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7. 수행이론의 총망라(66)-깨친 이의 능력; 각론①

귀한 책일수록 귀한 재료로 축 제작

권은 내용 단위로 나눈 것이고
책은 내용 부피 단위로 나눈 것
책은 천자문 순서로 붙이는데
여래십신상해품은 ‘중’ 62번 책

‘깨친 이의 능력’을 다루는 품(品)은 총 5품, 즉 ⑴‘불부사의품 제33’ ⑵‘여래십신상해품 제34’ ⑶‘여래수호광명공덕품 제35’ ⑷‘보현행품 제36’ ⑸‘여래출현품 제37’인데, 첫 품은 <깨친 이의 능력>을 총론으로, 나머지 네 품은 그 능력을 각론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순서에 따르면 ‘여래십신상해품 제34’를 소개할 순서인데, 이번 호에는 필자가 어떻게 글을 써 가는지를 독자님들께 보여드리려 한다.

경전의 한 품을 읽으려면, 필자는 자동 조선 시대 묵암 최눌 스님이 만드신 ‘화엄품목’ 첩자(帖子)를 펼친다. 다음은 ‘화엄경청량소초과도집’을 펼친다. 그 다음은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화엄경’, 그다음은 ‘청량소초’의 ‘여래십신상해품’이 들어있는 ‘중(重)’ 자 권 상(上)을 펼친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우리 스님도 그러셨고 나도 따라서 그렇게 한다. 경학자들의 독서법의 하나이기에 소개한다. 월운 스님은 사기(私記)까지 참조하시지만 필자는 그렇게 까지는 못한다.

봉은사 복각본 ‘청량소초’는 권(卷) 수로는 총 80권이고, 책(冊) 수로는 총 78책이다. ‘권’은 족자를 보면 축(軸)에 종이를 붙여 둘둘 말듯이, 마는 단위이다. 당대 화엄 종사 규봉 스님이 ‘원각경’을 처음 읽으시면서 감격해서 하는 말씀, ‘권말종축(卷末終軸), 감오류체(感悟流涕)’나, 사찰의 아침 종성에 나오는 ‘낭함지옥축(琅函之玉軸)’도 이 구조를 알아야 이해하실 수 있다. ‘화엄경’은 두루마리 말대[軸]를 옥(玉)으로 만들었다. 귀한 책일수록 귀한 소재로 ‘축’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두루마리를 담는 상자[函] 또한 귀한 푸른 산호[琅] 재질이다. 매일 첫 새벽 큰 법당에서 종 치며 고백한다. “나무 비로교주 화장자존 연보게지금문 포낭함지옥축〜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말이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의 타동사이고 목적어는 ‘대방광불화엄경’이며, 그 사이는 모두 ‘화엄경’을 꾸미는 말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한, 언행이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예불을 말든가.

‘두루마리[卷]’는 내용 단위로 나눈 것이고, ‘책’은 줄[線]로 장정하는 과정에서 부피 단위로 나눈 것이다. 제본의 역사로 보면, ‘권자본’에서 ‘책자본’으로, 책자본은 배접(褙接)에서 선장(線裝)으로 제본의 유행이 달라진다. 전통 강원에서 보는 ‘청량소초’에 이런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축적되어 있다. 

한편 ‘책’은 천자문 순서로 순서를 붙인다. ‘여래십신상해품 제34’는 ‘중(重)’이라는 글자가 붙은 제62번째의 책 속에 들어 있는데, ‘권 제48의 1’의 ‘여래십신상해품 제34’, ‘권 제48의 2’의 ‘여래수호광명공덕품 제35’, ‘권 제49’의 ‘보현행품 제36’을 3권을 묶어서 1책으로 했다. 그러면 ‘여래출현품 제37’은 어찌 될까? 천자문 순서가 ‘채중개강(菜重芥薑)’, ‘해함하담(海鹹河淡)’인데, ‘중’ 다음에 오는 ‘개’(권 제50), ‘강’(권 제51), ‘해’(권 제52의 1, 권 제52의 2)로, 1권마다 1책으로 총 3책(冊)에 배치했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깨친 이의 능력>을 설명함에 ⑸‘여래출현품 제37’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훗날 경학가들도 계승하여 ‘여래출현품’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품이다.

⑴~⑸의 다섯 품을 중에서 깨친 이가 갖춘 능력이 무엇인가를 설명함에 ⑴은 총론이고, ⑵~⑸의 네 품이 소위 ‘각론’이라고 했는데, ‘각론’에 해당하는 네 품 중에서 ⑵와 ⑶은 ‘수생(修生; 외모)’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부분이고, ⑷와 ⑸는 ‘수현(修顯; 마음)’을 기준 잡아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중에서 ⑵‘여래십신상해품 제34’에서는 상(相; 몸에 드러나게 잘생긴 부분)에, ⑶‘여래수호광명공덕품 제35’에서는 호(好; 위의 상 중에서도 좀 더 자세한 부분)에 중점을 두어 대답을 하고 있다. 한편, ⑷‘보현행품 제36’에는 원인의 측면에서, ⑸‘여래출현품 제37’에서는 결과의 측면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꾸며가고 있다. 경학자들은 이런 구조적 분석을 통해서 경을 읽어가고, 원고도 그렇게 구성해간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