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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의 수레에 실린 한 권의 경전

우린 모두 작가이고 보잘것없는 삶도 모두 경문

우주에는 단 한 권의 경전만 있고 그것은 계속 쓰이는 중
세계는 다채롭게 드러내고 모두가 각자 언어로 진리 표현
이 한 권의 경전은 우주 역사와 맞먹어…제일 큰 건 하나

대승은 일승이고, 가장 큰 것은 하나다. 그림은 일승법계도합시일인.
대승은 일승이고, 가장 큰 것은 하나다. 그림은 일승법계도합시일인.

나는 대승(大乘)으로 분류되는 유식 문헌을 연구해온 사람이지만 최근에 이르러 명료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저 대승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대적자들로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심한 모욕과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알게 된 바로는, 대승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런 환청에 시달렸다. ‘대승의 법은 부처님 설이 아니라 마구니 설이다. 그것을 좋아하는 너희는 정법을 무너뜨리는 사자충(獅子虫: 죽은 사자의 몸에서 저절로 생겨나 그 몸을 파먹는 벌레)이다.’ 마구니설, 사자충, 이런 말들은 불법이 혼탁해진다고 느낄 때마다 불교 내부에서 울리는 가장 강력한 경고음이다. 나의 옛 선배들이 거리낌 없이 쓰는 그 말들이 한때는 그들 자신을 겨냥한 말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대승을 엄호하기에 바빴던 그 시절로 돌아가 나도 한 번 그 논쟁에 끼어보고 싶어졌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상호 비방과 반목, 그에 뒤따르는 끝없는 회의감 등은 흔히 보는 장면이고, 그 길로 들어선 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래도 그것이 가령 무수한 세월 대승의 ‘무상보리’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보살의 부담만 하겠는가. 이제 막 새로운 짐을 걸머진 보살들은 큰 수레로 바꿔 타고 스스로 불을 밝혀 어두운 밤길을 헤쳐 나갔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이 궁금해진다. 즉 깊은 회의에서 신앙으로 또 이교의 오명에서 불교의 주류로 이끌어 준 그 길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여러 갈래 길이고, 횃불의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그런 길이었으리라. 나는 마치 그중 어떤 신비한 길의 조각난 형상들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래서 이제 그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 보려 한다.

우선 대승 경론의 편찬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외호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은 대적자들의 모욕적 언사에 맞서 엄중한 경고로 응수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옥에 던져질 만한 중죄의 목록을 열거할 때면 ‘대승은 부처님 설이 아니라고 비방하는 죄’를 앞자리에 놓는다. 한편 미륵의 후예들은 어찌했는지 살펴보면,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삼단논법을 연상시키는 논증식 안에 ‘대승 경전은 부처님 설이다’라는 주장[宗]을 세워놓고 몇 가지 이유[因]와 실례[喩]를 들어서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데 열중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자가 ‘장차 대승이라 칭하는 자들이 정법을 무너뜨릴 것이다’라는 예언[記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런 논증의 외피를 두른 낯선 어법은 잠시 대적자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너그럽고 조화로운 대승의 길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길은 내가 예전에 원측 스님의 ‘인왕경소’와 ‘해심밀경소’를 번역하면서 얼핏 보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먼 옛날 대승 경전의 편찬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교설을 선양하기 위해 은연중에 성전에 대한 모순된 관념을 자주 드러내었다. “이 경은 과거에 설해졌고 현재에 설해지고 있으며 미래에 설해질 것이다.”(‘인왕경’의 ‘산화품’) “나는 어느 날 밤 최정각을 얻고 나서부터 어느 날 밤 반열반에 들기까지 그 중간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설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설하지 않을 것이니, 설하지 않음[不說]이 바로 부처님 설[佛說]이다.”(‘능가경’ 제4권) 이와 유사한 문구는 대승 경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원측 스님의 책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의 해석을 따라가면서, 그 스님이 오랫동안 지속된 해묵은 논쟁을 아주 우아하게 넘어서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그 두 인용문에는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두 가지 상충된 관념이 나타나 있다. ‘부처님은 언제나 법을 설하지만 사실 한 글자도 설한 것이 없다.’ 이 문구를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다면, 부처님이 대승 경전을 설했는지 아닌지 하는 논쟁은 저절로 사라진다. 원측의 해석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참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언제나 그 자체로 머물고 있을 뿐 본래 언설로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부처님이 설하셨다고 해도, 그 설법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의 설법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서 따로 설했다고 할만한 것이 없다. 또한 문자를 빌려서 문자에 가둘 수 없는 진리를 설하였으므로 딱히 무엇을 설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설하면서도 설한 것이 없다고 한다.’(‘해심밀경소’의 ‘서품’) 나는 대승을 좋아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원측과 같은 길을 걸어갔으리라 생각한다. 그 한 예로 천 년 후에 등장한 이런 시를 들어 보겠다.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종이에 먹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펼쳐보면 한 글자도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채근담’) 이 시의 주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아마 그도 대승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상상해본 적이 있는 조금 다른 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그것은 특히 저 ‘인왕경’의 문구와 연관된다. ‘이 경은 과거에 설해졌고 현재에 설해지고 있으며 미래에 설해질 것이다.’ 이 문구가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우주에는 단 한 권의 경전만 있을 뿐이고, 그것은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 중이다. 이 한 권의 경전은 크게 두 개의 장(章)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이미 쓰인 부분으로, 기존의 불교 경론들이 여기에 실려 있다. 두 번째 장은 지금 쓰이고 있거나 언젠가 쓰이게 될 부분으로, 불교 경론을 제외한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이 두 번째 장에서도 세계는 다채로운 형태로 진실을 드러내고 있고, 중생들은 각자의 언어로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한 권의 경전은 우주의 역사와 맞먹는다. 제일 큰 것은 하나다. 이러한 경전을 실어 나를 수레로는 ‘일승(一乘)’이 알맞을 것이고, 그것을 보관할 장소로는 ‘법계(法界)’가 걸맞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해 ‘한 권의 경전’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경전의 두 번째 장에서는 지금도 누군가 자신만의 어두운 악몽 속에서 문장을 다듬고 다듬으며 무엇인가를 쓰고 있을 것이다. 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게으름과 무능으로 그런 글쓰기를 계속 미루면서 마치 소중한 어떤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가 일기를 아침 열 시에 쓰든 밤 열 시에 쓰든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이미 황혼에 들어선 지 오래된 사람이라도 평생 일기를 한 번에 압축해서 쓸 수 있지 않는가. 저 한 권의 경전은 어떤 문구가 첫 번째 페이지에 있는지 혹은 아흔아홉 번째 페이지에 있는지 무심하다. 다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작가이고,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도 모두 경문이 되는 것이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86호 / 2023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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