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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수온(受蘊): 느낌의 무더기(vedanā-khandha)

‘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합해진 것일 뿐 

오온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나’는 없어
느낌은 신호전달이 전전두엽 전달 때 일어나는 정신 반응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느낌들의 쌓임이 곧 느낌의 무더기

편도체에서 시작한 신호들은 시상하부, 뇌줄기 등을 통하여 신체의 반응, 즉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편도체에서 시작한 신호들은 시상하부, 뇌줄기 등을 통하여 신체의 반응, 즉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오온(五蘊 pancakkhandha)은 다섯 가지 무더기, 즉 색온(色蘊, 물질의 무더기)·수온(受蘊, 느낌의 무더기)·상온(想蘊, 인식의 무더기)·행온(行蘊, 의도의 무더기)·식온(識蘊, 분별심의 무더기)을 지칭한다. 

붓다가 나를 해체해서 보니 이 다섯 가지 무더기(蘊, khandha 쌓임)들이 합해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온을 설하는 목적은 나(我)는 이러한 5가지 무더기들의 모임일 뿐 거기에 별도의 ‘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나는 없다. 따라서 오온은 무아(無我)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범위를 넓히면 오온은 생멸하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 제행무상, 제법무아다.

수온(受蘊, vedanā-khandha)은 느낌(受, vedanā)의 무더기(쌓임, khandha)이다. 영어로는 aggregates of feeling (느낌의 무더기)로 옮긴다. ‘상윳따 니까야’의 ‘삼켜버림 경(Khajjanīya-sutta S22:79)’ 에서 붓다는 느낌에는 괴로운 느낌(고수, 苦受), 즐거운 느낌(락수, 樂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불고불락수, 不苦不樂受)의 3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편, 느낌은 감각대상과 감각기관과 알음알이의 화합인 감각접촉으로 일어난다. 

‘상윳따 니까야 느낌 경 1(Vedanā-sutta, S14:4)’ 상식적으로 감각접촉은 감각대상과 감각기관의 접촉일 것 같다. 하지만 붓다는 거기에 알음알이가 함께 화합하는 것을 촉(觸)이라 설한다. ‘근’이 ‘경’을 만나면 ‘식’이 생기는데, 왜 근·경·식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라 했을까, 그리고 화합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지만 분명히 붓다는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識]가 일어난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고 한다. ‘상윳따니까야 괴로움 경(Dukkha-sutta S12:43)’ 근·경·식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감각접촉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필자의 지식의 한계를 넘어가는 붓다의 영역이다.

‘괴로움 경(S12:43)’은 느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감각기관(근, 根)과 감각대상(경, 境)이 만나서 알음알이(식, 識)가 일어나고, 근·경·식이 삼사화합하면 이어서 느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감각기관 x 감각대상 → 알음알이 → 촉 → 느낌의 순서로 일어난다. 알음알이에는 6가지가 있다. 눈, 귀, 코, 혀, 몸, 마노의 알음알이들이다. 즉,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을 바탕으로 느낌이 일어난다. 알음알이가 느낌의 재료라는 뜻이다.

뇌과학으로 보자. 대상을 인식하면 느낌이 생긴다. 인식은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나면 생기는 알음알이이다. 이 ‘식’들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재료들이다.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식’들은 느낌을 일으키기 위하여 편도체(amygdala)로 들어간다. 편도체에는 전체적으로 약 1200만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들은 여러 가지 그룹을 만들어 각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류하고, 또한 적절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신체의 다양한 곳으로 출력한다. 이처럼 편도체는 여러 가지 하부구조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이기 때문에 편도복합체(amygdaloid complex)라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감정은 27가지로 매우 세분화될 수 있지만 기본감정은 기쁨, 경악, 공포, 슬픔, 혐오, 분노이다. 편도복합체는 입력정보를 감정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분류된 감정정보는 각각의 감정에 적절한 신체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호르몬계통, 근육계통, 신경계통으로 출력된다. 

그 결과로 심장이 뛰거나, 얼굴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특별한 감정행동을 한다. 이와 같이 감정은 내적 및 외적 신체의 반응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42개의 근육이 있고, 이 근육들이 조합해 낼 수 있는 표정은 1만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3000개가 생활 속의 감정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한편, 느낌은 편도복합체에서 시작한 일련의 신호전달이 전전두엽으로 전달될 때 일어나는 정신적 반응이다. 

편도체에서 시작한 신호들은 시상하부, 뇌줄기 등을 통하여 신체의 반응, 즉 감정을 일으킬 뿐 아니라, 둘레계통, 뇌섬, 전대상피질 등을 통하여 전전두엽으로 전달되어 정신적 반응, 즉 느낌을 일으킨다. 

그러면 감정(신체 반응)이 먼저일까, 느낌이 먼저일까? 

우리는 길을 가다가 살모사를 만났을 때 피하면서 무서워한다. 무서워서 피한 것일까, 아니면 피하는 행동(감정)이 무서움이라는 느낌을 일으킨 것일까? 

뇌과학은 피하는 행동(즉, 감정)이 먼저라고 한다. 무서운 대상을 만나면 먼저 도망치는 행동이 일어나고, 이러한 행동이 ‘무섭다’는 느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천적을 만났을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천적’에 대한 자세한 모양새를 알고 난 후 피하면 경우에 따라 나는 이미 죽은 몸이 된다.
 
그렇기에 편도체로 가는 알음알이(識)는 자세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솥뚜껑이던 자라이던 자세히 알 시간이 없다. 일단 피하고 본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피하고 나서 돌아보니 자라가 아니고 솥뚜껑이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처음 대상을 만날 때는 수(受)가 상(想)보다 앞서 일어난다.

지금까지 느낌이 한 번 일어나는 과정을 뇌과학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느낌의 무더기는 무엇일까? 한순간의 나를 정의하는 데는 각각 하나의 색·수·상·행·식이면 된다. 

왜 붓다는 이들의 무더기가 모인 다섯 가지 무더기가 ‘나’라고 하였을까? ‘상윳따 니까야 무더기 경(Khandha-sutta S22:48)’은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에 대한 붓다의 설명 중 수온을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이를 일러 느낌의 무더기(수온, 受蘊)라 한다”고 강조한다. 

곧 살면서 경험한 느낌들의 쌓임이 느낌의 무더기라고 설명한다. 색·상·행·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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