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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용문사 주지 승원 스님 

지금 이 자리가 행복하고 오늘이 좋은 날 되도록 정진합시다

먼저 가족과 도반에게 성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는 불자 되고
경전 가르침 사유하고 독송하여 아는 자 아닌 배우는 사람 되길
‘부처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 참구하며 정진하면 부처님 닮아

용문사 주지 승원 스님은 “행복해지려면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말을 하면서 나를 대하고 상대방을 마주할 것”을 당부했다.
용문사 주지 승원 스님은 “행복해지려면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말을 하면서 나를 대하고 상대방을 마주할 것”을 당부했다.

반갑습니다. 좋은 날 오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이 자리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항상 이 자리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이 항상 좋은 시간이어야 하고, 오늘이 좋은 날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만 시간을 해야 익숙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숙련공이 되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지금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진실한 불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불할 때 절을 일곱 번 하는 칠정례(七頂禮)를 합니다. 칠정례의 첫 대목이 무엇입니까?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입니다. 자,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磨耶衆)’입니다. 네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달마야중’의 ‘달마’가 무슨 뜻입니까? 이 부분을 물어보면 ‘가르침’이라는 것을 모르고 ‘달마 스님에게 절한다’라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불교 교리와 의식을 배울 때 ‘예불문(禮佛文)’은 가장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불교교리 강의를 다 들으신 분 중에서도 달마 스님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리 수업이나 스님들의 법문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달마 스님에게 절한다’고 인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아미타부처님의 나라는 어딥니까? 서방정토 극락세계라고 합니다.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가면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나라의 주인공이 아미타부처님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는 어느 부처님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현재 부처님을 석가모니라고 부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나라 이름은 사바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에 오실 부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미륵입니다. 미륵부처님의 나라 이름은 무엇입니까? 용화세계입니다. 그 용화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용문’입니다. ‘용문’이라는 한 단어에도 무궁무진한 교리체계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이제 용문사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용문사는 신라 문무왕 시대 때 원효 스님께서 창건하셨다고 합니다. 원래는 이 자리가 아니고 보광동에 있는 보광사였다고 합니다. 그 절의 후신이 용문사라고 합니다. 보광사는 지금의 금산 보리암이라는 설도 있고 보광사가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현재 보광사는 흔적이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 보광사는 남해 향교와 마주 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유생들이 절 보기 싫다며 치우라고 해서 이 장소로 옮겼다는 설입니다.

옛 사찰들은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소실된 곳이 많았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을 양성한 사찰로 역할을 했던 용문사 역시 그와 같은 난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용문사는 현종 때인 1661년부터 재건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으로 보면 10년 동안 도량을 건립했는데 전각이 33동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큰 집입니다. 그래서인지 용문사에는 남아있는 유물만 하더라도 400여점이 됩니다. 

현존하는 보물로 대웅전이 있습니다. 대웅전 조각품들은 정말 일품입니다. 용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야외 행사할 때 거는 부처님 그림인 용문사 괘불도 보물입니다. 괘불은 숙종 때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숙종께서 용문사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는 괘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용은 임금을 상징합니다. 용문사 괘불에는 용이 여덟 마리가 있습니다.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이 계시는 봉서루도 유형문화재입니다. 이렇게 용문사에는 눈길 가는 곳, 손길 닿는 곳, 발길 머무는 곳마다 선조의 지혜와 정신이 담긴 성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숙종 때 용문사는 ‘수국’ 사찰이 되었습니다. ‘수국’이라 함은 나라를 지키는 사찰이라는 뜻입니다. ‘수국사’라는 금패를 내려 받은 데 이어 ‘봉산수호패’도 받았습니다. 용문사의 산은 호구산입니다. 당시 연료는 나무가 주를 이뤘습니다. 또 배를 만들 때도 나무를 이용했습니다. 봉산수호패는 연료나 배를 만드는 용도 등으로 나무를 많이 베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국가의 재난이 생길 시 집을 짓는 재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산을 보호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의 복장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이 추정하기를, 당시 봉산수호패나 수국사 금패를 내려 받을 때 많은 유물이 같이 내려왔을 것이고 삼존불도 그 당시 궁에서 내려왔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는 불교가 탄압받을 시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유생이 눈엣가시처럼 여겼겠습니까. 그런데 ‘수국사’ 금패가 내려왔다고 하니 그 뒤로는 용문사를 어찌하지 못했을 겁니다. 용문사 스님들에게 무슨 소리를 한다는 것은 임금에게 향하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용문사의 사천왕은 다른 사찰과 달리 아귀가 아닌 탐관오리를 밟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런 부분도 수국사 금패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문사에는 임금의 축원당을 지어놓고 임금의 건강과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숙종이 궁과는 거리가 먼 남해라는 지역에 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도량을 세웠을까요? ‘석포 김만중’이라는 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김만중 선생은 ‘구운몽’의 저자입니다. 김만중 선생이 ‘구운몽’을 남원에서 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혹자들은 이쪽에서 썼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이 숙종에게는 첫 번째 부인의 삼촌, 처삼촌이었습니다. 숙종은 김만중 선생을 굉장히 신뢰하고 의지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선생께서는 남해에서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용문사가 그런 연유로도 오늘날까지 잘 지켜질 수 있었지 싶습니다. 

도량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현존하는 성보를 대하다 보면 지금 이 자리에서 불자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불자의 본분으로 돌아와 봅시다. 여러분께서는 ‘선지식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제방의 도량을 순례하고 스님들께 법문을 청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멀리 계신 스님만 선지식이 아닙니다. 여러분 바로 옆에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선지식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무슨 뜻입니까?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한 줄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정작 한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가족들이 많이 싸웁니다. 세상을 떠날 때 울고불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불자님들은 대부분 이 구절을 쉽게 외웁니다. 그렇다면 가족을 위해, 옆에 있는 도반을 위해, 지금 앞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과거를 회상하면 괴롭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선지식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듯 행복이라는 것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행복을 만들고 만들지 않고는 바로 내가 하는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습니다. 경전을 독송할 때도 건성으로 외우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다 외우고, 다 아는 것이더라도 다시 한번 천천히 그 가르침을 사유하며 독송해보시기 바랍니다. 

역대 성인께서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배우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안다’라고 생각하면 자만심, 교만이 생깁니다. 배우는 사람의 자세는 “안녕하세요?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됩니다. 불자님들은 아는 사람이 되지 말고 배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천수경’에는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아지이다.’ 그 뜻을 알려면 부처님과 자주 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기도를 하고 예불하면서 부처님을 자주 접하다 보면 부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바쁘고 저것도 바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더라도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하면서 조금 언짢은 일이 있어도 늘 웃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주변 분들도 행복합니다.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말을 하면서 나를 대하고 상대방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과연 부처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항상 공부하고 정진하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처님을 닮아가기라 믿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안전이 최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정말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늘 안전도 생각하시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여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6월25일 부산 여래사불교대학 주최 '선지식 친견 성지순례-제7차 남해 용문사 순례'에서 용문사 주지 승원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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