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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 행복하길 아미타부처님께 간절히 발원한 공덕입니다”

  • 무진등
  • 입력 2023.08.14 15:20
  • 수정 2023.08.14 17:44
  • 호수 1692
  • 댓글 2

이명규 주식회사 포스테크 대표

염불만일회 꾸준히 참여하며 매일 염불·자비 가르침 실천 
제강·제철 비롯 산업자동화·자동차용 프레스 국산화 일조
“염불 공덕, 모든 인연에 회향” 저소득가정 치료비 지원도

이명규 대표는 어느덧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염불의 공덕이 자신보다는 인연 닿은 주변 사람들에게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 기부한 치료비로 환자 몇 명이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었다는 감사편지가 날아오면 하루 종일 뿌듯하다.
이명규 대표는 어느덧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염불의 공덕이 자신보다는 인연 닿은 주변 사람들에게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 기부한 치료비로 환자 몇 명이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었다는 감사편지가 날아오면 하루 종일 뿌듯하다.

어슴푸레한 하늘 아래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새벽 5시. 이명규(73) 주식회사 포스테크(POS-TECH) 대표는 ‘금강경’을 일독한 뒤 30분가량 목탁을 치며 “나무아미타불”을 염한다. 

“매일 출근하기 전에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발원합니다. 또 제가 운영하는 회사 직원들이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길 바라지요.” 

이 대표는 1만일 염송 서원을 세운 염불행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염불하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중생이 극락에 나길 발원하고 있다. “염불은 죽기 전까지 해야 할 공부”라는 이 대표는 “제가 일궈낸 회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염불의 공덕과 부처님 가피가 함께한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한국 제강·제철분야 부품산업이 국산화를 이룰 수 있던 데엔 이 대표의 영향이 컸다. 2000년대 초까지 한국 제철소에서 가동되는 기계 대부분은 ‘메이드인 재팬’이었다. 특히 철이 각종 산업에 활용되기 위해선 밀가루 반죽을 펴듯 얇게 누르는 압연 과정이 필요한데, 강도에 따라 생산된 철의 질이 달라지기에 압연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제철소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압연기는 쉴 틈 없이 돌아가기에 고장이 잦았고, 온도와 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센서는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어 많은 제철소가 골머리를 앓았다.

이 대표는 당시 일본 부품회사와 계약을 맺고 관련 부품들을 한국에 들여오는 중계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IMF외환위기가 닥치고 부품 단가는 점점 올라갔다. 이 대표는 힘들어하는 업계 관계자들을 보며 언젠간 우리나라 기술로 직접 부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경제난 등 각종 이유로 일본 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체득한 기술로 센서 개발을 시작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2004년 위치검출 센서 및 컨트롤러 개발에 성공했다. 2005년 포스테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제철, 자동차 및 프레스 업계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제강, 연주, 열연, 냉연, 후판 등의 제철업계와 자동차용 프레스 업계, 산업용 자동화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센서 개발에도 성공하는 등 점차 규모를 키워갔다.

현재 주)포스테크는 포스코, 현대제철, 심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 및 프레스 제조업체뿐 아니라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등과 계약을 맺은 국내 유일 부품회사로 성장했다. 또 일본 JFE 철강 그룹, 동경제철, 신일본제철 등에 역수출과 더불어 대만 CSC철강그룹, 중국 무한강철·복흔철강, 인도네시아 ANTAM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결과가 직원들의 열정과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직원들에게 자비심과 자리이타 정신을 갖추길 강조합니다. 이웃을 이롭게 하면 내게도 도움이 되듯, 고객을 도움으로써 느낀 보람과 만족을 다시 고객에게 회향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아주 작은 부품을 이어붙이는 정밀한 작업이다 보니 작은 실수가 큰 피해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불량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에요.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는 직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신심 깊은 불자로서 열심히 신행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생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온 그에게 한때 종교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 대다수 국민이 그랬듯 그의 어린 시절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다닐 형편도 아니었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았다. 

“도둑질 빼고는 다 했어요. 하하. 그땐 다 그랬죠. 신문배달부터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나이제한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그 덕에 일찍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이내 제 천직임을 알았습니다.”

낮에는 드라이버를, 밤에는 책을 잡았다.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전파상에 취업했다. 그의 성실함을 알아본 한 손님이 공장에 추천하며 산업기술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 보는 커다란 기계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노동자들의 분주한 손은 금세 그를 매료시켰다. 처음엔 단순 업무였다. 기계를 직접 만지기보다 노동자들을 도와 생산에 매진하는 날이 많았다. 틈틈이 선배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용방법을 익혔다. 

이 대표의 20대가 담긴 일본어 전공서적. 1960년대 출판됐다.
이 대표의 20대가 담긴 일본어 전공서적. 1960년대 출판됐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계공학을 설명한 서적이 모두 일본어였다는 것이다. 처음 본 꼬부랑글씨에 이 진로가 맞는지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선배들에게 설명을 듣는 것보다 이론부터 제대로 알고 기계를 만지고 싶었다. 퇴근 후 서점을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고, 결국 유창하게 읽고 말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당시 선배들은 전문적으로 배우기보다 몸으로 익힌 경우가 많았어요.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에게 이론부터 상세히 가르쳐 주려고 했어요.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려면 이론을 비켜갈 수 없으니까요.”

무엇이든 전문가가 되고자 한 그의 성격은 1만일 동안 염불을 하게끔 한 원동력이 됐다. 불자인 아내를 따라 사찰을 다니기 시작하며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아내는 일 중독에 빠진 그가 마음에 여유를 찾길 원했다. 이 대표 역시 사찰 특유의 깨끗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좋았다. 가끔 산책코스 중 하나였던 사찰 순례는 서울 경국사에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만난 뒤로 정례행사가 됐다. 

경국사 신도회장 시절 조계총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촬영한 사진.
경국사 신도회장 시절 조계총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촬영한 사진.

“경국사 신도회장까지 했지만, 불교를 제대로 알진 못했어요. 그저 절과 스님, 도반들의 친절한 마음씨가 좋았으니까요. 부처님 가르침이 뭔지, 이 세상에 왜 나투신 건지 궁금했지만 마땅히 공부할 곳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반의 소개로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에 입학했어요.”

2012년 지관 스님이 입적한 이후 불교에 대한 갈증이 더욱 깊어진 그는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염불만일회’를 알게 됐다. 동산반야회·동산불교대학이 주최하는 염불만일회는 1998년 8월5일 강원도 건봉사에서 시작해 1만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는 염불대장정이다. 매년 덕숭산 수덕사, 토함산 불국사, 오대산 월정사 등 전국의 염불성지를 찾아 철야정진을 진행한다. 그는 2012년 치악산 구룡사 정진을 시작으로 한 번도 빠짐없이 정진에 참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어느덧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염불의 공덕이 자신보다는 인연 닿은 주변 사람들에게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구를 위해 매달 많은 돈을 기부한다. 병원에서 환자 몇 명이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었다는 감사편지가 날아오면 하루 종일 뿌듯하다. 

“좋은 인연을 만나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는 이 대표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앞으로도 보시와 장학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개원한 아미타불교요양병원에 대해 “종교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무관심 속에 입적하는 노스님들이 많았다”며 “스님들이 안정적으로 노후를 영위할 수 있도록 돕자”고 불자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향후 기술을 공부하는 청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청년들은 젊은 패기에 자신감이 넘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하심’입니다. 기초가 단단하면 어떤 일이 닥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조고각하의 자세로 자신을 내려놓고 착실하게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학업연계 장학사업을 펼칠 계획입니다.”

험한 가시밭길을 개척해온 이 대표. 시방세계와 중생들을 빠짐없이 다 비추는 아미타부처님의 무변광(無邊光)처럼 모든 인연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정토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작업대를 떠나지 않는 그의 거친 손이 수려하다. 오래된 습관처럼 그의 입에서 작은 흥얼거림이 흘러나온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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