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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위빠사나명상과 대념처경 

기자명 일중 스님

대상서 마음챙김 확립하는 수행

깨달음·삼계해탈 성취를 위해
위빠사나 명상 일관되게 강조
사띠 잃으면 명상하지 않는 것
위빠사나는 불제자 가야할 길 

부처님이 직계 제자들과 후대의 제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던 가르침, 물려주고 싶었던 법의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명상수행과 열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무명과 갈애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생로병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명상수행과 열반의 증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명상수행을 통해서 부처님도 자유롭고 청정하게 뭇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몸소 체현하여 보여주셨고, 수많은 제자들이 그 뒤를 이어왔다. 그래서 불교를 명상수행의 종교, 자기성찰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명상은 두 범주가 있다. 사마타명상과 위빠사나명상이다. 사마타명상은 부처님 당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실천되고 있었던 명상법이다. 그에 비해 위빠사나명상은 부처님이 발견하신 길(道)이며, 불교 고유의 명상법이자 주요 수행법이다. 사마타명상이 삼매와 신통지를 얻게 하는 훌륭한 이익이 있지만, 깨달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열반의 증득을 통해 깨달음과 삼계해탈이라는 최종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빠사나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이다. 그래서 이번부터는 위빠사나 명상법에 대해서 하나하나 풀어가기로 하겠다.

‘위빠사나(Vipassanā)’라는 용어는 ‘꿰뚫어(vi) 봄(passanā), 분리해서 꿰뚫어 봄, 통찰’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겉모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현상 속에서 본질(본성)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통견(通見)이나 철견(徹見)이라는 말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주석서는 ‘여러 측면으로 봄, 다양한 방법으로 봄’이라고 해석하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본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무상·고·무아로 본다는 뜻이다. 현재 ‘위빠사나’라는 용어는 두 가지 용례가 있다. 하나는 명상수행법이란 의미이고, 또 하나는 통찰이 잘 되어지고 있는 성성한 마음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빠사나명상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초기경전은 ‘대념처경(D22)’이다. 수미쌍관법으로 구성된 아주 멋진 경전인데, 몸과 느낌, 마음과 법(身受心法)을 관찰하는 4념처명상이 핵심 내용이다. 사념처명상은 ‘초기불교와 남방불교 수행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부처님의 핵심 메시지가 응축되어있는 실천방법론이고, 최종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수행법이 바로 사념처명상이기 때문이다. 

‘대념처경(大念處經)’의 제목부터 풀이해보자. 빨리(Pali)어로 ‘마하사띠빳타나숫따(Mahā-satipatthāna-sutta)’라고 하는데, 마하(mahā)는 ‘큰, 긴, 위대한’의 뜻을 가진 접두사이다. 사띠(sati)는 ‘마음챙김(알아차림)’이란 뜻이고, 빳타나(patthāna)는 ‘기반이나 토대, 영역’이라는 의미와 ‘확립’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의 기반에 대한 큰 경, 혹은 마음챙김의 확립을 위한 긴 경’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이 ‘사띠(sati) 마음챙김’이다. 이 사띠는 명상수행의 키워드 중의 키워드이다. 실제 수행의 입장에서 사띠는 대상에 정확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챙겨서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관찰하여 아는 마음이다. 

사띠가 있으면 명상하는 것이지만, 사띠를 놓치거나 잃어버리면 명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사띠는 명상수행에서 중요한 요소다. 사띠가 순일하게 잘 이어져서 대상을 놓치지 않고 성성적적하게 관찰이 잘 되어지는 상태가 오면 ‘사띠가 빳타나되었다’ ‘마음챙김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이라는 대상에서 마음챙김을 확립해가는 사념처명상이 바로 위빠사나명상이다. 

‘살라경(S47:4)’에서는 신참 비구도 사념처명상을 해야 하고, 성자의 단계에 도달한 유학(有學)이나 무학(無學, 아라한)도 사념처명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의 구체적인 실천방법론도 바로 사념처명상이다. 즉 부처님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이 바로 위빠사나명상의 길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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