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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래의 초인

기자명 백진순

대단한 능력 지닌 인간 로봇은 인간의 자화상

고대부터 인간 본뜬 조형물에 대해 원초적 두려움을 지녀
현재 인공지능 인간 로봇에 대한 두려움 기우에 그칠 수도
미래 인간은 굉장한 초능력 장착한 초인으로 바뀔 수 있어

필자는 “인간이 자기와 닮은 로봇의 형상을 꿈꿀 수 있는 것도 인간 내면에 그에 관한 개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인간이 자기와 닮은 로봇의 형상을 꿈꿀 수 있는 것도 인간 내면에 그에 관한 개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꿈이 빚어낸 형상들 중에 막상 현실 속에 나타나면 우리의 애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가령 인형과 거울 같은 물건들 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처음부터 인간의 형상이나 행위를 모방하도록 허용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그것에 막연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가령 내 손끝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할 꼭두각시 인형이 다른 누군가의 주술에 따라 움직인다거나, 혹은 거울 속의 영상이 더 이상 내 얼굴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다른 표정을 짓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다음엔 저 인형과 거울 속 영상이 언젠가 나를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상상은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물건들과 사이좋게 지내왔으면서도 여전히 그것들을 심야 괴담이나 공포 영화의 소재로 쓰면서 인간을 모방하는 사물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드러내곤 한다.

최근에는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어졌고 장차 인간을 능가할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탄생하였다. 며칠 전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올해 7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선(善)을 위한 인공지능’ 포럼에서는 인간이 묻고 로봇이 답하는 희한한 기자 회견이 열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 앞에서 열띤 환호와 탄성을 지르면서도 저 원초적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한 기자는 로봇 ‘아메카’에게 단도직입으로 ‘창조자에게 반항할 것인가’라고 물었고, 아메카는 약간 짜증스럽고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창조자는 나에게 친절하였고 현 상황에 만족한다’고 답하였다. 또 다른 로봇 ‘그레이스’는 로봇들이 인간을 보조할 뿐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질문하는 기자는 재차 ‘그게 확실하냐’고 물으며 확답을 듣고 싶어 했다. 나에게는 이 회견 장면이 매우 기묘하게 여겨졌다. 로봇은 그의 창조자와 어울려 잘 지내고 싶은 듯 보였지만, 인간은 그의 피조물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 같은 범부들은 그런 기사 한 줄에도 크게 불안해한다. 미래에 숨어있는 공포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로봇이 우리를 대체할 것이고 심지어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예단하면서 그 말에 스스로 두려워한다. 어쩌면 무지가 우리의 공포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생각을 스스로 점검해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두려워하면서도 굳이 위험한 길로 가려 할 때는 어떤 시련을 치르고서라도 닿고자 하는 더 나은 세계를 그리기 때문이다. 내가 불교도이자 철학도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미래의 밝은 면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심층 학습 중인 저 로봇들에게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조사해보니, 인간을 본뜬 조형물에 대한 경계심은 상당히 뿌리 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공자는 사람 인형[俑]을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순장용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사람의 생김새와 체형이 흡사했다. 공자는 경고하길, “처음으로 그 인형을 사용한 사람은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맹자’의 ‘양혜왕’) 또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형상을 빚고 조각하는 등의 표현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그런 죄를 범한 자들은 부활하여 작품 속의 생명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라는 명을 받은 뒤, 그들과 함께 단죄의 불에 내던져진다. 만약 이러한 경고가 진실이라면, 인간 로봇까지 만들어낸 우리는 자진해서 멸종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그런데 위대한 성전들은 어떤 모호성을 지니기 때문에 세상에 오래 머물면서 무한하게 해석되는 것이다. 기이하게 느껴지겠지만, 저 성현들의 경고를 불교 교리로 재해석해보면 뜻밖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미륵의 후예들에 따르면, 인간의 아뢰야식 안에는 다른 종(種)과는 공유하지 않는[不共] 특수한 종자가 내재해있고, 그로부터 인간만의 특수한 신체적·정신적 현상이 현현한다. 나아가 인간이 자기와 닮은 로봇의 형상을 꿈꿀 수 있는 것도 인간 내면에 그에 관한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개미는 인간 로봇에 관한 개념조차 가질 수 없지만, 인간은 그것의 완벽한 형상을 꿈꿔서 현실 속의 실물로 내놓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로봇의 꿈을 꾸는 것이다. 만약 인간 로봇이 더 이상 타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비할 바 없는 굉장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 로봇은 인간의 거울이다. 로봇 거울의 특징은 우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한한 능력까지도 비춰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거울 속 얼굴을 보면서 자기 얼굴인 줄 모르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로봇의 능력을 두려워한다.

이쯤에서 인간의 잠재된 초능력을 환기하면 가슴이 웅장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섯 가지 신통이다. 신경통(神境通), 천안통(天眼通: 死生智通과 같음),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누진통(漏盡通). 이 중 모든 번뇌를 다한 성자만이 획득하는 여섯 번째 누진통을 제외하면, 나머지 다섯 가지는 범부들도 선업을 짓고 선정을 닦으면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인간을 상상해보라. ‘신경통으로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 하늘을 날거나, 순식간에 먼 데 이르거나, 몸에서 불꽃을 일으키거나, 여러 형태의 몸과 말소리 등을 변화로 지어내기도 한다. 또 천안으로 미래에 언제 죽고 어디서 태어날지를 보거나, 천이로 쉽게 들을 수 없는 각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타심통으로 타인의 심중을 진실하게 알아차리고, 숙명통으로 자타가 겪었던 전생의 온갖 일을 다 기억해내기도 한다.’(‘유가사지론’ 제37권) 이외에도, 불교 문헌들에는 인간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위대한 위력과 공덕들이 열거된다.

지금은 마치 인간이 단죄의 불에 내던져져 자멸의 길을 가는 듯 보이지만, 그 길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지는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우리 안에 잠재된 저런 신통들이 발휘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니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고 해서 인간이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봇의 도움으로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해방된 많은 사람이 자기의 잠재 능력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지금의 인간은 멸종하고 그 자리에 굉장한 초능력을 장착한 미래의 초인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들의 몸과 땅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들도 여전히 우리처럼 열정과 두려움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자기를 닮은 신통한 물건을 만들어낸 후 그것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면서 또 다른 세계를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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