했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든 하얀 벚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동생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아마 5년 전부터 어머니 몸 안에서 암이 시작되었을 거래. 의사가 말해주셨어.” 

어머니의 병이 시작되었을 무렵인 5년 전 나는 구속되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사소한 내 주위의 사람들과 소중한 가족,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라고 지혜로운 이들은 말해주었으나 그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나는 수의를 입고 있었다. 8년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되고 5년이 흘렀다. 지독하고도 혹독했던 긴 겨울이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얼어버렸다. 내 삶에서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죽음의 자리에서 지난 인생의 날들을 생각하듯이, 시련의 겨울 안에서 봄처럼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인내했다. 고통 속에서 몸을 태우다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불서를 끊임없이 보내 주셨고, 나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불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격정으로 가득한 마음은 평안해졌고, 내 낡은 세계는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유의 우주로 흩어졌으며, 그 광활한 우주 안에서 나는 영혼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프신 지금, 정작 나는 그를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은 아들이었던가. 구속 전 내가 미약한 나의 지식이 세상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라 착각하고 물질의 향유가 최우선이라 여기며 내 안의 욕심을 채워갈 동안 어머니의 몸 안에서는 암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물질적 풍요를 위해 자본주의 세상에 나를 맞추고 재단하는 동안 나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을 더 잡지 못했고, 서로의 눈을 맞추며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지 못했으며, 선물처럼 주어진 맑은 계절에 함께 걷지 못했다.

후회로 물든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리고 산란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육체는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고, 모든 것이 바늘의 첨단처럼 예리한 자극으로 와닿았다. 절박하고 처절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파르스름한 박명을 보며 어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었다.

절망과 슬픔 속으로 끝없이 침잠하여 영혼이 황폐해진 그때, 사랑하는 어머니가 접견을 오셨다. 접견장 안 투명한 아크릴판 너머에 어머니가 계셨다. 암이 온몸을 잠식해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엄마는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너 자신을 항상 소중히 생각하고 부처님께 기도하자. 아들 사랑해!”

그 음성이 귀에 울리는 순간, 내 안에서 애잔히 찰랑거리는 감정들이 쏟아져 눈물을 보일까 봐 애써 참았다. 

“다 괜찮아질 거예요. 어머니 사랑해요.” 

접견이 끝났다.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숭고한 모성의 찬란함. 진정 그 찬란함에 눈부심을 느끼며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를 존경했다. 

3월29일 어머니의 수술 날이었다. 직업훈련교육 강의실 창밖을 바라보니 계절은 온통 봄이었다. 황금색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따사로운 햇살이 부처님이라 생각했다. 파리한 내 얼굴에, 어깨에, 손등에 부처님이 내려앉으셨다. 부처님의 가피로 부디 어머니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병이 낫기를,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를, 부처님의 따스한 품 안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두렵고 초조했던 마음이 점차 잔잔해졌다. 10시간의 긴 수술이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명상하고 불경을 외며,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니가 무사히 회복하시길 온 마음으로 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직한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직업훈련교육에 임했다. 최후의 자신이 지키고 싶은 작은 소망과 삶의 희망, 그 임계에서 사소한 일에도 성실하게 노력하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활했다. 그것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고 또한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내 굳은 신념의 초석이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부처님께 닿았던 것일까. 어머니는 무탈하게 회복하셨다.

그 후 다시 정기법회 시간이었다. 불교 봉사원이었기에 가장 먼저 법당에 들어가 법회 준비를 했다. 불단 위 향로 속 향이 타올라 하얀 연기와 회색의 재로 화했다. 감사함의 충일함으로 부처님께 합장하고 배례했다. 법회가 시작되었다. 

“속세의 시간 속에서 가득 채워진 자는 스스로 비워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넘쳐흐르는 잔을 다시 비우는 행위와도 같다.” 

법의를 입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의미와 ‘만다라’ 그리고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해 설법하셨다. 법당 안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곳처럼 나의 육신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오로지 목탁 소리, 스님의 설법 소리만이 흐르듯 구르듯 가득 차 내 안에서 파동했다.

그 순간, 나의 내면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무언인가를 이해한 것만 같았다.
“색과 공이 다르지 않고 공과 색이 다르지 않다. 색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이다.”

색(色)이란 유형(有形)이고 공(空)이란 무형(無形)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아원자는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아원자 결합의 산물인 물체는 우리가 볼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위치를 바꾸어 관측하려는 순간에는 소멸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나타나는 아원자의 특성 때문에 물리학의 주류인 양자역학은 탄생했다.
만나라는 불교미술의 한 종류로 깨달음의 경지를 기하학적인 요소로 표현한 것이다. 모래로 만다라를 만드는 스님은 만다라의 완성과 동시에 그것을 이루었던 모래를 전부 무너뜨린다. 그 무너짐을 멈추고 싶어도 찰나 같은 순간에 완성과 소멸은 공존한다. 그렇기에 ‘색증시공 공즉시색’의 유형과 무형, ‘만다라’의 완성과 소멸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일체유심조! ‘나를 둘러싼 세상이 실제로는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진리를 부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 깨달으셨다. 내 눈앞의 세상은 나의 주관에 의해 재구성된 내면 세상이다. 그렇기에 삶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나 스스로가 자신의 의식 안에서 산다는 것과 삶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소중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숨 막히게 조금씩 다가오는 암이라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어머니는 내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집착과 소유라는 욕망의 잔을 비워내는, 눈부시게 빛나는 그 순간에, ‘일체유심조’의 뜻을 이해하며 비로소 고통에 갇힌 삶에서 해방되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 부처님께서는 영원한 열반에 이르기 전 마지막 가르침을 인류에게 남기셨다. 힘든 항암치료 중에도 이 신행수기 쓰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그 존재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한 어머니께 이 위대한 가르침을 감사 인사 대신 전한다.

“스스로가 너의 등불이 되어라. 스스로가 너의 의지처가 되어라. 진리는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

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고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소중한 존재다. 나의 펜으로 엮인 이 문장들이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소담하고 고요하며 환한 것이라 믿는다. 간절함으로 내려가는 이 글이 사랑하는 어머니께 닿아 반드시 병이 완치되어 건강을 찾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나는 고통의 바다가 아닌 감사의 바다에서 유영하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아름다운 인생을,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

[1682호 / 2023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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