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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과도한 성지화와 세계청년대회

기자명 이병두

중국 전체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건륭(乾隆) 황제 재위 기간(1735~1796)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역대의 주요 서적을 수집, 유교경전[經]‧역사[史]‧제자백가[子]‧기타 서적[集]으로 분류하여 발간한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 사업은 중국 역사 최대의 문화 사업이었다.

건륭 황제가 60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현재 저지앙(浙江)성 성도인 항저우(杭州)를 네 차례나 찾았다. 지난 2012년 항저우에 갔을 때 건륭제가 마셨다는 샘물에 그가 직접 ‘용정(龍井)’이라고 쓴 글씨를 돌에 새겨 세운 것을 보고, “권력자가 마신 샘물도 기념물이 되고 숱한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는구나! …” 하면서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건륭뿐이겠는가. 세계 곳곳에 권력자들이 이런 식으로 흔적을 남긴 곳이 숱하게 많다. 황제나 왕 등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시절뿐 아니라, 우리나라 독재정권 시절에는 비슷한 일이 많았다. 이승만의 거대 동상이 여러 곳에 세워졌었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쓴 글씨를 새긴 표지석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최고 권력자가 원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그런데 특정 종교에서는 세상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어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을 불편하게 한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절[천진암]이 있던 자리를 자신들의 성지로 선포하고 골짜기를 메워 성지조성을 하면서 집채만큼 큰 돌에 로마 교왕이 방문하여 그곳을 성지로 인정했다는 내용을 새겨 세워놓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경복궁 정문을 마주보는 자리에는 지난 2014년 교왕이 시복식을 주관했다는 내용을 새긴 커다란 동판(銅版)을 바닥에 박아놓았을 뿐 아니라 광장 여러 곳에 성인의 키 정도로 높은 간판을 세워 ‘이곳은 교왕이 찾아와 시복식을 행한 천주교 성지로 우리가 독점권을 가진 곳’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데, 일반 대중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어간다.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은 전남 순천 낙안읍성, 전북 고창 모양성 등과 함께 잘 보전된 ‘3대 읍성’ 중 하나이다. 읍성이란 평화시에는 행정 업무가 이루어지고, 왜구의 침입 등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주민들을 안으로 대피시키고 외적을 막는 방어 시설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런데 1866년, 병인년에 충청 지역의 많은 천주교인들이 잡혀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해서, 자신들의 순교 성지라고 주장하다가 지난 2014년 교왕 방한에 맞추어 ‘아시아청년대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뒤, 교왕 방문과 아시아청년대회를 개최했던 곳이라는 이유로 ‘해미국제성지(海美國際聖地, Haemi Sanctuarium Internationale)’라고 선포하였다. 충청남도와 서산시는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이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일반 국민들이 ‘이곳은 천주교 성지’라고 인식하게 하는 몰(沒)역사적 종교 편향 행태를 펼쳤다.

그런데 지난 8월6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가톨릭세계청년대회에서 4년 뒤인 2027년 8월 서울에서 다음 대회를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대회 유치 과정에 정부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웃 종교계가 하는 일에 ‘콩 놔라, 대추 놔라’고 잔소리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시아청년대회를 개최한 곳이라고 해서 국제성지로 만드는 곳이 한국 천주교이다. “수십만 명이 넘는 세계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대회를 개최한다”면서 ‘국민의 혈세인 예산 지원은 얼마나 많이 요구할지, 행사를 마친 뒤 혹 서울시와 인근 경기도‧인천 지역을 ‘천주교 성지’로 선포하고 곳곳에 거대 표지판을 세우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기우(杞憂)라고 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제까지 한국 천주교가 보여준 행태가 그러했고 서울시장 등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은 어느 누구도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지 못하고 쩔쩔매며 “적극 추진하겠다”고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가톨릭세계청년대회 진행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병두 beneditto@hanmail.net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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