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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은근의 미학과 피아니시모의 힘3 - 평면화, 최소 굴곡 속 매혹의 힘

불상 얼굴도 옷 주름도 가라앉아 평면화된 형상

3차원의 입체를 2차원 평면에 근접시키는 변형이 ‘평면화’
부조로 조성된 중국·한국 불상에서 폭넓게 발견되는 특징
환조에서도 불상 굴곡 최소화로 손발 등 돌에 스미게 해

1)사천성 무현(茂懸)에서 출토된 남제 영명 원년(483)명 무량수불입상. 2)방형대좌 금동미륵보살반가상.
1)사천성 무현(茂懸)에서 출토된 남제 영명 원년(483)명 무량수불입상. 2)방형대좌 금동미륵보살반가상.

상이한 표정들, 상이한 감응들을 무심한 표정 속에 은밀하게 접어넣고 그것들이 은묘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수평적인 방향에서 피아니시모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이라면, 깊이의 정도라는 수직적 방향에서 피아니시모의 힘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깊이감을 최대한 증폭시켜 강렬함이라는 포르티시모의 힘을 감각 속으로 밀어넣는 것과 반대로, 최소 차이를 갖는 미소한 깊이 속에 표정이나 감응을 ‘은미(隱微)’하게 접어넣고 그것들이 ‘은연(隱然)중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천성 무현(茂懸)에서 출토된 남제 영명 원년(483)명 불상은 하나의 돌 앞뒤에 2구의 불상을 새긴 것인데, 하나는 무량수불입상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불좌상이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완연한 불상인데, 인상적인 것은 두 불상의 신체가 대단히 평면적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두 불상의 불두는 저부조에 가까운데도 도드라져 올라온 것처럼 보인다. 무량수불입상의 옷주름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 정도로 살짝 솟아오른 채 평면화된 형상으로 겹쳐져 있고, 앞으로 튀어나왔어야 할 두 손과 발의 높이도 종이 두세 장 정도의 높이로만 옷주름이 둘러싼 신체와 구별된다. 불두조차 코나 이마가 가라앉아서 평면화된 얼굴이다. 무량수불입상에 비하면 그나마 도드라진 미륵불좌상의 불두와 두 손은 평면화된 신체와 대비되어 보이는데, 이것이 오히려 신체의 평면성에 좀더 눈이 가게 한다. 

3차원의 입체를 이처럼 2차원의 평면에 근접시키는 변형을 ‘평면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러한 평면화는 사실 부조로 조성된 중국이나 한국의 많은 불상들에서 널리 발견되는 특징이다. 공현석굴이나 용문석굴의 벽에 새겨진 수많은 불상들은 무릎이나 손이 솟아난 정도를 크게 축소하고 옷 주름 또한 평면을 겹쳐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베이징 거용관(居庸關) 운대(雲臺) 기단에 새겨진 사천왕상은 머리부터 평면에서 튀어나올 듯한 기세지만, 이는 그것과의 대조적인 평면화된 신체에 기인한다. 평면화된 조각의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평면화의 방법을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불상들, 특히 도처에 만들어진 마애불들이다.

부조뿐 아니라 환조 또한 평면화될 수 있다. 환조는 정의상 3차원의 입체지만, 가령 신체의 솟아오르고 패인 부분이나 옷주름의 입체성은 그 입체의 표면 자체를 다시 입체화한다. 흔히 ‘사실적’이라고 간주되는 많은 작품들은 신체 표면의 그 입체성을 확장한다. 반면 그렇게 솟아오르고 패인 요철을 줄이면 표면의 입체성은 크게 축소되어, 신체 자체의 표면에 가까워진다. 신체의 피부로 평면화되는 것이다. 옷주름의 요철을 강조함으로써 신체의 형상이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간다라 불상과, 옷주름을 최소화하여 신체의 표면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마투라 불상의 차이가 환조 자체를 다루는 상이한 방향을 잘 보여준다.

옷주름 뿐 아니라 코와 눈의 깊이, 볼과 이마의 높이 같은 얼굴의 요철, 볼이나 가슴, 엉덩이나 무릎 등의 불룩한 양감을 줄이면 신체의 표면은 평면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곡면이나 곡선의 곡률을 줄이면 입체 자체가 더욱 평면화된다. 가령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신라시대 만들어진 ‘방형대좌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직선에 근접하는 아주 작은 곡률의 완만한 곡선이 팽팽하고 ‘추상화된’ 선과 면, 형태가 주도하는 인상적인 불상인데, 눈과 코를 제외한 신체의 굴곡은 최소화되었고 옷의 주름은 ‘종이 한 장의 두께’로 겹쳐진 듯한 면들로 평면화되어 있다. 그렇게 평면화된 표면과 곧게 펴진 선으로 인해 목에 걸쳐 길게 드리워진 영락(瓔珞)이 상대적으로 전면화(前面化)된다.

목과 어깨, 가부좌한 무릎과 배 사이에 있는 깊이의 차이를 축소하고, 팔과 몸통를 구별해주는 공간적 간격마저 제거하여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로써 전체로서는 환조이지만, 뚜렷한 형태적 구별은 최소화되어 둥그스름한 모호한 덩어리로 ‘되돌아간’ 형상만 남게 된다. 3차원의 신체 전체를 최소 굴곡의 형상으로 평면화하는 것이다. 가령 영월의 창녕사 터에서 발견된 오백 나한상이 그러한데, 옷주름이나 얼굴은 물론 어깨와 무릎, 손발까지 그 굴곡은 대거 축소되며 돌덩어리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반대로 가슴과 배, 허리와 엉덩이는 물론 볼의 굴곡을 강조함으로써 부조를 최대한 환조화하는 경우도 있다. 힌두 신전의 조각이 그렇다. 이를 ‘평면화’와 대비하여 ‘입체화’라고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흔히 ‘사실성’이란 말로 흔히 지칭되듯이, 최대치의 ‘재현’을 지향하고 있다. 즉 입체화란 한편으로는 인물이나 동작을 최대한 대상과 유사하게 재현하려는 태도에 기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묘사되는 사건의 서사를 최대한 사실인 양 재현하려는 성향에 기인한다. 최대한 인물과 사건을 재현하려는 그리스나 힌두교의 조각들은, 그들의 신화가 유난히 서사성이 강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창조와 종말, 심판과 대속의 강한 대립 속에서 고난과 구원이 역사 전체의 카이로스적 분기점이 되는 기독교의 서사 또한 그러하다.

입체화는 조각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미학적 성향이다. 2차원의 평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3차원의 깊이감을 만들어내려는 투시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애초에 피렌체라는 도시에서 발명된 그 기법이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유럽 전체로 확산되고, 회화는 물론 조각, 건축, 문학 등 모든 예술로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입체화가 제공하는 재현 효과에 대한 감각적 선호가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평면화란 차원수(次元數)를 낮추어가는 것이고, 입체화란 그걸 높여가는 것이다. 2차원의 평면의 회화를 3차원의 입체로 밀고 가고, 1차원의 선은 곡절을 강화하거나 두께를 주어 2차원의 면에 근접시키는 것이 입체화라면,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에 가깝게 밀고 가고, 2차원의 형상을 1차원인 선의 움직임으로 밀고 가는 것이 평면화다. 프랙탈 기하학으로 인해 1.359차원, 2.738차원 등과 같은 소수 차원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곧은 직선은 1차원이지만 구부러진 선은, 많이 구부러질수록 차원수가 늘어 2차원에 점차 가까워진다. 두꺼워서 폭을 갖게 된 선도, 가시적 형상으로 보면 2차원을 향해 차원수가 증가된 선이다. 굴곡이나 요철이 많은 면, 두꺼운 면 또한 3차원을 향해 차원수가 증가한 면이다. 미분기하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곡률벡터의 변화가 적어지는 것이다. 강렬함이 대비나 대립을 이용한다는 말은 인접한 부분 간의 강도 차이를 최대화한다는 말이고, 이는 곡률벡터의 변화를 최대화함을 뜻한다. 최대 차이의 강도 변화는 감각을 강하게 잡아채고, 강렬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하며 장악한다. 그것이 포르티시모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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