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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싫다는 분별심이 고뇌 원인

기자명 혜민 스님

15. 고뇌는 왜 생기는가

마음이 분별해 판단했을 때
탐심이나 진심 일어 괴로워
분별심은 내 마음 안 일이니 
내려놓으면 문제 바로 해결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특히 사는 곳이 도심이거나 직장이 시내에 위치한 경우 아마도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매일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길거리에서 본 사람들 가운데 저녁에 집에 들어와 가만히 하루를 회상해 보면 내 마음 안에 기억나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적은 몇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러한지를 살펴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특별히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지나치는 그 많은 상점이나 여러 가지 물건의 경우도 그 날 저녁에 회상을 해 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즉 내 마음이 분별을 하지 않게 되면 어떤 사람이나 풍경, 물건이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마치 허공처럼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된다. 그래서 분별되지 않은 대상은,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내 마음 안에서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직 마음이 분별을 해서 좋다, 나쁘다고 판단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 대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탐심이나, 나에게서 밀어 내치고 싶은 진심의 마음이 일어나 괴로워진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며칠 전에 조계사 근처를 걸어가는데 어떤 외국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피면서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는 그 즉시 바로 분별심이 일어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저렇게 걸어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면 뒷사람들이 그 연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그걸 모르다니 하면서 말이다. 더불어 걸어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위법인데 그걸 모르나 보다 하는 망상도 들었다. 

그 사람 담배 연기가 결국 내 얼굴에 닿자 나도 모르게 그 사람보다 더 빨리 걸어서 그 사람을 앞질러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걸음의 속도를 빨리 내어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분별을 하고 나니 그날 나를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불편하게 했던 담배 핀 그 사람의 모습은 마음속 자국이 되어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한번 내 마음이 담배 연기에 대해 특별히 좋다는 마음이나 싫다는 분별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아무리 내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분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텅 빈 허공처럼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고 기억의 자국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내가 괴로운 것은 단순히 상대 잘못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상대가 잘못을 했다고 분별한 내 마음도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삶의 번뇌는 분별을 해야 일어나지 분별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무엇도 번뇌가 되지 않는다.

‘법화경’의 ‘화성유품’에서 보면 대통지승 부처님께서는 범천왕들과 십육 왕자들의 청을 받아 법륜을 굴리면서 사성제와 12연기법을 설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12연기법은 왜 우리 중생들에게 생로병사 우비고뇌가 생기고, 어떻게 하면 그 고뇌들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도 놀라운 사실은 그 고뇌가 생성되는 원인이 바로 좋다 싫다는 분별심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대상을 우리 감각 기관을 통해 접촉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이 올라오고, 그 느낌을 따라서 좋다는 마음, 싫다는 분별이 생기면서 취하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러면 드디어 그 대상이 세상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 존재감이 부여가 되면서 우리에게 우비고뇌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고뇌가 사라질까? 그것은 바로 분별하는 마음을 쉬었을 때 그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는 부처님의 통찰이시다. 좋고 싫다는 분별을 취했기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지 원래부터 괴로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설하셨다. 이는 희소식 중에도 희소식이다. 왜냐하면 분별심은 내 마음안의 일이기 때문에 그냥 내려만 놓으면 문제가 거기서 바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있다면 그 사람들이 내 마음에 맞게 일일이 다 바꾸어 주어야 고뇌의 문제가 풀리겠지만, 그것이 아니고 바로 내 분별심이기에 고뇌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해진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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