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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부모 사이

기자명 진원 스님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에는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 ”라고 나와 있다. 

요즘 교육계는 교사와 학부모가 나뉘어 패싸움을 하는 양상이다. 그 누구를 비난할 수도, 비난받을 수도 없어 보인다. 한창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업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인 학교에서 나쁜 기억 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 그때는 성적표도 복도에 보란 듯이 내걸었고, 그 성적에 따라 때리고 맞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나 인권 감수성은 별로 없었다. 좀 맞더라도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매’가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뿐인가, 맞을 이유는 백가지도 넘었다. 

필자도 20년 가까이 유아교육 현장에 있었다. 그때도 학부모들은 과도하다 싶을 만큼 교권이나 학사운영에 관여하고 싶어 했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존중받는 인간의 가장 기저에 성립되어야 하는 인성보다는 ‘가르쳐야’ 한다는 일방적인 교수법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자원으로 해석하는 천박한 교육기조에서 비롯된 ‘가진 것 없는 나라에서 인적자원뿐’이라는 정부의 인식은 조기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유치원생들에게도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영어, 한글, 수학, 발레, 컴퓨터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잘 하는 아이’와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해맑고 명랑한 웃음 대신 친구보다 잘 해야 한다는 경쟁구도가 생기기 시작했고, 학부모들의 욕심도 커져갔다. 그렇게 우리의 교실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놓고 엉키기 시작했다. 애초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인성의 밑그림은 물 건너가기 시작했다. 교육현장은 그야말로 학교와 교사, 학부모는 혼연일체가 되어 좋은 대학으로 줄을 세웠다.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은 일등과 꼴찌로 줄이 세워졌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은 피해자가 되어 가고 있다. 

백년대계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교육청은 학교에 문제가 발생하면 늘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뒷짐을 지기 일쑤였다. 오히려 문제가 일어나는 학급의 교사는 페널티를 받아야 했고, 학교는 은폐하기에 바빴다. 건국 이래 만들어진 성적 중심의 인재양성의 목적은 더욱 견고해져 난공불락의 성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학교의 문제,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학자들이 대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학생들의 답안지처럼 지금의 문제를 진단할 수 있고, 답안도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실행할 의지가 교육청도 학부모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도 어린이 헌장을 꼼꼼히 다시 읽어 봤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면, 부처님이 늘 하신말씀에 의지하여 발원해 본다. 

자본이 잠식한 학교가 아닌, 기계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가 지배계급이 되는 학교가 아닌, 일등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잠재력을 뽐낼 수 있는 학교가  돼야 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희생과 봉사, 감사, 기쁨, 환희, 인내, 우정 등등의 아름다운 감정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이 표창을 받는 학교의 모습을 발원한다.

나는 요즘 chatGPT를 배우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이 난다. 인간은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을 갖고 싶어 하고, 인공지능 로봇은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의 숭고한 감정을 닮아가고 싶어 서로 충돌하는 영화다. 내가 챗GPT를 배운다고 하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는 스님 혼자 일하셔도 되겠네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가운 인공지능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의 숭고한 감정을 심어줘야 한다. 교권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인권은 더욱 중요하다.

진원 스님 계룡사종합사회복지 관장 suok320@daum.net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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