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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제처로의 전직과 ‘미국행정법’의 첫 출간

법제처로 전직 후 매일이 일더미

일제·미군정 법 대체입법 맡아
업무량 급증…1년 만에 승진도
美국무성서 ‘행정법’ 집필요청
수락 1년여 만에 첫 저서 출간

나는 5·16 직후에 귀국하게 되었는데, 귀국 다음날 미국대사관에 들러 귀국인사를 한 다음, 바로 상공부를 방문해 귀국신고와 함께 복직원을 제출했다. 곧 중앙처에 있는 내각사무처(5·16 직후에 법제처를 총무처와 병합하여 내각사무처로 하고, 종전의 법제처는 법제국으로 하되, 내각사무처에 법제담당 차장을 따로 두었으나, 얼마 뒤에 다시 종전대로 총무처와 법제처로 복원했다.)로 당시 법제차장인 박일경 박사와 김도창 법제관을 귀국인사차 찾아갔다. 그분들은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제 법제처로 자리를 옮겨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하였다. 나는 오늘 상공부에 복직원을 제출한 것을 말씀드렸고, 나로서도 법제처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무방할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을 전했다. 박 차장께서는 “우리도 바로 전직절차를 밟겠다”고 하시면서 절차가 끝나는대로 곧 연락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이해하고 돌아갔다.

학문과 그에 관련된 실무를 병행하는 것은 미국 유학을 가려할 때부터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소망이었다. 특히 내 전공 분야는 행정법학이었기 때문에 행정실무와 동떨어져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뜻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곳이 행정부 안에서는 법제처라고 생각하였다. 법제관으로서 행정각부의 법령을 심사하면서 행정법이론을 반영할 수 있음은 물론, 대학 출강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내가 법제처로의 전직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의 일이다. 법제처를 다녀온 지 얼마되지 않아 법제국 제3과장으로 발령이 났으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법제국 제3과는 각국의 법제에 관한 조사 연구를 담당하는 부서였기에 업무가 비교적 한가로운 편이었으나 약 2개월 뒤에 부이사관급인 부법제관으로 승진되면서 무척 바빠졌다. 우선 5·16에 따른 정당법, 선거법 등 정치입법을 비롯하여 당시 시행중이던 정부수립 당시의 일제법령과 미군정 법령은 1963년 12월31일까지 대체입법을 하되 그때까지 대체입법이 되지 않은 법령은 1963년 12월31일을 기하여 효력을 상실하도록 포고령에 규정되었기 때문에 그 업무가 여간 많은 것이 아니었다. 원래 법제처는 야근이 없는 것이 특색이었는데 그 당시의 법제처에서는 야근이 오히려 통상적인 일이 되다시피 했다. 거기에 더하여 나는 빈번하게 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 불려가 그곳 일을 거드는 예가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박일경 처장님이나 김도창 법제관처럼 대학 출강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시간외 근무로 메꿔야 했다. 그러자니 매일을 일더미 속에서 보낸 셈이다. 그러나 부법제관이 된 지 꼭 1년 만에 이사관인 법제관으로 승진한 것이 큰 위안이라면 그런대로 위안이 된 셈이다.

1962년 여름쯤으로 기억된다. 하루는 미국 대사관 문정관 헨더슨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본국으로부터의 요청사항이 있어 상의하고자 하는데, 다음날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와 다음날 점심약속을 하였다. 다음날 만난 이야기의 요점은 미국 국무성에서 내가 ‘미국행정법’을 개관하는 책을 집필하여줄 것을 희망하면서, 그 책의 인세와 책을 인쇄할 용지는 미국 국무성이 부담하고 책이 출판되면 500부를 국무성에서 산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출판기간을 묻자 1년 이내면 된다고 했다. 그때까지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주요 아시아 국가에 미국행정법에 대한 개론서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행정법을 전공한 내가 그 집필자로서 적임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나는 즉석에서 결정하지 않고 2~3일 내에 결론을 알려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대사관에서 나오는 길에 그곳에서 멀지 않은 법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법문사에 들러 고 김성수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법문사가 맡아서 할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하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일을 맡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그 이듬해 나온 것이 ‘미국행정법론’이라는 책이고, 나로서는 처녀출판인 셈이다. 이 책은 뒤에 ‘영미행정법’이란 이름으로 개정출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88호 / 2023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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