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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단의 시대에 던지는 유마 거사의 지혜

  • 불서
  • 입력 2023.07.31 15:23
  • 수정 2023.07.31 15:25
  • 호수 1691
  • 댓글 0

지금, 여기에서 깨닫는 유마경 강의
성태용 지음/북튜브
200쪽/1만5000원

재가자가 설주인 독특한 경전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중생·부처 둘 아닌 불이사상
토론·포용 사라진 시대의 죽비

 

‘유마경’은 대승경전 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히는 경전이다. 본래 제목은 ‘불설유마힐소설경’으로 재가거사가 설주(說主)인 독특한 형식의 경전이다. 설주는 상업이 융성하게 일어나고 있던 인도 바이샬리에 사는 유마 거사이다. 경전은 장자이기도 한 유마 거사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문병을 당부하면서 시작된다. 부처님의 당부에도 수행력과 법력이 재가불자인 유마 거사에 미치지 못한다며 제자들이 문병을 사양하자, 마침내 문수보살이 유마 거사를 만나면서 나눈 대화가 핵심이다.

‘유마경’은 “중생이 병들어 아프기에 보살도 병들어 아프다”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다. 굳이 경전을 읽지 않아도 이 대목만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마 거사는 ‘문질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생들이 병에 걸렸으므로 나도 병들어 있다. 만약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이다.”

당시 출가중심주의와 개인의 해탈을 중요시하는 이기적인 수행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면서 또한 보살의 길을 닦아 중생과 더불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대승불교의 첫 출발을 알리는 사자후였다.
 

중국 돈황 막고굴 제103굴 동벽에 그려져 있는 유마경변의 주인공 유마 거사. 
중국 돈황 막고굴 제103굴 동벽에 그려져 있는 유마경변의 주인공 유마 거사. 

이런 ‘유마경’의 가르침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바로 불국토라는 가르침이다. 정토라는 것이 다른 먼 곳에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마음이 맑고 밝다면 그 자리가 바로 정토라는 가르침이다. 둘째는 자비정신의 실천이다. 모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보살도의 실천이 대승불교 수행정신의 핵심임을 역설했다. 셋째는 출가와 재가, 너와 내가 없는 평등한 불이사상(不二思想)의 실천이다. 출가와 재가가 둘이 아니듯이 보리와 번뇌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정토와 예토가 또한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을 체득해야 절대평등의 경지에 들어 완전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 넷째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사상이다. 유마 거사는 “일체의 번뇌가 곧 여래의 종성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말은 곧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며 또한 중생이 있어야 부처가 있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마경’은 비단 대승불교 몫만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꼭 필요한 경전이다.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나는 옳고 혹은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틀렸다’는 증오 섞인 진영 논리 속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토론과 포용의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지금, 여기에서 깨닫는 유마경 강의’로 명명했다. 타협 없는 극단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마중물로 저자는 ‘유마경’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유마경’의 핵심 가르침인 불이법문(不二法門), 즉 둘이 아닌 진리의 문을 오늘의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재가자와 수행자를 나누고, 더러운 속세와 청정한 불국토를 나누는 것은 현재의 진영논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났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격언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마 거사의 시각에서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며 분별이다. 생각을 돌려 ‘연꽃은 진흙 속에서만 피어난다’고 봐야한다. 이것이 불이사상이며 또한 바른 견해다. 진흙(속세의 삶)이 없다면 연꽃(깨달음)도 피어날 수 없다는 역설을 통해 화합과 포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책은 ‘유마경’의 각 품의 주요내용을 요약정리하고 다시 이를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어차피 읽지 않을 한문 원문은 생략했으며, 뜻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쉬운 우리말로 풀어 내 술술 읽히고 이해도 빠르다. 특히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문과대 학장과 한국 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저자의 경력에서 짐작했듯이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수월하면서도 결코 철학적 깊이와 품위를 잃지 않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연륜과 내공이 함께 쌓인 힘일 것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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