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봉오동 전투’(1920.6)와 ‘청산리 전투'(1920.10)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가장 통렬한 승리’로 손꼽힌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이, 청산리 전투는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는데,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도 활약했다. 두 장군은 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함께 육사의 종합강의동인 충무관 앞에 조성돼 있다. 그러나 두 장군은 올해 안에 헤어져야 한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교내에서 교외로의 이전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교외에 남게 될 세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도 육사 내 어디로 옮겨질지 정해지지 않았다.
학계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홍범도 장군은 15세 때 평양 감영에서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에 입대했다. 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후 제지공장의 노동자, 금강산 출가를 통해 조선사회의 부조리와 민족의식을 체득했다. 을사늑약(1905) 후 일제 침략의 자행을 목도한 후 1906년경 포수들로 주축을 이룬 의병대를 조직해 반일투쟁에 나섰다.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무기와 화약 등을 지원받으며 투쟁의 전선을 확대했다. 일제는 총기를 소지한 것 자체만으로 사살할 수 있는 단속법(團束法)으로 맞섰다. 이에 의병대는 고전했다. 경찰과 헌병은 물론 일진회원들로부터도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무기는 물론 화약도 제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의병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던 이유라고 한다.(1908.10)
근거지를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한 홍범도 부대는 독립군 양성을 위한 기지 건설에 주력했다. 그 결실이 대한독립군 결성이다.(1919) 홍 장군을 사령관으로 한 대한독립군은 조선 총독부 예하 일본 정규부대를 상대로 혁혁한 승리를 거뒀다. 그중에서도 ‘봉오동 전투’ 승리는 압권이다.
김주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은 논문 ‘홍범도의 항일투쟁과 역사적 의의’를 통해 “홍범도는 군인으로서 지녀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이를 실천한 용장”이라며 “전투의 최종 목표인 ‘적의 섬멸’을 위해 정진하였음을 그의 장기간의 항일투쟁에서 보여준 특징”이라고 했다. 육사 또한 2018년 6월7일 ‘봉오동 전투 전승 98주년 기념 국민대회’에서 “독립전쟁 중 몸소 보여주신 숭고한 애국심과 투철한 군인정신은 위국헌신 군인 본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관생도들에게 참다운 군인의 귀감”이라며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정부와 여당. 국방부가 문제 삼는 건 ‘소련 공산당 가입’이다. 국방부의 주장은 이렇다.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 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불법 남침하여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라는 입장을 견지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홍범도 지우기’가 맞다.
홍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으면 안 될 만큼 ‘소련 공산당 가입’이 문제가 될까? 아니다. 국방부와 한 총리가 언급한 ‘불법 남침’ ‘6·25전쟁 자행’과 연관된 공산당은 ‘스탈린 공산주의’다. 이건 상식이다. ‘레닌의 공산주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 차이를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홍 장군은 소련 공산당에 입당(1927)한 후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고려인 강제 이주(1937)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정미소 노동자로 살다가 별세했다.(1943) 홍 장군에게는 전향할 ‘조국’조차 없었다.
일각에서 분석한 것처럼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 사관’에 빠져 있다면 ‘홍범도 흉상 이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독립‧항일 운동을 평가절하하며 친일 세력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윤 정부 내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최근까지 부르짖는 ‘자유’는 항일에 나섰던 그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방부는 잊어선 안 된다.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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