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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숨결이 배인 산사

기자명 법보신문

600년 아름드리 은행나무
10년 지난 지금도 떠올라


<사진설명>영국사 전경

한복려와 영국사

내가 충북 영동의 영국사를 10년 전쯤 찾았던 이유는 어머니께서 여러 차례 영국사에서 혜원스님을 만났던 장면을 이야기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절이름이 왠지 더 멋지게 느껴지고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함과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로 그리워 해왔기 때문이다.

영국사 ! 왠지 사모하는 마음까지 생기니 가지 않고는 못견딜 정도가 되어 용단을 내려 영국사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혼자 찾아와 혜원스님을 만났던 곳. 그곳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내겐 더욱 다가왔다. 한 20년까지는 안 되었을꺼다.
어머니는 한때 전통음식조사 중 사찰음식연구를 하기위해 음식솜씨가 좋다는 스님들을 수소문하여 전국을 찾아다니신 적이 있었다.

고모님에게서 소개받은 음식솜씨 좋은 스님이 혜원스님이셨고, 마침 영국사에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단번에 달려가 뵙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 인연이 시작되어 절음식을 하나하나 배우게 되었고, 스님을 모시고 학생들에게도 그 솜씨를 알려 주었다. 또 10년전에는 성철 큰스님의 만장행사에서 사찰음식전시까지 하고 공양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지금은 그 인연이 어머니에게서 딸인 나에게로, 혜원스님의 상좌였던 정관스님에게로 이어져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가 스님을 찾아 갔을 때는 마침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짓는 일을 하고 계셔서, 충분히 이야기를 못하고 인사만 나눈 정도 였다. 아마 그때 영국사는 보수공사를 하던 때였고 스님은 잠깐동안 그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 즉 음식공양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시고 계셨던 때였다.

내가 영국사에 찾아 갔을 때의 기억으로는 사찰은 거창한 은행나무에 가리워져 그리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도 사찰모습보다는 600년이나 되었다는 둘레 11m가 되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영국사는 신라 문우왕때 원각대사가 ‘만월사’라 하여 창건하였고 효소왕이 피난 왔던 곳이며, 고려 문종때는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하고, 공민왕은 난을 피해 머물며 영국사라고 했단다. 왕들이 피난 와서 ‘나라의 태평함과 백성의 편안함을 기원했던 곳’ 그곳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나 천여년을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니 감사함이 절로 난다.

그 절은 관음정사로 경관이 좋은 곳도 아니고 사찰의 모습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나에겐 스님의 인정이 숨어 있는 곳이기에 나의 안식처, 고향, 친정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어머니가 오붓한 시간을 가진 곳이었고 찾아가면 그 절의 신도들과 사람 사는 순수한 인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영국사와 관음정사가 음식으로 인하여 맺어진 곳이기에 매우 각별한 곳이다.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영국사가 국가의 안녕을 빌었던 곳이라면 이 어려운 시기에 나라의 주인도 한번쯤 발걸음을 하여 백성의 편안함을 기도해 볼만도 한데....
(궁중음식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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