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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 말고 공업 실상 직시해야

기자명 성태용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세계적 축제인 세계 잼버리의 안타까운 뒤끝을 보았다. 너무도 부끄럽고 실망스러워서, 내가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곳에 모인 세계의 청소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들 국가에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사과의 말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또 참혹하게 만드는 뒤끝을 보게 된다. ‘전 정권 탓’이라는, 유난히도 이 정권 들어서 자주 듣게 되는 ‘네 탓’ 타령이 더욱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또 부끄럽게 만든다. 

왜 이리도 진솔한 사과의 말을 듣기가 힘든 것일까? “제 책임입니다”라는 말은 완전히 실종된 것일까?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책임 문제를 거론하기보다 지금은 행사를 잘 끝내야 한다”고 했다는 말속에 지금 정권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정말 책임을 통감합니다. 빠르게 수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 말하면 바로 책임추궁이 닥칠까봐 미리 달아나는 말을 하는 것인가? 슬쩍 ‘전 정권’ 탓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책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이번 정권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독 이번 정권의 이런 행태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이는 이유가 있다. 최고지도자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이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고 뻔뻔스러운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 이야기지만 필자가 지금도 아쉬워하는 일이 있다. 대통령의 막말 파문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졌을 때, 진솔한 사과의 말을 들었다는 기억이 없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일단 “물의가 일어나 많은 문제가 뒤따르게 된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죄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하는 사과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된 사실로 국익을 훼손하는 것에 대하여는 엄한 책임을 묻겠습니다”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공적인 지위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처신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일반 상식이 무너진 것이 너무도 아쉬웠고, 또 그게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풍토가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그 걱정의 연장선에서 이번 세계 잼버리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이대로 가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도 서로 탓하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다. 

남 탓으로 돌리고 내 책임이 아니라는 의식이 이런 사태를 일으켰다는 반성은 없는 것일까? 일어난 사태 뒤에 하는 남 탓이 이런 사태의 뿌리에 놓여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남 탓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더 큰 사고가 이어지는 증폭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다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의 큰 파도가 닥쳐도 남 탓을 할 수가 있을까?

맹자는 “누가 혼자 잘할 수 있을까? 모두 함께 빠져 죽을 판인데(其何能淑 載胥及溺)”라는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큰 재앙이 닥치면 너나없이 거기에 휩쓸린다고 경계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네 탓 풍조야말로 정말 큰 재앙의 빌미요,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정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남의 자그만 흠만 보이면 들추기 바쁜 세태, 특히 정치권의 행태가 이런 풍조를 만연시켰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더욱더 양극화를 부추기면서 악업이 증폭되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이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양극화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일이다. 그 양극화에서 출발하고 그 양극화를 더더욱 증폭시키는 주범이 바로 ‘남 탓하기’이다. 책임 의식의 실종은 그에 뒤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거시적으로 드러나는 정치권으로부터 우리 일상의 대인관계에까지 이 악성 풍조가 만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병으로 말한다면 이미 ‘중증(重症)’에 이르렀다. ‘네 탓’ ‘내 탓’하는 너와 나의 가름을 넘어서서, 우리가 함께 지은 업[共業]의 실상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함께 재앙에 휩쓸리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성태용 교수 tysung@hanmail.net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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