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특히 사는 곳이 도심이거나 직장이 시내에 위치한 경우 아마도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매일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길거리에서 본 사람들 가운데 저녁에 집에 들어와 가만히 하루를 회상해 보면 내 마음 안에 기억나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적은 몇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러한지를 살펴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특별히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나치는 그 많은 상점이나 여러 가지 물건의 경우도 그 날 저녁에 회상을 해 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즉 내 마음이 분별을 하지 않게 되면 어떤 사람이나 풍경, 물건이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마치 허공처럼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분별되지 않은 대상은,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내 마음 안에서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마음이 분별을 해서 좋다, 나쁘다고 판단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 대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탐심이나, 나에게서 밀어 내치고 싶은 진심의 마음이 일어나 괴로워진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며칠 전에 조계사 근처를 걸어가는데 어떤 외국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피면서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는 그 즉시 바로 분별심이 일어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저렇게 걸어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면 뒷사람들이 그 연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그걸 모르다니 하면서 말이다. 더불어 걸어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위법인데 그걸 모르나 보다 하는 망상도 들었다.
그 사람 담배 연기가 결국 내 얼굴에 닿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보다 더 빨리 걸어서 그 사람을 앞질러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걸음의 속도를 빨리 내어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분별을 하고 나니 그날 나를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불편하게 했던 담배 핀 그 사람의 모습은 마음속 자국이 되어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한번 내 마음이 담배 연기에 대해 특별히 좋다는 마음이나 싫다는 분별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아무리 내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분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텅 빈 허공처럼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고 기억의 자국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내가 괴로운 것은 단순히 상대 잘못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상대가 잘못을 했다고 분별한 내 마음도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삶의 번뇌는 분별을 해야 일어나지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무엇도 번뇌가 되지 않는다.
‘법화경’의 ‘화성유품’에서 보면 대통지승 부처님께서는 범천왕들과 십육 왕자들의 청을 받아 법륜을 굴리면서 사성제와 12연기법을 설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12연기법은 왜 우리 중생들에게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생기고, 어떻게 하면 그 고뇌들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도 놀라운 사실은 그 고뇌가 생성되는 원인이 바로 좋다 싫다는 분별심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대상을 우리 감각 기관을 통해 접촉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이 올라오고, 그 느낌을 따라서 좋다는 마음, 싫다는 분별이 생기면서 취하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러면 드디어 그 대상이 세상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 존재감이 부여가 되면서 우리에게 우비고뇌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고뇌가 사라질까? 그것은 바로 분별하는 마음을 쉬었을 때 그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는 부처님의 통찰이시다. 좋고 싫다는 분별을 취했기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지 원래부터 괴로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설하셨다. 이는 희소식 중에도 희소식이다. 왜냐하면 분별심은 내 마음안의 일이기 때문에 그냥 내려만 놓으면 문제가 거기서 바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있다면 그 사람들이 내 마음에 맞게 일일이 다 바꾸어 주어야 고뇌의 문제가 풀리겠지만, 그것이 아니고 바로 내 분별심이기에 고뇌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해진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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