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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 

기자명 진우 스님

전생에 아무리 큰 죄 지었어도 마음이 공하게 되면 모든 죄는 소멸

도움을 주었어도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인과가 발생하지 않아
금강경 수지 독송하면 일체가 다 공하여 무주무상의 실상법신
분별 없는 무심으로 정진하고 무주상보시 행해야 최고의 기도

죄는 실체가 없으니 자성 또한 없다. 내가 죄라고 분별할때 죄는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따라 죄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법보신문DB]
죄는 실체가 없으니 자성 또한 없다. 내가 죄라고 분별할때 죄는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따라 죄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법보신문DB]

부차 수보리 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復次 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이금세인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 阿縟多羅三貘三菩提) 또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운다 하더라도, 전생의 죄업이 큰 까닭에 마땅히 삼악도에 떨어질 사람이겠지만, 금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벼이 여김과 업신여김을 받는 것만으로 선세의 죄업을 대신 멸하고 아울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악도라 함은 지옥‧아귀‧축생을 말함이다. 다른 뜻으로는 우수(憂愁)와 사려(思慮), 모욕(侮辱)과 병고(病苦), 횡액(橫厄)과 사망(死亡)을 말한다. 선세죄업(先世罪業)이라는 것은 전생에 지은 죄에 끼친 업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세에도 전생과 같은 습업이 나타나게 됨이니, 1초 전이라도 전생인 것이다. 과거에 지은 모든 악행으로 끼친 심리적 고통이나 육체적 고통을 선세죄업이라 한다. 육조혜능 스님은 선세(先世)는 곧 앞생각의 망심이요, 금세(今世)는 뒤 생각의 깨달은 마음이니, 전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면 이 죄업으로 인하여 응당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시(今時)의 현념(現念)이 깨우쳐 밝음으로써, 선세의 죄업을 모두 멸하게 되는 것이다. 

곧 죄근(罪根)이라는 것은 본래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망령되고 잘못된 마음이 머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죄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곧 보리를 얻었기 때문이라 하심이다. 이러한 고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를 불러 이르시되, 만약 전생에 많은 죄업을 지어서 고통 받는 악도에 떨어질 처지에 놓였더라도, 지금 이 경을 수지 독송하여 마음을 깨닫게 된다면, 전생의 죄업은 사라지게 되고, 대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업신여기게 되고 가벼이 여기는 정도로만 전생의 죄업을 대신할 것이니, 이는 이미 마음을 깨친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심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나에게 이득이 되고 좋은 것을 선택하려 한다. 하지만 좋다는 것은 싫고 나쁜 인과를 똑같이 생기게 하므로 좋은 만큼 싫고 나쁜 것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업을 통해서 즐거움과 기쁨을 얻었다면, 그에 상응한 괴로움과 슬픔, 고통의 과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니, 얻은 만큼 잃는 것이 인과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분별에 따른 인과의 고통을 면할 수 있다. 인과의 업에 의해 좋은 업이 나타날 때가 되면 그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잘 될 것이고, 나쁜 업이 나타날 때가 되면, 아무리 좋은 사업도 고통과 괴로움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인과의 업을 멸하고 분별하지 않는 공한 마음을 가져야 사업도 잘될 뿐더러, 설사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의 데미지가 없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답 역시, 도와줘도 좋고 돕지 않아도 좋다. 다만, 도움을 주었을 때 그에 따른 대가를 바란다면 도움을 줘도 준 것이 아니게 되고, 반대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에 따른 미련과 분별심이 없다면 이 또한 도와주지 않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도움을 주었을 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흔연스럽게 도와주어야 인과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그 자체로 중도적인 복이 되는 것이고, 만약 도움을 주지 않는다하더라도 미련과 집착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하다면, 차라리 도와주는 것이 났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 이득을 바라서 즐거움과 기쁨을 얻게 된다면, 그에 상응한 인과가 생겨서 언젠가는 괴로움과 슬픔, 고통의 과보를 받을 터,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공한 마음과 무심한 마음으로 묵묵히 그저 행하거나 또는 행하지 않을 뿐, 한마디로 뒤끝이 생겨 스스로 불편한 과보를 받지 않아야 한다.

부차 수보리 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復次 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이금세인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 阿縟多羅三貘三菩提) 또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운다 하더라도, 전생의 죄업이 큰 까닭에 마땅히 삼악도에 떨어질 사람이겠지만, 금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벼이 여김과 업신여김을 받는 것만으로 선세의 죄업을 대신 멸하고 아울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전생에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이 경을 통해 마음이 공했으므로, 전생에 지은 죄 또한 공하게 되는 것이니, 모든 죄가 소멸되었다 할 것이다. 다만 업신여김이나 모함을 당했다하더라도, 이는 업신여기고 모함을 한 이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이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고 했다.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음에 자성 또한 없는 것이다. 내가 죄라고 분별을 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므로, 마음에 따라 죄가 생긴다는 말씀이다. 

조금은 극단적인 사례일수 있지만 살생을 했다 치더라도, 죄와 복, 살생과 방생 등의 분별심이 없어서 공하고 무심한 마음이라면, 살생으로 인한 죄과는 없을 뿐더러, 그에 따른 인과 또한 없는 것이므로 고통의 과보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살생에 의한 물리적인 죄과로 인하여 감옥에 간다거나, 다른 이로 하여금 복수를 당할지라도, 이러한 인연에 대해서도 이미 공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과 괴로운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느니,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아무런 마음의 부담은 없다. 그렇다면 살생을 당한 측에서 보자면, 자신의 업에 의해 살생을 당하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즉 살생을 당한 이의 전생 죄업이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태풍으로 인해 뭇 생명이 죽임을 당하였다면, 태풍을 나무랄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마찬가지로 태풍에 의해 죽임을 당한 측의 업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선세의 죄업이 공하고 후세의 악도가 공하고 금세의 업신여김이 공하고, 후세의 악도가 공하여, 이 모두가 공하게 된다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과를 알면 마음이 공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은 연기 작용에 불과할 뿐이니, 마음을 둘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집착하는 고락의 인과 감정만이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니, 이를 여실히 잘 안다면 집착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공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 평안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 말을 하면서도 인과를 생각하면 말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평안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인과를 생각하면 욕심과 성냄이 사라지는 동시에 마음이 평안하며, 어떤 행동과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인과를 생각하면 무리한 행동과 무리한 움직임은 사라지고 늘 마음이 평안하다.

수보리 아념 과거무량아승지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須菩提 我念 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수보리야! 내가 과거 한량 없는 아승지겁 동안, 연등불 회상 이전에는 팔백사천만억나유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어 헛되이 지나쳐버린 적이 없었느니라.

아승기(阿僧祇)는 무앙수(無央數)이다. 즉 한없는 가운데의 숫자이니 수를 셀 수 없다는 뜻이다. 나유타(那由他)는 천만 억 이라는 수이다. 10억을 1낙차(落叉)라 하고, 10낙차를 1구지(俱胝) 즉 100억이며, 10구지(俱胝) 즉 1000억이라 한다. 따라서 8백4천만 억 나유타(那由他)란 여기서 1000억을 곱해야 하는 것이므로, 한량없는 수인 아승기(阿僧祇) 무앙수(無央數)가 된다. 또 승사(承事)는 부처님의 뜻을 순종하고 봉사한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법신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난 이 경을 통해 장소가 공하고, 시간이 공하고, 죄업이 공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 경을 수지 독송하는 이는 필경에 안팎 일체가 다 공하여 무주무상의 실상법신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연등부처님 이전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나 되는 수많은 부처님께서 출현하셨을 때, 한 분도 빼지 않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 승사(承事)하셨음이니, 이 일이 어찌 쉬운 공덕이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곧, 마음이 공하고 공하면, 모두가 공하여 일체의 유무를 떠나고, 모든 시공을 떠나고, 생사와 고락을 떠났으므로 삼라만상 인드라망 모두가 부처님 아닌 것이 없으니, 이 자체가 공양 승사(承事)라는 말씀이다. 즉,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다.

“스님!! 부처님께 내가 직접 염불, 정근, 참회기도를 하는 것과, 절에 스님께 부탁하여 기도비를 내거나 등을 켜고 축원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 걸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다. 딱히 둘 중에 비교하여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함께 병행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보통은 본인이 직접 기도하는 것이 가장 수승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더라도 공덕이 되는 데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당연한 말이겠으나 어느 쪽이라도 정성이 최우선이다. 최고의 정성은 무주상(無住相)하는 마음이다. 즉 한다하지 않는다, 또는 잘된다 잘되지 않는다 등의 분별심을 갖지 않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기도 하는가? 최고의 기도 방법으로는 염불, 독경, 간경, 정근, 참회 등 어떤 것을 행하더라도 무심한 마음으로 부처님 말씀인 법을 잘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초월한 만큼, 잘되고 안 되고의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완벽하고 완전한 성취 즉 무상보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이루어지게 됨이니, 생전의 삶과 사후에 이르기까지 평안과 편안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현실적으로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기도이다. 물론 간절하게 정성을 다한다면 그 복보(福報)와 공덕으로서 모든 일을 당연히 성취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복이 쌓임으로써 성취한 만큼의 기쁨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이는 사상(四相)의 인과가 발생하게 됨으로, 얻은 만큼 잃게 되는 과보를 받기 때문에 사실은 불완전한 성취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기도란, 분별하지 않고 무심으로 무조건 정진하는 기도이며, 설사 내가 직접 기도를 하지 못하더라도 무주상보시로서 가지가지의 법보시를 통해 그 복을 쌓아가는 것이 그 다음으로 최고의 기도라 할 것이다. 기도비와 불전, 시주와 공양 등은, 언젠가는 다시 수천수만 배의 복덕으로 돌아오게 되는 씨앗이 될 것이며, 바라지 않는 무주상 보시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복덕이 된다.

진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sansng@hanmail.net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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