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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릴리전(Religion)이 아니다

‘종(宗)’은 본디 천자(天子)가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향해 올리는 제사의식을 가리키는데, 거기에 교리의 가르침까지 확장하면 ‘종교’가 된다. 중국의 도교, 인도의 브라만교, 우리 민족의 하느님, 일본의 신도(神道), 이집트와 인디언의 태양신 등이 ‘신을 향한 숭배 의식’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범주에 속한다. 

절대자를 숭배하는 제사의식을 통하여 인간이 간구하는 것은 국태민안 및 지배자의 권력과 개인의 행복 등 기복이다.

그런 동아시아에 서양에서 릴리전(Religion)이 들어왔다. 릴리전은 라틴어 ‘다시’라는 뜻의 리(Re)와 ‘연결하다’는 뜻을 가진 리가레(Ligare)가 합쳐진 말이다. 직역하면 ‘다시 연결하다’는 뜻으로, 원래 이어져 있던 상태에서 끊어진 역사가 전제돼야 한다. 절대자와 인간이 분리된 후에 다시 서로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식이 릴리전이다. 창조신의 의지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야 할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니, 다시 창조신에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그 원죄를 회개하고 기도하는 의식을 릴리전이라 한 것이다. 서남아시에서 일어난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릴리전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릴리전의 의식이 동아시아의 ‘종교’의 의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릴리전을 ‘종교’라고 번역하였다. 서양의 릴리전이 절대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과거의 원죄를 전제로 하는데 비하여, 동아시아의 종교는 절대신을 숭배할 뿐 단절된 역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편, 종교이든 릴리전이든 ‘절대신’을 상정하여 그 절대신을 숭배하고, 기도를 통하여 기복을 간구하지만, 직접 그 절대신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신(迷信)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불교는 종교인가? 릴리전인가? 과학인가?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진리를 깨달은 선각자요 스승으로 존경하는 예를 갖추어 숭배할 뿐 각자의 바깥에 어떤 절대신을 상정하지 않고, 절대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과거의 역사도 전제하지 않으며, 절대신을 향한 숭배와 기도를 통하여 신에게 복귀하기를 간구한다는 교리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가 릴리전일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또, ‘종교’가 인류보다 위대하고 인류의 행․불행을 결정할 막강한 힘을 가진 절대신을 향한 숭배를 통하여 기복을 구하는 의식이라면, 불교는 종교일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절대자를 향한 숭배의식이라는 면을 떠나 ‘종(宗)’은 ‘산마루’로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키고, ‘종교’는 이 우주에서 가장 근본적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가장 높은 가르침’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양전자 물리학 등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상대성 원리나 천체물리학 등 우주 전체의 성주괴공(成住壞空)까지 한 치의 빈 틈도 없이 완벽하게 설하셨다는 높이와 크기에서 유일한 종교라 할 수 있다. 

‘불교’는 무지한 중생의 눈에는 신비롭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도인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의심하고 의심하여 종국적으로 확신되는 것만 진리로 수용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이를 터득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과정이 곧 불교가 아닌가.

릴리전을 신봉하는 측에서는 ‘불교’의 그런 점만을 지적하여 ‘종교 아닌 과학’이라고 폄하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음 중에서 인류의 재능과 노력을 기울여 증명한 것을 ‘과학’이라 한다면, 과학은 불교의 한 부분일 뿐 과학이 불교와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인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해탈하는 날 불교와 과학이 일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민학기 변호사 hackymin@hanmail.net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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