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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불교사상과 AI윤리-하

  • 연재
  • 입력 2023.07.31 14:30
  • 수정 2023.07.31 15:07
  • 호수 1691
  • 댓글 0

인간과 AI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꿔야

알아차림은 덕에 바탕 두고 있어 풍부한 윤리적 품성 함양 가능
교육이 관계적 능숙함 추구할 때 붓다 설법은 하나의 모범사례
AI 알고리즘에 자비 빠져있다면 우리 삶은 아수라장되고 말 것

알고리즘이 지배할 미래 세상에서 AI 알고리즘에 자비로운 휴머니즘이 빠진다면 우리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법보신문]
알고리즘이 지배할 미래 세상에서 AI 알고리즘에 자비로운 휴머니즘이 빠진다면 우리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법보신문]

이 대담은 인공지능의 윤리적 도전에 대한 불교의 대응 관점을 다루고 있다. 피터 허쇽에 의하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 사회와 인간의 경험에 유례가 없는 충격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불교가 탐진치의 욕망과 불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 욕망의 총화인 인공지능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유용한 접근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두 사람의 대담을 이어가기 전에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있다. 앞에서 ‘virtuosity’를 ‘가상현실’로 번역한 적이 있으나 이는 1995년의 영화 ‘가상현실(virtuosity)’을 염두에 두고 예단한 나머지 대화의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실수임을 인정하고 사과드린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이 단어는 붓다의 대기설법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단어의 본래 뜻에 맞게 ‘전문성을 갖춘 능숙함’ 내지는 ‘최고 수준의 기량’을 함축한 윤리적 ‘품성’으로 이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의 대화를 계속 들어보기로 하자.

테오도르 리차드: 당신은 우리가 ‘자비롭게 되는 것(humane becoming)’을 열린 불교의 목적이라고 말하면서 윤리를 우리의 ‘능숙한 기교(virtuosity)’를 확대하는 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곧바로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그와 같은 추구와 시도를 통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앞서 1973년의 기념비적인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슈마허(E. F. Schumacher)는 교육이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세상의 ‘어떻게(how)’를 조망하도록 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슈마허는 가치 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학습 과정 자체의 윤리적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mindfulness)’과 그것의 수행에 대한 중요한 불교적 인식은 알아차림을 실천하는 것은 단순히 ‘알음알이(awareness)’을 계발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수행은 본성상 덕에 깊숙한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알음알이 계발을 통해 우리는 풍부한 윤리적 품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를 대학 강의실에서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만, 개강 초에 저는 학생들에게 명상을 해보라고 권유합니다. 저는 쟁점들의 윤리적 측면을 둘러싼 토론이 명상과 함께 한층 더 심오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생들도 자신들의 자기개발 상황과 삶의 방향성을 더욱 잘 인식하게 되는 한편, 거기서 새롭게 발견한 통찰력을 자신 주변의 세계를 관찰하고 나아가 자신을 세상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당신은 예컨대, 교육에서 사람들이 관계적 능숙함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피터 허쇽: 슈마허에 대한 당연한 존경심은 변함없지만,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주제넘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요점이 우리는 현재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 복잡한 변화의 조건 아래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결정하려는 개인과 집단의 윤리적 노력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요청되는 인지적, 감정적, 신체적 자원을 제공하는데, 교육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저는 이에 기꺼이 동의합니다. 

우리가 교육이 관계적 능숙함을 추구할 때 무엇을 포함할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보다 붓다의 설법 경력을 하나의 모범사례로 참고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접근법은 질서정연하거나 조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다른 요구와 자질 및 열망에 비추어 개별 청중에게 즉문즉설 방식의 반응을 보이면서 상대방과 협업하는 것에 뿌리를 둔 방식이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능숙한 졸업생’을 공급하는 보편적인 커리큘럼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우리는 교육을 ‘다양성과 형평성(diversity and equity)’을 존중하는 목적 혹은 목표와 일치하도록 보편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서로의 차이점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공유하려는 하나의 관계적 특성입니다. 그리고 평등성의 추구란 동사섭(同事攝)의 성질을 고양하기 위해 진보적인 노력을 쉬지 않고 지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비로운 능숙함에 이르는 길은 결코 특정한 목적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우겠다는 열정으로 시작해서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바라밀, 즉 보시바라밀을 관계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통해 확장될 수 있습니다.

저는 데이터 거버넌스(data governance)와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오다가 이번에 ‘불교와 지적 기술’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어봤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라는 문제는 그것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바로 즉석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혜롭게 임기응변적으로 다룰 최선의 기회는 ‘주의 깊은 집중’과 ‘상황에 반응하는 능숙함’을 구사하는 지혜와 자비의 폭과 깊이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인간존재와 다른 존재들 간의 상호·의존·관계를 우리 자신의 삶을 재정립하는 사고전환의 출발점으로 삼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경쟁적 현실주의라는, 한계가 분명한 승자독식 게임은 이제 인류가 누릴 수 없는 개인주의적 호사로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때입니다.

바야흐로 세상은 관계적 상호 의존성에 바탕을 둔 윤리적 능숙함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신(神)이 아닌 알고리즘이 지배할 미래의 세상에서 그 AI 알고리즘에 ‘자비로운’ 휴머니즘이 빠져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 사상이 더없이 소중한 가치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우리는 인간과 AI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자유가 있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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