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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 다시 일깨우는 선지식들 매서운 죽비

  • 불서
  • 입력 2023.07.17 14:53
  • 수정 2023.07.17 21:01
  • 호수 1689
  • 댓글 0

치문경훈
현진 스님 옮김 / 불광출판사 / 728쪽  / 5만원

초발심(初發心)은 진리를 깨쳐 불도를 이루겠다고 처음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어떤 경계에서도 초발심을 지속하면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허나 첫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철석같은 다짐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편안한 것에 머무르려 한다. 간화선 주창자인 대혜 스님이 ‘익숙한 것은 낯설게 하고 낯선 것은 익숙하게 하라’고 한 것도 결국은 초발심을 잃지 않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치문경훈(緇門警訓)’은 ‘먹물 옷을 입은 이가 경계 삼고 교훈 삼을 글’이다. 4년 과정의 사찰 승가대학에서 1학년을 치문반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출가하면 처음 배우는 것이 ‘초발심자경문’과 더불어 ‘치문경훈’이다. 불교는 무엇이고, 출가자는 어떤 마음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종합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치문경훈’은 원나라 환주지현 선사가 1313년 펴낸 것으로 불교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뛰어난 문장들을 엮은 책이다. ‘치문경훈’은 발간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히 중시됐다. 고려말 태고보우 스님이 원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처음 전해진 ‘치문경훈’은 조선 숙종 때인 1695년 백암성총 스님이 원문에 주석을 더해 ‘치문경훈’ 10권(3책)으로 출간했다. 전통강원의 이력 과정에 편입된 것도 이때부터다. 근대에는 석전 스님, 진호 스님, 탄허 스님 등 대강백들이 ‘치문경훈’에 주석을 붙여 발간하기도 했다.

총 200여편의 글이 수록된 ‘치문경훈’은 불교 명문장의 대명사다. 선사와 율사, 법사, 논사 등 역대 고승들 글은 물론 양나라·수나라 고조 등 황제들, 백낙천과 황정견 등 대문호, 범엽과 사마온 등 역사가, 방거사와 무진거사 등 당대 명성을 떨쳤던 거사들, 안시랑 등 공경대부, 출가한 아들에게 절절한 당부의 말을 남긴 동산양개 선사의 어머니 글도 수록됐다.

그만큼 ‘치문경훈’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다. 진나라 때부터 원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고승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글이 수록됐기에 일반적인 지식 정도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치문경훈’은 불교는 무엇이고, 출가자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종합 안내서이다. 올해 3월 열린 조계종 구족계 수계산림. 
‘치문경훈’은 불교는 무엇이고, 출가자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종합 안내서이다. 올해 3월 열린 조계종 구족계 수계산림. 

현진 스님의 ‘치문경훈’은 2000년 출판된 책의 개정판이다. 중앙승가대 전 총장 종범 스님은 당시 추천사에서 “‘치문경훈’은 한역 경전을 독파하는 도구로서 한문을 익히는 동시에 붓다의 종지를 함께 느껴볼 수 있으며, 나아가 여러 종류의 글을 통해 불교의 참된 모습을 가늠해보는 역할에서만큼은 독보적이다. 그러기에 아직까지도 이 책은 온고(溫故)의 대상이지 버림의 대상은 분명 아니다”라며 “공부하는 학인의 손에 의해 새내기 감각으로 정리됐다는 점에서 조금은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온 현진 스님은 이제 학인을 넘어 한문, 범어, 팔리어 등 불교 언어 전반에 정통한 권위자다. 현진 스님의 ‘치문경훈’이 초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업그레이드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진 스님은 1936년 진호 스님의 ‘정선현토치문’을 저본으로 누락이나 중략 없이, 한문으로 된 본문과 주석을 모두 담고 꼼꼼히 우리말로 옮겼다.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직역하되, 압축되거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상세히 풀어쓰고 도움말을 일일이 덧붙이는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각각의 글이 마무리된 뒤에는 인명과 지명, 한자와 한문의 용례도 수록했다. 한문 경전의 주석서나 해설서에서 빠져 있던 산스크리트와 인도불교에 대한 설명도 추가한 것도 개정판의 큰 특징이다.

‘치문경훈’은 불교한문 입문서이며 초심자의 첫 마음을 굳건히 다지려는 이들의 오랜 도반이다. 동시에 초발심을 잊지 않으려는 이들을 위한 선지식들의 사자후이며 매섭게 내려치는 장군죽비다. 현진 스님의 ‘치문경훈’은 우리를 그 사자후와 죽비를 생생히 마주할 수 있도록 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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