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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교 진두지휘 하는 김대중 포교사

기울던 군법당그의 손길 닿으면 어느새 인파 북적


스스로를 불교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에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매일의 즐거움, 환한 웃음을 안겨준 것도 불교였고, 하루라도 남을 돕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도록 만든 것도 불교였다.

사랑하던 어머님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죽음. 죽음을 알고자 읽었던 한 권의 책은 그를 불교의 세계로 인도했고, 십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인연은 어느새 굵은 동아줄이 되어 150여명의 포교사를 이끌고 군포교를 진두지휘하는 오늘날의 그를 있게 했다.

조계종 포교사 김대중씨(64). 그의 앞에는 언제나 조계종 포교사단 부단장, 포교사단 군포교 특위위원장, 주식회사 한국 H&S 회장 등 거창한 명암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소탈한 성품만큼이나 그는 어느 것도 붙이지 않은 ‘포교사’란 호칭을 좋아한다. ‘포교사’란 남에게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라는 뜻. 부처님 공부를 하면서 이보다 더 나은 자격증이 어디에 있겠는가?



“편한 자세로 단잠 자라” 이색 법문 인기



일주일 중 매주 일요일은 그에게 가장 분주한 날이다. 남들에겐 편안한 휴식의 날이겠지만 그에게 일요일은 가장 바쁜, 그리고 특별한 날이다. 군장병을 포교하기 위해 군법당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군법사가 없어 외롭고 힘든 법당, 이런 가난한 법당을 일구고 장병들을 불교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장병들에게 줄 음식을 마련하고, 그 날 해야 할 법문을 챙기고, 그리고 군법당에 도착하면 어느새 해는 하늘 한가운데 선다. 환갑이 훌쩍 넘어버린 나이. 일주일간의 피로가 몰려오기도 하련만, 장병들의 상담사로, 불교를 알리는 전령사로, 또 부대 안의 애로사항들을 체크해 도와주는 해결사로서 동분서주 바쁘기만 하다.

그는 법문도 특별나게 한다. 법회 서두를 매번 “가장 편한 자세에서 되도록 졸도록 하라”는 말로 장식한다. 훈련으로 힘이 들었을 장병들을 배려한 그의 마음씀이다. 그러나 그의 살갑고 따듯한 법문은 잠을 쫓는 가장 좋은 명약이어서 이를 지키는 장병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의 법회가 장병들로 북적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맡은 법당 중 가장 큰 성과를 일구어 낸 법당이 바로 김태복 장군의 사연이 담긴 호국 백일사다. 그가 호국 백일사를 처음 찾았을 때 군법당에 나오는 장병은 겨우 40여 명. 군법사도 없고, 법당을 지은 지휘관마저 모함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법당의 쇠락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은 지 불과 2년. 법당에는 어느새 350여명의 장병들로 붐벼대는 가장 잘 나가는 군법당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경쟁 관계에 있는 군 교회에 군목사가 상주하는데도 50여명의 장병만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부대 안에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작은 이변에 불과하다. 진짜 불가사의한 것은 화합하기 힘들고, 뭉치기 힘들다는 교계 풍토에서 창립 3년만에 150여명의 전문 군포교사를 길러, 400여 곳의 법당에서 군포교를 하고 있는 조계종 포교사단 군포교팀을 일구어낸 능력이다.

“군포교사들이 군법당에 갈 때마다 쓰는 평균 비용이 약 10만원 정도 될 겁니다. 종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자비를 써가며, 휴일도 반납하고 군포교를 하겠다고 나서는 군포교사들이 15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나 좋은 도반을 참 많이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그는 “군포교사들을 볼 때마다 군포교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얻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말도 그의 타고난 겸손이다.



군 전문 포교사 150명 길러내



집안의 눈치가 보여 더 이상 힘들다는 사람, 종단에서 재원을 좀 지원해 줘야 하지 않는냐는 볼멘소리, 군포교사들 사이의 이견 등 모든 어려움을 그는 넉넉한 가슴으로 받아냈다. 생업을 뒤로하고 틈틈이 각 팀장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고, 흔들리는 포교사들은 만나 면담을 하고, 그리고 힘이 부치는 팀에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지원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불교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포교사’를 150여명이나 길러낸 것이다.

그러나 포교사들이 그를 믿고 따르는 더 큰 이유는 그가 온 몸으로 보여주는 참된 불자의 모습이다. 10년도 넘게 매일 좬금강경좭을 독송하는 것은 물론 80년대 후반 동산반야회에서 기초 교리 강좌를 들을 것을 시작으로 동산불교대학, 동국대 사회교육원, 동국대 불교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지금은 동산불교의식교육원과정을 공부하는 등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법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있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죽음에 대해 알고자 방황했던 시절 그의 인생을 바꿔 논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고르던 도중 우연히 만난 좬열반경의 세계좭였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불교를 접하고, 또 배움을 찾아 오늘날의 그가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군법당을 다녀올 때마다, 밤늦게 불교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되 뇌이곤 한다. “힘이 닿는 데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겠노라고…”



취재 후기 - 법문 주제 구하느라 매일 새벽까지 인터넷 서핑



그는 협력회사를 포함해 1000여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중견회사의 회장이다. 매주 많은 시간을 군포교일과 불교공부에 쏟고 있는 그에게 사업에 지장은 있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현답(賢答). 처한 장소에 맞게 다른 것은 모두 잊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 오히려 불교를 배우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겨 일의 능률이 높아지고, 회사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날린다.

그는 경력만큼이나 교계의 적지 않은 단체에 인연을 맺고 있다. 적극적인 성품이니 만큼 일의 중책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일. 너무 많은 단체의 모임을 맡다보면 원할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단체도 있을 법한데 그가 있는 단체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비밀은 그의 상을 내지 않는 씀씀이 때문. 그는 다른 사람 모르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분위기를 돋구는 재미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함께 일하던 포교사들에게 딱 한번 원망을 산 적이 있다. 몇 달전 치른 딸의 결혼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은 것. 조촐하게 치르기 위해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명을 했지만, 포교사단 부단장에, 군불교특위위원장이라는 그의 직책이 주변에 부담을 줄까봐 알리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성품을 잘 아는 포교사들의 생각이다. 그는 매일 새벽까지 인터넷을 끼고 산다. 정보통신에 관계돼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사업을 위해 인터넷은 필수. 그러나 그가 새벽까지 인터넷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좀더 다양한 불교 정보와 신세대 장병에 맞는 법문 주제를 인터넷 속에서 골라내기 위해서다.

그는 전국 800여 개의 군법당 모두에 군포교사를 파견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불교에 대한 그의 열정.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싶어 감탄이 절로 난다.


글 김형규·사진 황도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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