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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래 불교 홍법의 키워드 호모뮤지카

기자명 윤소희

불교음악은 스스로 법음을 수지·노래하게 한다

인류 진화과정 살펴보면 언어보다 음악이 먼저 발전
K팝·클래식까지 음악으로 세계 제패하는 한국이지만 
한국불교는 세계 어떤 나라·종교보다 음악과 거리둬

 

우가리트 점토판(Ugarit clay tablet) 악보와 탁본. 
우가리트 점토판(Ugarit clay tablet) 악보와 탁본.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시간과 바람과 토양이 다른 자연환경에 의해 정주(定住)와 이동생활이 이루어지고 동(東)과 서(西)라는 서로 다른 문화 체질이 형성되었지만, 문명의 원류를 거슬러 가면 BC 4000~BC 3000년경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라는 발원지에서 만나게 된다. 중간을 뜻하는 ‘메소’와 강을 뜻하는 ‘포타미아’가 합쳐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ία’가 어원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이 생성되어 호모사피엔스가 확산되는 과정을 추정한 결과 모든 인류는 하나의 뿌리였다는 것이 최근의 과학적 견해이다. 즉 백인, 흑인, 황인이 서로 다른 유인원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인원이 서로 다른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후천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자료에 의해 인류문명의 발생 순서가 메소, 나일, 인더스, 황하의 시간순인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는 모든 인류문명의 선구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BC 3500년 무렵에 금속과 돌, 상형문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표시할 수 있는 쐐기문자와 설형문자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점토에 구워 보존하였고. 다마스쿠스 국립박물관에 보존된 이들의 악보가 현전하는 악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고대 도시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이 점토판은 BC 3400년 전의 것인데, 여기에 설형문자로 쓰여진 후리안 찬가와 악보가 새겨져 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갈메시의 서사시와 스승으로부터 학습 중인 제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오안네스(Oannes) 혹은 우안(Uan)이라 불렸던 그들은 스승을 천상에서 내려온 메신저로 여겼다. 스승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기독교의 메신저와 예언자, 음악을 천상의 인카네이션(incarnation)으로 여겼던 그리스인, 로마의 교부신학, 그것을 반영하는 그레고리오 성가까지 하나의 라인이 형성된다.

‘구약성경’의 아담과 이브의 낙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이라크의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에도 쐐기모양의 설형문자를 사용하여 역학과 수학을 발달시키며 음악을 향유하였던 흔적이 보인다. 이들 음악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들이 노하여 농사를 망치거나 홍수가 나지 않도록 제사를 올리며 신을 달래는 노래를 부르고, 결혼식, 장례식, 군대와 전쟁, 노동, 자장가, 춤곡, 술집의 유희와 궁정 향연, 국가적 행렬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음악을 활용하였다.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라가시 유적에서 발굴된 점토판에 새겨진 하프가 전시되고 있어 그들이 향유했던 음악의 실체를 매우 사실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번역된 오선보.

BC 2500년 무렵의 메소포타미아는 음악을 기록하는 기보법과 이론이 더욱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점토판을 판독함으로써 악기 조율법, 공연자 명단, 공연기술, 각 장르의 음악용어까지 규정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엔헤두안나(Enheduanna)라는 전문 음악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연구 결과 그는 BC 2300년경의 인물로 밝혀졌다. BC 1800년의 바빌로니아는 즉흥연주에 대한 패턴과 기법을 기록하며 사랑가, 애가(哀歌), 찬미가를 분류하였고, 악기 조율법에 따른 음정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설명대로 계산해 보니 7음 온음계가 생산되었다. 

BC 1400~1250년경 과수원의 여신 니칼에게 바치는 찬미가의 가사를 새긴 점토판은 그 체계가 선명하여 오선보로 표기할 수 있다. 이 점토판을 좀 더 들여다보면 노랫말은 이중 선 위에, 선율은 그 아래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해석한 오선보에는 병진행과 반진행하는 이중 선율에 화성적 울림까지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이 음악이므로 이들을 기호화하고, 분류하여 체계화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인해 호모사피엔스 진화의 척도가 몇 천년 앞당겨졌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생각해 보면, 언어보다 음악이 먼저였다. 동족을 부르는 소리, 위험을 알리는 신호, 태어남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음률의 쓰임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호모뮤지카가 더 원초적임을 실감하게 한다.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를 따르면 생명체들은 시각보다 청각에 의존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잠을 잘 때 시각은 멈추지만, 청각은 언제나 깨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소리를 감지한다. 남성보다여성의 잠귀가 밝은 것도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이 많은 데 비해 청각은 소리의 크기, 빠르기, 음색으로 종합적 정보를 월등히 심도 있게 파악하게 한다. 그러므로 고대 인도에서는 문자보다 음성학을 발전시켰고, 붓다의 말씀도 천여년 이상을 음성에 의존하였으며, 지금도 남방의 빠알리 경전은 붓다의 발음을 문자로 음사한 경전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자연환경을 보면, 두 개의 계곡을 끼고 있는 한국범패의 발원 사찰 쌍계사, 려(呂)와 율(律)의 계곡 가운데 있는 일본 쇼묘(聲明)의 태동지 교잔오하라(魚山大原) 산젠인(三千院), 중국 위나라 조식이 지은 어산범패의 발원지와 같은 입지를 지니고 있어 예사롭지가 않다. “범패의 근본 도량”을 뜻하는 ‘어산’에는 물에서 생명체가 생겨나는 이치가 담겨있다.  

인간의 존재 방식과 밀착해 있는 것이 소리인데 한국불교계는 세계 어떤 나라, 어떤 종교보다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공립합창단의 종교편향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K팝과 유럽 클래식까지 제패하는 한국인데, 치유와 명상으로 한국 불교음악을 떠올리는 세계인들은 거의 없다. 

챗 지피티(Chat GPT)가 등장하는 시대에 AI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한 답을 줄 수 있는 삼장법사가 있을까?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설법을 듣기보다 스스로 법음을 수지하고, 노래하기를 원한다. 법음 수지의 윤활유가 되는 불교음악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683호 / 2023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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