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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이강수(담연·66) - 상

기자명 법보

고등학생 때 불교 접하고
삶 이유에 대한 의문 잡혀
은퇴 후 본격적으로 공부
육자명호 필사·염불 시작

7월29일 동산반야회 제6차 전국염불만일회 26차년도 정진대회 1일차 밤이다. 달빛 아래 크게 자리 잡은 김천 직지사 만덕전에 100여 불자들이 좌복 위에 앉아 염불삼매에 빠져있다. 의식법사들의 정근목탁소리, 북소리, 요령소리와 불자들의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가 황악산을 울렸다. 

문득 즐기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BTS·블랭핑크 공연장에 가서 떼창을 한다면, 오늘 나는 여기서 다른 불자들과 함께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며 즐기기로 했다. 동산반야회 법주 법산 스님이 외친다. “더욱 힘차게, 신나게, 멋있게 염불합시다.” 

리듬에 절로 팔이 흔들리고, 다리도 들었다 놓았다 들썩인다. 이제는 몸마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 앞에 아미타부처님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석가모니 부처님, 약사여래 부처님이 지긋이 날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여기가 법당이라는 것도 잊고, 입으로 즐겁게 “나무아미타불” 노래하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신나게 춤출 뿐이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내 목소리에 귀가 취하고, 내 흔들리는 몸에 마음이 취하니 달빛 아래 막걸리 없어도 되는 날이었다.

중학생 때까지 성적이 꽤 우수했다. 그러나 막상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1학년과 2학년 내내 바닥권에서 있었다. 공부를 포기하진 않았지만 쉬이 집중하지 못했다. 한동안 방황하다 ‘룸비니’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학생들끼리 사찰을 찾아다니는 불교동아리였다. 선배들을 따라 자연스레 불교를 접했고, 어느 순간 ‘무상(無常)’이라는 낱말이 마음을 붙잡았다. ‘왜 사는가’라는 의문이 마치 화두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다른 것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해인사로 달려갔다. 일주일간 홍제암에 머무르며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출가 인연은 없이 돌아와 본격적으로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부처님의 가피 덕분인 지 다행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 화두가 다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공부하지 못하고, 엉망진창인 학점을 받으며 2학년이 됐다. 더이상은 안되겠다 여겨 자원 입대했다. 몸을 괴롭히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삶의 이유에 대한 족쇄는 13년만인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근처의 한 공사현장에서 풀렸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누워있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임어당 선생의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다가 갑작스레 몸이 공중에 뜨는 듯했고, 온 세상의 빛이며 시간이 멈췄다. 온몸의 세포가 환희로 꽃망울들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노자, 장자, 도연명 등 성현들의 삶의 자세를 배우며 진실한 삶 속에 즐거움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후로는 세속에서 평범한 중생으로 살아가는 데 걸림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35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곳으로 인연이 이어졌다. 동산불교대학에서 불교를 배우던 친구의 권유로 불교학과 2년 과정에 들었다.

과제로 졸업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1080번을 적어내야 했다. 육자명호를 쓸 빈칸이 한 페이지에 108줄 인쇄된 A4용지 500장을 받고는 참으로 난감했다. 항상 불교를 논리적으로만 배우고 싶어하는 내 사고방식에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정토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집구석에 넣어두고는 수개월째 눈길을 피하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참선을 잘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요한데, 한 페이지를 아무 잡념 없이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삼아 시작하고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 페이지는커녕 ‘나무아미타불’ 6자를 쓸 동안에 생각이 과거로 미래로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이튿날부터 매일 밤 목욕재개하고 책상에 앉아 참선하듯 오후 11시부터 자정 전까지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정성껏 집중해 필사했다. 1년 7개월간의 행복한 염불수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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