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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차별의 벽은 없다

기자명 이병두

지난 6월20일 인터넷에서 주요 뉴스를 훑어보다가 ‘부산 최대 라이벌 사우디의 파격…PT연설 절반이 여성이었다’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2030년 개최되는 세계박람회(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려는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꼽히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로 칭함)라는데,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성 인권 신장 변화 속도가 이토록 빠르리라 내다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엑스포 유치 설명 PT를 한 여섯 명 중 세 명이 여성이었다고 하니, 사우디가 내세운 ‘포용적이고 평등한 엑스포 개최’가 세계 여론의 호응을 받을 만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엑스포 PT의 마지막 연설자로 나선 미국주재 사우디 대사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우디도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나라인데, 미국주재 대사를 여성이 맡고, 엑스포 유치와 같은 국제행사에서 마지막 연설자로 나서게 했다는 사실이 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필자는 1979년 6월부터 2년 2개월 동안 사우디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어서, 그 나라 관련 뉴스에 관심이 많다. 십수 년 전부터,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금지하는 법률을 일부러 위반하며 운전하는 모습과 차바퀴 아래에 부르카를 깔고 그 위로 차가 지나가게 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Youtube)와 자신의 SNS에 올려 경찰에 끌려가 처벌을 받는 식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여성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무모하게만 보이는 권리 주장과 도전’이 없었다면,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사우디에서 몇 해 전부터 여성의 투표권뿐 아니라 피선거권을 인정하여 지방의회선거에서 여성 의원이 여러 명 탄생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으로 화제를 바꾸어보자. 1957년 9월, 아칸소의 리틀록이라는 곳에서 백인 학생들만 다니던 학교에 ‘흑인 학생도 입학할 권리가 있다’는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이를 거부하고 주방위군을 학교로 보내 흑인 학생들의 접근을 막았다.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즉각 해산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연방군을 투입하겠다”는 명령을 내렸지만 주지사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대통령이 미군의 정예 공수여단을 투입하고 주지사의 ‘주방위군 지휘권’을 박탈하여 사태를 해결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는 “버스 기사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한다. 앞에서부터 네 줄은 반드시 백인들만 앉아야 한다. 승객이 많아지면 흑인들은 백인들을 위해서 본인들의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법이 존재했다. 1955년 12월1일,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일터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 흑인 전용 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갈수록 백인 탑승객들이 늘어나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지자 기사가 흑인들에게 좌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파크스는 “흑인 좌석에 앉은 내가 백인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다”며 양보를 거부하다가 버스 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1년이 넘도록 ‘버스보이콧운동’을 펼친 끝에 연방대법원에서 ‘버스 안에서의 차별 철폐’ 판결이 나오게 되었다. 결국 무너지지 않는 차별의 벽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비구니승가는 이번에 ‘제18회 샤카디타 세계대회’를 원만 회향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성 불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로 갖게 된 자신감을 자량(資糧)으로 삼아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산이 움직일 때가 왔다./ … 잠들었던 여자들이 모두,/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 1911년에 일본 여성 시인 요사노 아키코가 읊은 이 시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이병두 beneditto@hanmail.net

[1688호 / 2023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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