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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천국의 나무

욕망으로 욕망 떠나는 것이 천국의 쾌락 방식

인간과 유사한 몸으로 최대의 욕락 누리는 곳이 도리천
거대한 나무 열매에서 온갖 물건 나오는 방식으로 구현
쾌락이 경시·위협받지 않을 때 지상천국과 닮아있을 것

미국 디즈니월드의 생명의 나무. 높이 44m로 표면에 325종의 동물이 새겨져 있고 8000개의 가지에는 10만개의 잎을 만들어 달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미국 디즈니월드의 생명의 나무. 높이 44m로 표면에 325종의 동물이 새겨져 있고 8000개의 가지에는 10만개의 잎을 만들어 달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우리가 한 번쯤 여행을 다녀왔을 이웃 나라의 최대 도시는 옛 이름 대신에 이제는 한 혁명가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20세기 초중반의 혹독한 시절을 겪으면서 ‘지상의 천국’을 꿈꾸었던 사람 중 한 명으로, 예전에 나는 두꺼운 그의 평전을 다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가 잊히질 않는다. 타계 직전 그와 인터뷰했던 한 저널리스트가 이렇게 전했다. “그는 젊은 시절 혁명적 열정이 지나쳤을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소련에 살던 시절 실크 드레스에 하이힐 차림이라는 이유로 어떤 젊은 여자를 꾸짖은 일이 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 여자는 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해 입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대꾸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잘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 된 건가요.’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그녀의 말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윌리엄 J. 듀이커 ‘호치민 평전’ 제4장)

내가 짐작하길, 지상천국을 꿈꾸었던 그가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했던 어떤 화두가 있었을 것 같다. 궂은 시절에는 그것을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보다 좋은 시절을 사는 내가 대신 말해보겠다. 나는 저 실크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자가 자신의 천국에 대해 당찬 의견을 밝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무릇 천국은 가장 즐겁고 행복한 곳이다. 그곳에는 몸도 있고, 그 몸을 즐겁게 해주는 천상의 진미와 옷과 놀이 등이 있다. 그것들이 천상의 것으로 되는 이유는 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젊은 여자에게는 쾌락과 아름다움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곳이 바로 천국이다. 또 어디선가 전쟁의 참상이 벌어지는 와중에 머리색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이유로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라고 하며 난동을 폈던 하울(‘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인공)의 천국도 그러한 것이리라. 내가 알기로, 지상의 천국에 관한 한, 그 젊은 여자의 견해가 불교의 천국관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이러한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불교 문헌에서 천(天)이란 태어난 장소 혹은 그곳에 태어난 중생을 모두 뜻한다. 불교도들이 잘 알다시피, 생사윤회하는 장소 중에 가장 즐겁고 행복한 곳은 천이다. 정확하게는 욕계에 있는 여섯 천[六欲天]이다. 위쪽으로 갈수록 수명은 더 길어지고 몸과 땅도 더 오묘하고 광대해진다. 이 중에 ‘지상에 있는 천국[地居天]’은 욕계의 첫 번째 사천왕천과 두 번째 도리천이다. 이 두 종류 천은 땅의 끝자리, 말하자면 지상에서 가장 높은 수미산 위쪽에 있다. 지상천국을 꿈꾸는 이라면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을 주목해보자. 이곳이 바로 인간과 유사한 몸을 가지고 최대의 욕락을 누리는 최고의 지상천국이기 때문이다.

도리천의 하루 밤낮은 우리의 백 년이고, 그들은 그곳의 천 년을 살면서 오묘한 욕락을 누린다. 이 천은 욕계천의 기본 섭리를 따르기에 욕계천이 누리는 욕락을 함께 누린다. 그런데 그곳을 인간 세계와 비교하면, 욕망의 형태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가령 인간 세계에 맛있는 음식점, 자동차 매장, 명품 옷과 장신구 가게, 유흥업소 등이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다만 천국에서는 모든 욕망의 충족 체계가 미학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의 나무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들이 있고, 무르익은 열매의 껍질이 저절로 열리면서 천상의 물건이 나온다.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그가 원한 것이 그의 수중에 도래한다. 천상의 책에 따르면, 그 나무는 일곱 종류다. ‘청황적백의 색을 띤 네 종류 음식이 나오는 나무, 감미로운 음료가 흘러나오는 나무, 다양한 용도의 수레가 나오는 나무, 부드럽고 미묘한 빛깔과 무늬의 비단옷이 나오는 나무, 마니 보배로 된 각종 장신구가 나오는 나무, 머리에 쓰는 향기로운 화관 등이 나오는 나무, 천국에 시원한 그늘과 꽃향기를 선사하는 가장 수승하고 거대한 나무, 노래와 춤과 음악을 위한 악기가 나오는 나무, 온갖 살림 도구가 나오는 나무.’(‘유가사지론’ 제4권)

이쯤에서 저 실크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자의 견해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원측 스님이 여러 문헌을 검토해본 후, 천의 본질은 ‘광명’이라 정의하였다.(‘해심밀경소’의 ‘서품’) 미륵의 후예들에게 그 광명은 진리의 빛이겠지만, 그 젊은 여자에게는 아름다움 그 자체일 것이다. 가령 천상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원만하고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구사론’ 제11장) 천상의 옷은 비할 바 없이 가볍고 부드럽고 미묘하다. 그 몸이 자연적 광명으로 빛나는데, 옷으로 무엇을 가리겠는가. 그것은 천상의 아름다움, 즉 순수한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또 머리색이 이상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우울해진 하울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천상의 가장 큰 고통은 뭐니해도 추해지는 것이다. 천의 목숨이 다할 무렵, 아름답던 옷이 더러워지고, 머리에 쓴 화관도 시들해지며, 청결하던 몸에서 냄새가 나고, 겨드랑이에선 땀도 난다. 또 더 이상 그의 자리를 즐기지 않는다. 도리천에 있는 자라면, 한창일 때 제석천의 궁전 정원에서 미녀들과 더불어 은밀한 쾌락과 놀이를 즐겼지만, 말년에 박복해진 그는 정원 밖 숲속에 엎드려 더 광대한 복락과 오욕을 지닌 다른 천자의 유희를 보면서 매우 큰 상처를 받는다.(‘유가사지론’ 제4권)

마지막으로 천국의 신화에 감춰진 비밀 법문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것은 우리가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리는 가장 본능적 쾌락에 관한 것이다. 뜨거운 번뇌[熱惱]가 따르는 음욕은 고락이 뒤섞여 있고, 욕계천에도 그것이 있다. 위의 네 천은 입 맞추거나, 포옹하거나, 손을 잡거나,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곧장 뜨거운 번뇌가 그친다. 사천왕천과 도리천은 인간과 흡사하게 육체의 교합으로 곧장 뜨거운 번뇌가 식지만, 정혈 대신에 바람 기운[風氣]을 방출한다. 그래서 이 천들은 본래 그렇게 잠깐이면 번뇌에서 해탈한다고 한다. 만약 은밀한 쾌락과 놀이 속으로 숨어들어 오래 머물게 되면, 그는 유희에 빠져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하는 천[遊戲忘念天]이 되어 결국 하계로 떨어지는 구덩이를 보게 된다.(‘유가사지론’ 제5권)

그러니까 빠르게 ‘욕망으로 욕망을 떠나는 것[以欲離欲]’, 이것이 바로 오묘한 쾌락을 누리는 천국의 방식이자 또한 천국의 비밀 법문이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 쾌락이 완강하게 경시되지도 않고 위협받지도 않게 될 때, 인간 세계는 저 욕계의 지상천국과 더욱 닮아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이 지구상에서 억압되거나 왜곡된 성적 욕망으로 인한 문제들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고,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아무도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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