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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은 결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명 혜민 스님

16. 성불에 대한 망상 

이미 완벽하게 불성 갖추고도
밖에서 찾는 노력은 망상일 뿐
노력 끝 절망해 내려놓았을 때
성불된 하나의 성품 깨닫게 돼

얼마 전 친한 도반스님에게 수행을 더 열심히 하려고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스님은 누가 봐도 인생을 참 진지하고 열심히 사시는 분인데, 아무리 선방에서 열심히 노력을 해 봐도 당신의 기대만큼 수행의 진보가 없다고 했다. 외국 어느 센터로 가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지를 물어 보시는데 사실 좀 난감했다. 왜냐면 나도 깨달음을 구하려고 무수한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지금 눈 앞 이 자리로 돌아왔기에, 스님도 나처럼 시간 낭비하실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토록 찾던 본래 고향을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는데, 왜 이 사실을 문득 깨달아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을 통해 밖에서 구하려고 하는지 정말 안타까웠다.

나 같은 경우도 처음 불법을 배웠을 때 성불이나 해탈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믿었다. 그때까지 살아왔던 모든 경험들이, 나의 노력이 원인이 돼 그 결과로 얻어졌던 것들이라, 당연히 내 노력이 없으면 깨달음이라는 경험도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깨달음 경험이 이럴 것이라는 환상과도 같은 모습, 즉 법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분명 아주 특별한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면 그냥 일반적인 경험이라면 굳이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성취하라고 설하셨을까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범상치 않은 대단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것을 다들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깨달음의 경험을 수년간 찾았다. 인도, 우리나라, 미국과 영국서 깨달음의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스승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찾아가 신기한 경험들을 했다. 내면에서 빛을 보고, 소리를 듣기도 하고, 쿤달리니가 열리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보현보살님을 친견하는 경험이나 화두가 타파되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경안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 같이 이러한 경험들은 무상하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경험이라고 해도, 없다가 생겨난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허망하게 사라져 의지할 만하지 않았다. 

더불어 경전과 선어록을 공부해 보면 불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본래 성품이라 이미 완벽하게 구족돼 있어 새롭게 얻을 바가 없다고 누누이 가르치고 있다. ‘반야심경’을 봐도 얻을 바가 없다고(以無所得故) 명쾌하게 이야기 하는데, 이해 못하고 새롭게 무언가를 얻어야 된다는 환상에 빠져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즉,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할 일이 본시 없었구나하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가 정확하게 아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내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새로운 무언가를 얻겠다는 일체의 노력이 멈춘 것을 말한다. 왜냐면 내가 찾던 궁극의 도착지에서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기에 내가 거기서 무언가를 노력하게 되면 오히려 도착지에서 멀어지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법화경’의 ‘신해품’에 부잣집 아들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 오랜 세월을 거지로 살다 자기 아버지 집으로 구걸온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는데 아들은 거기가 본래 자기 집인 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하인으로 들여 일을 시키다 시간이 지나 재산관리를 시켰다. 임종의 순간이 오자 아버지는 그제서야 친아들인 사실을 밝히고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에서 보듯,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은 아들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새롭게 성취된 것이 아니다. 본래 그 집 아들인데 자기가 바로 믿지 못하니 아버지가 방편을 두어 익숙해지도록 만든 것뿐이다. 

이미 내 노력과 상관없이 완벽하게 갖춰진 하나의 불성이 지금 세상 가득 차 있다. 이미 온전하게 갖추어져 손 댈 일이 털끝만큼도 없는데, 아직 부족하다고 자꾸 망상을 피우며 수행을 더 해야 한다고 하니, 부잣집에 살면서 자기 집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형국이다. 성불하기 위한 수행자의 노력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성불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노력을 하다 하다 크게 절망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나랑 상관없이 이미 완벽하게 깨어서 성불되어 있는 하나의 성품을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도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단순한 텅 빈 하나를 깨달으려고 밖으로 돌며 헛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내 어리석음에 웃음만 나온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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