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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햇볕의 그림자-함명춘

기자명 동명 스님

햇볕의 일은 그늘을 만드는 것

햇볕은 공평·위대한 CEO
위대한 CEO가 가는 길에
그림자 더 넓고 깊게 생겨
나도 햇볕 같은 주지되고파

햇볕이 나무의 몸을 빌려
그림자를 만드네요
그림자 속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네요
햇볕이 흘린 땀방울 같아요, 눈물 같아요

어쩌면 햇볕에게 이 지구는
고단한 허리를 두드리며
아버지가 몰래 소리 없이 눈물을 쏟고
잠시 쉬었다 가곤 하던
뒤꼍의 헛간 같은 건지도 몰라요

나뭇잎과 새들의 몸을 빌려
햇볕이 또 그림자를 만드네요
(함명춘 시집,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천년의시작, 2020)

햇볕만큼 위대한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또 있을까? 누구에게나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권력을 행사하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역할을 해주는 이가 바로 햇볕이다. 참으로 공평하기에 햇볕을 베풀어주는 태양은 인도신화의 정의의 신 바루나(Varuna)와 계약의 신 미트라(Mitra)의 눈이라고도 한다. 인도인들은 사법적인 정의가 확립되고, 공평한 계약이 성립될 수 있으려면 태양의 눈과 같은 공평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위대한 통치력을 행사하면서도 햇볕이 나만 위대하다, 내 주장이 옳다 하고 우긴 적 있었던가?

햇볕이 하는 일은 한없는 밝음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인의 통찰력은 그늘을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햇볕이 그늘을 만드는 방법은 나무의 몸을 빌리는 것이다. 햇볕이 나무에게 다가가 나무의 몸을 빌리면 나무의 몸만큼의, 또는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나무의 몸에 비해 월등하게 큰 크기의 그늘을 만든다.

달리 말하면 햇볕은 어떤 존재를 만나건 그가 불투명한 존재라면 겸손하게 그 앞에서 멈춰준다. 그리고는 불투명한 존재가 요구하는 대로 기꺼이 불투명한 존재의 그림자가 되어준다. 투명한 유리를 만나면 또 유리가 원하는 대로 아무런 손상 없이 지나가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햇볕같이 위대한 통치자가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에, 이 시의 주인공인 햇볕은 그림자가 되어 그늘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에 시인은 그림자를 햇볕이 흘린 ‘땀방울’ 아니 ‘눈물’ 같다고 말한다. 아, 위대한 시인의 눈이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햇볕을 발견한 것도 놀랍거늘, 그 속에서 햇볕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을 닦아주다니!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1억5000만km, 햇볕은 그 먼 길을 달려와 마침내 지구에 도착했다. 그래서 햇볕에게 지구는 “고단한 허리를 두드리며/ 아버지가 몰래 소리 없이 눈물을 쏟고/ 잠시 쉬었다 가곤 하던/ 뒤꼍의 헛간 같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뒤꼍의 헛간 같은 것이 바로 나무의 그늘이자 그림자이니, 시인에게 그늘과 그림자가 ‘땀방울’로도 보이고 ‘눈물’로도 보였던 것이다. 가장 위대한 CEO에게는 또 그 위대함만큼 깊은 그늘도 있을 것이다. 위대한 CEO일수록 챙겨야 할 권속들도 많아지게 마련인 법, 햇볕이 가는 길에 나무들이 많이 있을수록 그늘도 짙어지듯이, 위대한 CEO일수록 그가 가는 길에 그늘과 그림자도 넓고 깊게 생겨날 것이다.

오늘날의 CEO들을 생각해본다. 대통령도 기업의 대표도 지방자치단체장도 주지스님도,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나 어머니, 소녀가장까지도 CEO들이다. 그들도 국민이나 직원이나 시민이나 신도나 가족을 만나면 곧 그들의 그늘이 되어야 한다. 그들도 햇볕 같은 CEO가 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나도 햇볕 같은 주지스님이 되어 사찰을 찾는 아프고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넉넉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뭇잎과 새들의 몸을 빌려 햇볕이 또 그림자를 만드는 동안 구옥순의 시가 또 다른 ‘햇살론’으로 나를 일깨운다. “햇살은/ 누구나 칭찬해요.// 담장 위의 장미꽃도 예쁘다./ 논 벼랑에 피어 있는 제비꽃도 참하다./ 논둑에 핀 자운영도 곱다./ 들판을 수놓은 민들레도 환하다.” 그래도 잡초는 칭찬할 수 없지 않을까? 햇볕은 ‘금강경’의 말씀으로 대답한다. “잡초는 잡초라는 이름일 뿐 잡초가 아니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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