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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국유학과 미국의 불교

국비유학생 선발시험서 합격
미 SMU 법학대학원 유학길
불교가 전무한 미국 남부서
주간 불교모임 MTB 결성해

그해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 대사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문정관(Cultural attache)으로부터 온 것인데, 미 국무성 교환교육계획에 의하여 한국 법조인과 법학교수 중 미 국비유학생 선발시험을 실시한다는 공고문으로, 법조자격이 있거나 대학의 조교수 이상 교수로 재직 중인 자 중 지원자에 대한 선발시험을 거쳐 2인을 선발하니 뜻이 있는 자는 소정서류를 갖추어 미국 대사관 문정과에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유학 갈 대학은 미국 댈러스에 있는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School of Law(SMU)이며, 왕복 여비, 등록금, 기숙사비와 매월 150불 잡비 등이 지원됐다. 커티스 대령에게 그 공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더니, 그는 SMU는 자기 고향인 텍사스 내 사립대학 가운데 대표적인 대학으로 텍사스 주립대학과 쌍벽이며, 특히 법학대학원은 미국 남서부에서는 선호하는 대학에 속하니 “시험을 잘 보아 합격하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곁들었다.

나는 필기고사와 구술고사로 이뤄진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응시자는 주로 대학 교수들로 모두 합쳐 약 30명에 이르렀고, 나와 당시 충북대학 상법교수이던 정희철 교수(뒤에 서울 법대 상법교수) 둘이 합격됐다. 우리는 미 대사관에서 지정한 세브란스병원에서 미국 입국용 건강검사를 받았는데, 정 교수는 미국에 입국할 수 없는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이 되고 나 홀로 함격됨으로써 결원을 보충하지 않은 채 1960년 8월 홀로 떠나게 됐다. 커티스 대령에게 결과를 보고하자 그는 자기 일이나 되는 듯이 기뻐했다.
요즘은 미국 도처에서 티베트, 한국, 일본 등의 불교사원이나 선원(禪院) 등을 볼 수 있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불교는 낯선 종교였다. 나는 19세 무렵부터 단주(短珠)를 왼손목에 차고 다녔고 미국에 가서도 변함없이 보리자(菩提子)인 그 단주를 왼 손목에 끼고 살았다. 하루는 그 법학대학원 학부졸업반인 미스터 쿡(Mr. Cook)이라는 나와 비교적 가까이 지내는 학생이 항상 팔에 무슨 구슬을 차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나는 “이것은 불교의 스님이나 신도들이 지니고 있는 염주”라고 하면서, “크게 장주와 단주로 나눠지며, 가톨릭의 교직자나 신도들이 갖고 있는 수주(數珠)도 불교의 염주에서 유래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해 주니, 고맙다고 하면서 흥미로워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시간에 갑자기 미스터 쿡과 두어 명의 학생이 함께 기숙사로 찾아와서, 1층 라운지에 있으니 내려와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 취지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30분 정도씩 불교에 관한 기초적인 설명을 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즉답을 피하고 다음날까지 알려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내 방에 돌아와 이모저모로 생각해 보니 뜻있는 일인 것 같아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다음날 미스터 쿡에게 알렸더니, 그는 토요일 전에 모일 공간을 마련하여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고마워했다.

우리는 토요일 오후 4시에 법학대학원 본관 지하에 있는 휴게실의 한쪽에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한 학생이 “우리가 이처럼 정례적으로 모이려는 것이니, 모임의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생각하였는데, ‘불교모임(MTB·Meeting & Talking on the Buddhism)’이라고 하면 좋겠다”라고 제의하자 모두가 박수로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우리의 모임은 MTB로 불리게 됐다.

우리의 모임은 날이 갈수록 참가자 수가 늘어 10여명에 이르렀고 장소를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다행히 미스터 쿡이 법학도서관 한쪽에 있는 세 개의 소연구실 가운데 1호실(Lab.1)을 매 토요일 4시에서 5시까지 사용하도록 학장의 승인을 받았다. 약 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세미나실로, 모임을 위하여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장소에서 즐겁고 안정된 모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MTB는 졸업시험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계속한 후 막을 내렸지만, 당시 불교의 황무지에 가까운 미국의 남부에서 작은 씨앗이나마 뿌릴 수 있었던 것은 퍽 의의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86호 / 2023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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