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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문득 떠오르는 생각 - 의문인식

오문이 아닌 마음의 문서 일어나는 인식

뇌, 860억개 신경세포 11차원으로 연결…용량 ‘무한대’
뇌신경회로에는 지난 세월 수많은 경험들 체화돼 담겨
암묵적 자극 일어날 때 뇌신경회로 자극해 추억 ‘소환’

마음은 뇌신경망의 활성이다. 오(감)문이든 의문이든 인식과정을 통한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관련된 뇌신경망이 활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마음은 뇌신경망의 활성이다. 오(감)문이든 의문이든 인식과정을 통한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관련된 뇌신경망이 활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오(감)문 인식이라 한다.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피부(身根)를 감각이 들어오는 각각의 문(門)으로 보고 다섯 가지 (감각의) 문(五(感)門)을 통하여 일어나는 인식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오문(五門)을 통하여 일어나지 않는 인식도 있다. 문득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상념이 뇌리에 떠오르기도 하고, 불현듯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認識)들은 오감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인식을 의문(意門, mano-dvāra) 인식이라 한다. 오(감)문이 아니라 마음(意)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이라는 뜻이다.

의문의 인식대상은 어디에 있다가 의문으로 들어왔을까? 하나의 예로 어떤 기억이 문득 떠오르는 것을 생각해보자. 필자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머님이 무릎에 앉혀 주시는 밥을 받아먹던 것이다. 돌이나 지났을까. 고등어찌개에 들어있는 말랑말랑한 무 한 조각을 밥 위에 올려서 주셨다. 그 상황이 아직 머리에 그려지는 것은 많은 부분 아마도 나의 가상일 것이다. 그래도 그때의 맛있던 기억은 느닷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찌개의 무를 볼 때는 흔히 떠오른다. 그 기억의 실체는 어디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불현듯 나타날까? 

지난 연재에서 ‘기억은 나의 마음 현상의 결과물이며 그것은 뇌신경망에 저장된다. 세월을 살면서 내가 경험하고 학습한 기억정보들은 나의 뇌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은 나의 마음을 만드는 물질적 근거가 된다. 마음이 뇌신경망으로 물질화되어 저장되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화된 나의 마음,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다’고 하였다. 그렇다. 어머님 무릎에 앉아 받아먹던 모습과 무의 맛이 나의 뇌에 뇌신경망으로 체화되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이어지는 세월의 경험들은 뇌신경 회로로 체화되어 똬리를 틀고 있다가 의문으로 들어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뇌의 어느 부위에 마음이 체화[물질화]되어 있을까? 뇌의 기능에 따라 각 부위에 신경망으로 물질화되어 있다. 생각에 대한 기억은 생각이 일어나는 전전두엽에, 오감에 대한 기억은 각각의 감각피질 부위를 중심으로, 운동기억은 운동에 관련된 뇌 영역에 체화되어 있다. 물론 극히 단순화시켜서 그렇다는 것이다. 뇌는 860억 개의 신경세포가 11차원으로 서로 연결된 상상을 초월하는 매우 복잡한 신경망이다. 어떤 기능이라 할지라도 뇌의 어느 한 부위에서만 국한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거미줄에 나방이 걸리면 거미줄 전체가 출렁이는 것과 같다. 거미가 걸린 부위가 더 많이 흔들릴 따름이다.

마음현상은 어떻게 뇌신경망으로 체화될까? 마음은 뇌신경망의 활성이다. 오(감)문이든 의문이든 인식과정을 통한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관련된 뇌신경망이 활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거미줄이 흔들리듯 뇌신경망이 흔들리면[뇌활성이 일어나면] 뇌신경망은 반드시 변한다. 그것은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지점인 연접(시냅스 synapse)의 연결강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연접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다. 연접가소성으로 인하여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이 변화되면 새로운 신경망이 생성된다. 마음이 일어나며 생겨나는 변화된 뇌신경망이 체화된 마음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뇌는 체화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유식학자들은 체화된 마음을 훈습(薰習)된 종자(種子)라 하였다.

살면서 경험하는 그 많은 마음이 모두 새로운 신경망을 생성할 수 있을까? 물론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고 중요하고 특이한 경우들이 기억(뇌신경망)으로 체화된다. 뇌는 가치판단도 하기 때문이다. 뇌에 있는 100조 개가 넘는 연접들이 11차원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이다. 뇌의 정보저장 용량은 무한하다는 뜻이다. 우리의 뇌는 삶의 경험을 무한대로 체화할 수 있다. 그렇게 체화된 마음은 세월을 따라 점점 더 풍성한 내용을 쌓고 그것은 나의 서사시가 된다. 그들이 문득문득 하나씩 의식 속으로 올라오는 것이 나의 추억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빛바래고 망각한다. 체화된 마음은 모래(沙)성 같아서 쉽게 허물어지기 때문이고, 그것 또한 연접가소성 현상이다.

추억과 같은 의문인식 대상은 어떻게 의문으로 들어올까? 오문(五門)을 통하여 들어오는 감각은 의근(意根)이 마중 나가서(17찰나 인식과정에서 네 번째 찰나의 마음, 오문전향) 전오식을 완성하고(다섯 번째 찰나의 마음), 이를 받아들인다(여섯 번째 찰나의 마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의문 안으로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된다. 의문 안에서 받아들인 전오식을 조사하고(일곱 번째 찰나의 마음), 결정한(여덟 번째 찰나의 마음) 다음 속행(javana) 과정을 거친다. 의문인식과정에서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이 없다. 그 마음들을 건너뛰어 ‘결정하는 마음’부터 시작한다. 오문 인식과정의 여덟 번째가 찰나의 마음인데, 의문 인식과정에서는 이 마음을 의문전향의 마음(의문전향심, mano-dvārāvajjana)이라 한다. 체화된 마음이 활성화되어 인식대상이 되면 곧바로 의문전향심이 그 대상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불러들이고 조사하는 단계가 생략되었다. 이는 인식대상이 이미 의문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즉, 체화된 마음은 이미 의문 안에 있다. 의문 안에 있기에 의근이 이들을 포섭하여 의문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이 생략된다. 단지 결정하는 마음(의문전향심)이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속행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왜 어떤 생각이 문득 일어날까? 뇌신경과학적 언어로 표현하여, 왜 체화된 마음들 가운데 잠잠하던 어떤 신경회로가 갑자기 높은 활성을 가져 의문전향심의 관심을 끌까? 뇌신경회로는 항상 활성을 갖고 있다. 조용히 있는 신경망은 없다. 다만 조용히 웅얼거릴 뿐이다. 유식학자들은 이를 아뢰야식(훈습된 종자)이 무시로 폭류같이 흐른다고 하였다. 어떤 신경회로의 활성이 의문전향심을 불러일으키려면 그 활성이 커져야 한다. 어떤 연유로 그 특정 신경망의 활성이 커질까?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암묵적 자극이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자극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암묵적인 단서(자극)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어떤 명시적 단서가 되는 계기가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찌개의 무를 보는 순간 어릴 때 그 무맛이 떠오른다. 친구의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초등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찌개의 무’에 의한 시각, 미각 및 후각이, 친구의 ‘초등학교 이야기’라는 청각이 나의 기억, 즉 ‘체화되어 있는 나의 서사시’ 뇌신경회로를 자극한다. 그렇게 하여 커진 신경망의 활성은 의문전향심의 표적이 되어 의문인식이 일어난다. 서로 연관된 정보들은 서로 연결되어 저장된다. 하나의 마음이 떠오르면 연관신경망을 타고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은 이어진다. 심상속(心相續, citta-dhāra, 마음의 흐름)이다. 그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는 뇌신경 근거이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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