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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군법무관 생활

공직생활 시작과 동시에 받은 징집영장

사법과 합격자 대상 일체 소집
서울 육군본부 법무감실 발령
미군과 국군 연락장교도 담당
경제 사정으로 유학 권유 거절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결혼한 해 늦가을에 접어들자 군법무관후보 징집영장이 나왔다. 이듬해인 1957년 3월 초 서울 외곽에 있는 30예비사단으로 입대하라는 것이다. 상공부에서는 1년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사무관으로 임관돼 광무국 광정과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생활이 시작됐으나 휴직하고 군에 입대해야 했다. 당시 상공부 국·과장에는 훌륭한 분이 많이 계셨는데 우선 직속상사인 과장은 뒤에 경제부총리와 총리를 역임한 신현확씨였고 국장 역시 뒤에 총리를 역임한 진의종씨였다. 공업국장은 후에 내무부차관을 거쳐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한희석씨였다. 훌륭한 대선배들 밑에서 공직윤리는 물론 공직수행을 위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음은 큰 행운이었다.

당시에는 고등고시 합격자의 수가 워낙 적었던 탓에 판·검사 충원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군법무관에 자연히 결원이 많았지만 충원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고 1957년 초가 되자 국방부는 법원과 검찰 기타 정부기관에 근무 중이던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 중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일체 징·소집을 단행했다. 당연히 나도 포함돼 3월 상공부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법무관요원 징집에 응하게 됐다. 군법무관을 시급히 충원하려고 징·소집된 11명은 서울 외곽인 수색에 주둔하고 있던 제30예비사단에서 한 달간 간이 훈련을 거쳐 현지임관하게 됐다. 우리가 30사단에 입소할 무렵에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가 발표됐는데 약 150명이라는 전례없이 많은 수의 합격자가 배출됐다. 그 가운데 병역미필자가 우리와 함께 30사단에서 훈련을 받게 됐다. 훈련은 극히 기본적인 것으로 별 어려움없이 1개월이 흐르고 우리는 수료식과 함께 임관식을 가졌다. 모두 육군중위로 임관됐다. 실무수습을 마친 사람들은 대위로 승진 임관했고 동시에 보직처도 발표됐다. 모두 전방 사단이나 후방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었고 나만 서울에 남아 육군본부 법무감실 소속으로 발령됐다. 나는 부임신고를 위해 시간에 맞춰 감실에 출근해 행정과장 (후에 감사원에 근무한) 안경렬 중령에게 보직특명을 받고 온 것을 고하자 기다렸다는 말을 하면서 부임신고차 법무감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법무감실의 부임신고방식을 몰랐던 까닭에 30사단에서 훈련 때 배운대로 신고를 하려고 하자 법무감(당시 김완용 소장)이 회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저쪽에 앉아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자”고 말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로 대해줬다. 조금 있자니 사병 한 사람이 홍차 잔을 들고 와 세 사람 앞에 놓고 나갔고 행정과장은 이 중위는 심사과에서 근무하도록 하였음을 보고하자 “좋지”라며 “심사과는 판결선고된 사건을 판결서류를 통해 심사하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니 심사관으로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 그곳에서 나오자 행정과장은 나를 데리고 각과를 돌며 소개해 줬는데 고등고시 합격자는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간부 후보생인 군법무요원으로 입대해 법무관이 된 분들이었다.

법무감실 심사과 근무는 일이 많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아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그곳에서 근무한지 약 5개월이 된 어느날 행정과장이 나를 찾았다. 미 군사고문단 법무과와 8군 법무부의 연락장교를 담당해달라 부탁했다.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 미국 법무관학교에 유학을 떠나 후임으로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별 도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미 군사고문단이 있어 한국의 각 군본부의 법무감실에 대치되는 과를 두어 매우 밀접한 업무연락과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육본의 각 법무감실에도 각각 연락장교가 있었다. 나는 초반 미 법무관들과 관계도 생소하고 업무에도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어 퍽 어려운 나날을 보낸 것으로 기억된다. 약 1주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친면이 생겨 지낼만 했다. 몇 달이 흐르는 사이 미 8군 법무부장은 나를 좋아했는데 하루는 본인은 미시간 대학 법학대학원을 나왔는데 텍사스 주 출신이라며 유학을 추천했다. 당시 나는 사비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여서 경제사정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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