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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막고굴 제321굴 ‘십륜경변’

기자명 오동환

여래가 중생 교화하는 열 가지 방편 비유로 표현

설법도 중심으로 70여 가지 세부 장면 빼곡하고 복잡한 구성
‘중생구제’ 지장신앙 부각…이후 육도·십왕 도상 출현에 영향
돈황에만 있는 ‘십륜경변’ 두 폭, 지장신앙 이정표로 자리 잡아

막고굴 제321굴 남벽의 십륜경변. 

막고굴 제321굴은 초당(初唐) 무측천의 집정시기에 조성된 석굴로서 내부의 벽화가 정밀하고 심오하여 돈황을 대표하는 석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21굴의 주실 북벽에는 서방정토를 아름답게 장엄한 아미타경변이 그려져 있다. 그 맞은편인 남벽에 장엄된 경변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 구성이 꽤 복잡하다. 중앙의 설법도를 중심으로 험준한 산자락이 둘러싸고 있고 곳곳에 총 70여 가지에 이르는 세부 장면들이 빼곡히 채워졌다. 이 벽화는 어떤 경전을 표현한 것일까? 이에 대해 그동안 학계에서는 법화경변설, 보은경변설 등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중국학자 왕후이민(王惠民)이 벽화에 쓰인 방제 내용과 도상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십륜경변임이 밝혀졌다. 

‘십륜경’에서 지장보살이 석가모니불에게 불법을 묻는다. 세존은 권정대왕이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열 가지 시책을 설하시면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는 열 가지 방편을 비유하였다. 이것을 일컬어 ‘십륜(十輪)’이라고 한다. 

‘십륜경’은 두 가지 역본이 있다. 먼저 초역본으로, 북량 시기에 번역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방광십륜경(大方廣十輪經)’ 8권15품본이 있는데, 역자는 전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역본은 현장 스님이 651년에 번역한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10권8품본이 있다. 두 역본의 내용은 대체로 일치하며, 다만 현장본의 번역이 더욱 매끄럽다고 평가받는다.

중국에서 ‘십륜경’ 신앙은 수대(隋代)에 퍼지기 시작하여, 초당 무렵에는 매우 성행하였다. 무덕 9년(626)에 편찬된 도선의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에서 열 차례 인용된 바 있다. 특히 ‘십륜경’은 삼계교가 매우 중시하는 경전으로, 이 교파의 지장보살 신앙이나 말법사상 등 많은 부분을 본 경에서 취하였다. 현장역본 서문에 이르길, “‘십륜경’은 현토 말법시대를 위한 가르침이다”고 하였으니, 그만큼 중생의 현실적 고난 구제를 강조한 경전임을 알 수 있다. 

삼계교는 북제에서 수에 걸쳐서 활약한 신행(信行) 스님이 개창한 종파로, 현재를 오탁이 가득한 악세(惡世)의 말법시대로 보고, 오직 중생에게 내재한 불성에 의지하여, 인간에 대한 존중과 철저한 보시행을 실천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 신행이 저술한 ‘삼계불법’에서 ‘십륜경’의 인용수는 무려 100여 차례에 이른다. 신행은 또한 ‘십륜의의입명’ ‘십륜략초’ 등을 편찬하였으니, 삼계교에서 ‘십륜경’의 교의를 얼마나 중시하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321굴 남벽의 ‘십륜경변’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화면 정중앙은 본경의 설법회상 장면들로 구성된다. 중앙은 지장보살의 주처(住處)인 가라제야산(佉羅堤耶山)에서의 설법회이다. 세존의 상부에는 우보(雨寶) 공양이 내리고, 그 상단에 구름층에는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두 손이 보이는데, 이것은 지장보살을 상징한다. 세존의 바로 아래에는 갈앙보살이 질문하는 장면, 정유천신이 질문하는 장면이 보이고, 그 아래 우측에는 지장보살을 포함한 세 제자가, 좌측에는 세 천녀가 법회에 참여하여 질문하는 장면을 그렸다. 

둘째, 화면의 우측 하단에는 지장보살이 고난을 구제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음식이 충족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 희락심(喜樂心)을 구족하고, 모든 병고가 제거되고, 중생의 악한 마음이 사라지며, 지옥에 빠지는 고난에서 벗어나며, 광증을 끊어 없애며, 물에 빠지거나, 화재에 휩싸이거나, 벼랑에서 떨어지는 등의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며, 뱀이나 괴수의 해침에서 벗어나며, 마음의 경지가 안정되며, 나찰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며, 모든 소원을 성취하며, 미묘하고 수승한 과보(미묘승과)를 얻는 등 갖가지 장면들이 세세하게 표현되었다.

셋째, 화면 좌측의 상단에는 지장보살이 몸을 변화한 모습을 그렸다. 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44현신(現身)을 구족한다. 수미산에 자리한 삼두육비신(三頭六臂神), 수미산에 자리한 사비신, 의좌보살, 선정에 빠진 신, 설법하는 모습의 신, 합장하는 신, 두 신이 합하여 십면(十面)을 육비신에게 향하는 모습, 사천왕입상 등으로 현신한 모습이다. 또한 보살이 설법하는 모습, 선정에 빠진 비구의 형상으로 변화한 모습도 보이며, 전륜성왕, 찰리(刹利), 나체로 걷고 있는 수타(首陀) 등의 형상으로 현신한 모습도 보인다. 그 밖에 남, 여, 신, 용, 손으로 일월을 받든 육비신, 광분한 나인, 사자, 코끼리, 마, 소, 새, 염라왕, 지옥 관리, 소머리의 옥졸, 속인, 악한 개(惡狗), 옥졸의 형상으로도 변해있다. 

넷째, 화면의 좌측에는 찰리잔다라현지상품을 묘사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말법시대의 갖가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즉 황야에서 세 사람이 사냥하는 모습, 한 사람이 동물의 사체를 짊어지고 있는 모습, 두 남자가 싸우는 모습, 한 남자가 여자에게 간청하는 모습, 침상에 누운 노인과 지팡이를 지고 있는 사람을 두 시녀가 간병하는 모습 등등이다. 그 밖에 군대가 전쟁을 위해 출행하는 장면, 코끼리왕이 상아를 보시한 본생담 장면, 전다라가 설법하는 법사를 방해하는 장면 등등이 묘사되었다. 

321굴 십륜경변의 주제는 지장보살 신앙이다. ‘십륜경’의 내용에는 중생의 고난구제와 응현(應現)의 내용들도 있으나, 이러한 부분들은 당시에 성행한 관음신앙을 주제로 한 경변에 넘겨주고, 십륜경변에서는 지장신앙 고유한 내용인 지옥 중생구제를 집중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이후 육도(六道), 십왕(十王) 등의 도상이 대량으로 출현하였다. 현재 오직 돈황에서만 전하는 두 폭의 십륜경변은 지장신앙의 이정표로 자리 잡았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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