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긴 원로 불교학자 범재 이민용 선생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학자이자 사업가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글과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 삶의 궤적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스로도 책에서 밝히고 있듯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는 그로 하여금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사물을 더욱 뚜렷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차이와 다름을 고백한 것이 이 수필집에 실린 글들’이라는 이민용 선생은 ‘한국과도 다르고, 이주한 땅과도 밀착될 수 없는, 그 어떤 정황과도 비슷하지 않은, 이 모순에 가득 찬 이민 생활 리포트’라고 스스로의 글을 정의했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강단에 섰지만 1976년 그는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갔다. 학문과는 담을 쌓고 보석상을 생업으로 삼아 전념했다. 하지만 다시 인연에 이끌려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미국 한인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동국대 역경위원,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동국대 객원교수, 한국불교연구원장,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법보신문 필진 등으로 활발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펼쳤다.
이 책은 그의 삶에 대한 회고이며 학문적 토대와 전반에 대한 개론서이기도 하다. 월북자 가족으로 1970년대 군사독재의 시대를 버틸 수 없었던 선생은 학문과의 절연을 각오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기독교 천국인 한인사회에서 불자인 것이 곤혹’스러워 서양인 불자나 학자들과 더 가까이 교류했다. 그렇게 꼬박 10년 동안 ‘공부’없는 ‘생업전선’에서 귀금속과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는 일로 적지 않은 성공을 일구며 살았다. “내 인생을 ‘금강경’을 천착하는 것으로 보내려 했으나 결국 금강석 다루는 일로 끝마치게 됐다”는 그의 고백은 조금의 과장도, 거짓도 아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처럼 하버드대 동양학 강의를 청강하며 다시 학문의 길로 회귀했다. 비록 뒤늦게 다시 시작한 학문이었지만 그에게 10년 전에는 없었던 비장의 새로운 안목이 있었다. 학자의 책상 위 책 속에만 존재하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로만 존재하는 불교학에서 벗어나고 익숙한 문화와 종교에서 한 걸음 떨어져 미국이라는 사회 속 이민자·소수자의 종교인 불교, 섬처럼 떠 있는 불교에 대한 접근이었다.
학문을 시작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후 다시 학문으로 회귀하기까지를 기록한 1부에 이어 2부 불교리뷰, 3부 단상, 4부 이민자의 눈으로 본 세상에 수록된 글은 ‘내부를 간직한 외부자’로서 저자가 미국에서 본 불교의 진면목을 더 넓게 더 멀리, 더 깊게 천착해 나가고 있음이 드러난다.
불교인이며 불교학자로, 하지만 ‘거리를 둔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그의 시선은 오늘날 변화, 개혁, 행동, 결단이라는 단어에 직면한 한국불교계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할과 방처럼 다가온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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