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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의 간절함 폄하돼서야

기자명 성원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07.31 13:02
  • 수정 2023.07.31 13:03
  • 호수 1691
  • 댓글 0

‘부처님 법 전합시다’ 
처음 불교를 접한 날부터 들어왔던 ‘성불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올해 바뀌었다. 가히 한국 불교사에 대전환점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성불을 미루고 전법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끔 얘기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공공적으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 조계사 법당에 들러 절을 하고 청년회에서 나누어준 불교 기초교리 책자를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단숨에 읽고 불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해 스스로 개종했고 6개월이 지나 출가하였다. 무엇이 한 젊은이의 삶의 나침판을 일순간 180도 바꾸어 놓았을까?

바로 지장보살의 원력이었다. 많은 기초교리가 있었지만 가장 충격을 받았던 내용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지장보살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지옥이 다 비기 전에는 성불하는 것도 미루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시는 보살’이라는 글을 보는 순간 참다운 종교의 가치를 강렬하게 느꼈다. 기존에 몸담았던 종교의 교리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각해볼 가치 없이 지옥에 들어가고 그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다. 저주같이 버려져 지옥으로 간다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는 달랐다. 인간은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해서 일생 죄를 짓고 지옥에 갈 수도 있지만 그들을 구원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끝없이 애쓰는 종교적 가치를 가졌다. 중생을 향한 한없는 자비의 서원은 한 젊은이를 불자로 이끌어 들이기에 충분했고 승려로 만들었다. 물론 출가의 직접적인 계기는 성불하여 완전한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성불보다 전법을 우선하자는 종단의 몸부림을 폄하하는 글이 올라와 불자들이 언짢아하고 있다. 교계에서 뭐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불교의 절대적 지향점이 성불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되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성불을 미루고 전법에 매진하겠다는 사람이 이 정도 글을 보고 화를 내거나 좌절한다면 진실된 서원을 세웠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혹독한 교리적 부정과 난관에 부딪혀도 전법의 길을 멈출 수 없는 이 시대의 소명으로 여기고 나아가야 모두가 지장보살의 화현이 되고 불국토를 이루는 선봉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 성불을 미룬 살신성인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수없이 많다. 불교의 교리를 받들었던 신라의 화랑도 그렇고 임진왜란 때 성불하고자 앉았던 좌복에서 일어나 불교의 불살생 계율을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손에 무기를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무수한 승병들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이 불교적 교리에 비추어 결코 옳다고 해서도 안 되고 옳을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종교적 가치마저 내려놓으면서까지 그 길을 가야 했던 불자들과 스님들의 아픔을 이해해야 하듯이 지금 우리 불교의 위기는 지고지순한 가치인 성불마저 미루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인 것이다. 지금 불교가 하고자 하는 전법의 기치는 온갖 가치관의 혼재와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대중들에게 정법을 전하여 안락의 정토를 이루려는 전법의 서원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더 강하게 다짐하고 다짐할 일이다.

어느 언론에서 ‘이러다가 조계종이 ‘팥소(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표현을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앙꼬 가득한 찐빵의 맛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맛난 빵을 마다하고 속살 없는 빵을 씹으면서까지 전법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나아가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오늘 이후로 전법 완성의 그 날까지 앙꼬 담긴 빵을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 임란에 나서던 승병들 같은 절박함으로 성불을 잠시 미루고 ‘부처님 법 전합시다!’

성원 스님 조계종 미래본부 사무총장 sw0808@yahoo.com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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