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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 바탕돼야 철학의미 이해 가능”

기자명 법보신문

아라마끼 교수 인터뷰

교수님께서는 텍스트의 층위분석이라는 상당히 엄격한 문헌학적 연구방법론을 동원하시면서도 예컨대, 대승불교의 십지사상을 보살도의 현상학이라고 규정하십니다. 의미도출 방식이 전혀 다른 문헌학과 철학이 교수님의 내부에서 충돌하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이해에 기초해서만 철학적 의미의 도출이 가능합니다. 비판적 층위분석은 학적인 방법으로 고타마 붓다의 근본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봅니다. 문헌학이 결여된 철학은 리스 데이비스나 와츠지 데츠로(和拾哲朗) 등의 예에서와 같이 서양철학적 전제에 사로잡힌 이야기만을 늘어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자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교토학파의 거두인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 선생이 좋은 예입니다. 선생은 철학자이면서도『攝大乘論』을 원문 그대로 인용할 정도로 해박한 원전 해독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니시타니 선생이 불교학과의 나가오 교수를 방문해서 空개념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말문이 막힌 나가오 교수는 대화 내내 “나루오도” (그렇군요!)로 일관했습니다. 섭대승론을 두 권으로 완역한 나가오 교수가 공은 문화적 창조력이라고 일갈하는 니시타니 교수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니시타니 교수의 공의 철학이 상당한 문헌학적 토대를 갖추었기 때문이지요.

교수님은 텍스트의 층위분석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습니까?
아마도 폴 헥커(Paul Hacker) 교수를 위시한 독일의 인도학 연구자들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는 드는군요. 폴 헥커 교수의 논문집(Kleine Schrift)에는 인도 구전문헌의 연구방법론에 대한 몇 편의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불명의 전승문헌을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사한 논의를 다루는 문헌들 상호간의 사상사적 연관관계를 발견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이러한 인도학의 연구방법론은 불교의 전승불전들을 다루는 데도 원용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80년대 초반 제가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에 가서 슈미트하우젠 교수와 두 학기에 걸쳐 공동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이 연구방법론에 대해 많은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슈미트하우젠 교수도 유사한 방법론을 구사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의 결론은 언제나 상당히 비관적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초기불전에 대한 층위분석의 결과 제가 발견하게 된 고타마 붓다의 인간적인 고민들에 직면하면서 도리어 불교의 가능성에 대한 더 큰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문헌학적 엄밀함에 대한 훈련은 제가 교토대의 인문과학연구소에 근무할 때 당시 중국불교 최고의 대가였던 쯔카모토 젠류(塚本善隆) 선생 등에게서 영향 받은 바도 큽니다.

한국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은 고전한문 중심의 불교연구가 상당히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붓다의 근본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상당히 다채롭게 펼쳐져 있습니다. 한국의 유능한 젊은이들이 불교의 현대적 가능성을 믿고 좀더 근대적인 연구방법론과 학문적 엄밀함으로 한국불교학의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믿습니다.
박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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