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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핵심은 정견이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은 미성숙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붕괴된 핵발전소에서 나온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방출은 지구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무모한 행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인류는 아직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지구온난화, 환경과 생태 파괴, 지구자원의 고갈, 부의 불균형, 권력의 독점, 약자·소수자·인종·여성·이민자에 대한 차별 등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부정과 부조리에 의한 고통은 무지로부터 발생한다.

무지를 타파하는 첫 길목이 정견이다. 불법의 핵심인 고집멸도 4성제를 자각한 바른 견해를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난 집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4성제야말로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야 할 소중한 가르침임을 절실히 느낀다. 인간 자신의 한계상황을 외면하기 때문에 문명의 질병이 생긴다. 정견을 위해서는 연기로 얽힌 전체의 입장에서 균형과 중심을 갖고,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난 백지상태의 의식이라야 된다. 이 안목에서 비로소 진리를 향한 도의 문에 들어서게 된다. 

정견은 불교만이 아니라 세상 윤리의 토대가 된다. 필자는 그동안 근대 일본불교가 국가 차원의 호전적인 군국주의와 연계되었을 때 얼마나 비윤리적인 상태가 되는지를 연구해 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불교계는 전시교학을 만들어 자신의 신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한 현상의 원인은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냉철한 윤리적 판단을 마비시킨 교단 또는 지도자들 자신에게 있었다. 중생의 고통에 눈감은 교의의 관념성과 그 판단을 현세가 아닌 내세로 이월시킨 맹목성의 포로가 된 것이다. 

종교가 현실과 유리될 때 삶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약육강식의 질서가 판을 치는 시대에 그래도 마지막 보루는 종교다. 중세 십자군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가톨릭이지만 애초에 로마에서 국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신교가 갖는 윤리적인 가르침에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모세의 십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는 첫 계명부터 네 번째까지는 윤리도덕을 요구하지 않는 다신을 숭배하는 로마인들에게는 인연이 없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부터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까지의 계율은 로마인들도 지키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후자의 여섯 가지 윤리 항목은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짐승에 머무르느냐 아니면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말법사관은 윤리의 지킴이인 종교의 타락을 경고한 것에서 나온 사고다. 세상은 무법천지이지만 성현의 깨달음에 의거한 불법이라야 질서를 세워 바른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말법은 사회를 교정할 불법의 힘이 쇠약해진 법멸을 의미한다. 석존 당시에는 세상의 빛인 깨달음을 얻기가 쉬웠지만, 그러한 성현의 회상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깨달음을 얻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 또한 줄어든다. 그래서 악이 무성한 인류문명에 경종을 울리는 정법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조사들이 불석신명의 정신으로 수행하여 불조의 혜명을 잇고 있기에 불법은 유전된다.

정견은 윤리의 핵심이다. 무상·고·무아에 대한 통찰, 12인연의 역관에 의한 무명 제거를 통한 열반과 해탈은 정견에서 시작된다. 정견은 고통에 처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치유하는 힘이다. 이처럼 불교윤리의 출발은 욕망으로 뒤엉킨 개인의 실존적 한계와 더불어 집단적 욕망인 공업에 의한 문명의 한계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에 있다. 그럴 때 무지와 결별하는 파사현정의 정의(正義)가 솟구친다. 야만의 시대에 이웃과 지구를 건질 마지막 보루가 불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인류에게는 희망이다.

원영상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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