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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세계인 혜초 스님의 여행기

기자명 남수연
  • 불서
  • 입력 2004.04.26 10:00
  • 댓글 0

치밀히 되짚어 8세기 대륙사 복원”

1908년 3월. 중국 북서쪽 감숙성에 있는 도시 둔황(敦煌)에서 남동쪽으로 20km 떨어진 명사산 절벽 천불동의 한 석굴에서 프랑스 학자 펠리오는 낡은 두루마리 하나를 발견한다. 제목도, 저자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이 필사본 두루마리에는 지금까지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기록이 담겨있었다.

신라의 고승 혜초(705~774) 스님이 4년 여에 걸쳐 인도와 이슬람권을 도보로 여행하고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이 1200여 년 만에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저자 혜초 스님이 신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15년 일본인 학자 다카쿠스 준지로에 의해서였다. 덕분에 좥왕오천축국전좦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우리 책이라는 사실은 입증됐지만 우리 학계의 연구는 이로부터도 훨씬 더 지난 후에서야 시작된다. 1934년 최남선이 『신정삼국유사』에 간단한 해제와 함께 여행기의 본문을 최초로 소개한 것이 그 최초의 시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닐곱 권의 번역서가 출간됐을 뿐이다.

둔황에서 발견된 좥왕오천축국전좦은 앞뒤가 떨어져 나간데다 그 분량도 매우 적어 227행에 총 육천여 자 남짓이 전부다. 또한 기록은 매우 간략하고 개괄적이다. 그 기록을 근거로 당시의 사회상을 재구성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좥왕오천축국전좦은 펠리오의 평가처럼 “법현(스님의 『불국기』)과 같은 문학적 가치도 없고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과 같은 정밀한 서술도 없는” 두루마리에 불과할 것이다.

문명교류사를 전공한 연구학자이자 중국과 이슬람 문명 연구에 두루 능통한 역주자 정수일 교수와 『왕오천축국전』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가슴 설렌다.

<사진설명>디지털로 복원한 혜초 스님의 인도 마하보다 대탑 순례 상상도.

그는 혜초 스님의 간결한 기록 속에서 일정한 법칙과 혜초 스님 특유의 시각을 날카롭게 건져 올렸다. 혜초 스님은 직접 다녀간 곳을 기술할 때 ‘어디서부터(從) 어느 방향으로(東, 西, 南, 北) 얼마 동안(日, 月) 가서(行) 어디에 이르렀다(至)’는 문장 형태를 전문에 걸쳐 일관성 있게 유지하고 있다.

각 국가별 특징을 기록 할 때도 왕성(수도)의 위치, 규모, 통치상황, 대외관계, 기후와 지형, 특산물, 음식과 의상, 풍습, 언어, 종교(특히 불교의 융성 정도) 등을 매우 규칙적으로 기록했다. 또한 지명과 국가-도시명 표기에 통례적으로 사용되던 중국식의 의역 한자 표기를 대신해 비록 일부이지만 현지의 발음을 그대로 음사한 점은 사료로써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중국과 인도는 물론 널리 이슬람 문명권에까지 닿아있는 역주자의 광활한 시야는 6000여 자에 불과한 혜초 스님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본 분량의 약 열 배에 달하는 503개의 자세한 주석을 가능케 했다.

“혜초는 분명 ‘위대한 한국인’ 이고, 그의 서역 기행은 거룩한 장거(長擧)이다.”
이 위대한 한국인은 가는 곳마다 불교 사원과 승려의 수,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우세 정도, 이교인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전파 정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불교 쇠퇴와 이슬람문명권에서의 일시적 부흥 등 당대 세계 불교 지도도 가늠케 한다.

1200년 전 동양이 배출한 위대한 한국인이자 세계인이며 위대한 승려였던 혜초 스님을 21세기 역사의 중심으로 다시 이끌어낸 저자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지는 책이다. 48,000원.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디지털로 복원한 혜초 스님의 인도 마하보디 대탑 순례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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