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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60) (8) 의상과 화엄종의 사회적 성격(16)

일본 저술 ‘약초’에서 의상 계통과 다른 별개의 신라 화엄 법계 확인

‘약초’는 인도‧중국‧신라‧일본으로 이어지는 화엄종의 법통 기록
화엄종의 조사로 인도 7인, 중국  3인, 신라 4인, 일본 5인이 나열
의상과 법장 아닌 원효와 법장 융합 형태의 화엄 교학 일본 전래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신라의 역사에서 ‘중대(中代, 654∼780)’ 126년간은 전성기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문화의 황금기였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였고, 종교·학술·예술 등 문화의 각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성취한 시기였다. 3국 가운데 가장 약소했던 신라가 통일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됨으로써 한반도 주민들의 에너지가 일시에 응축하여 폭발한 결과였다. 이 시기 중국 대륙에서도 이른바 성당(盛唐)의 문화를 구가하던 때로 신라는 동아시아에서 당에 버금하는 문화국가로서의 위상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고대문화 건설의 주역을 담당하던 불교만 하더라도 당에서 황금기를 이루어 다양한 학파나 종파들의 불교사상이 경쟁했다. 법상종·화엄종·계율종·밀교·정토종·선종 등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성립되면서 경쟁하고 있었는데, 신라에서도 그러한 다양한 사상과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때로는 당에 역수출하여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등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렇게 다양하고 역동적인 신라중대의 불교를 의상의 화엄종과 원효의 통합불교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당시 불교계의 주류는 의상과 원효의 불교가 아니었다. 단지 이 2인의 불교는 이전의 ‘중고불교’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는 혁신적 불교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대’를 지나면서 의상의 화엄종만이 특히 주류적인 종파로 발전하면서 출발 단계부터 주류적인 불교로 대두된 것으로 확대 이해하게 되었다. 신라중대의 화엄학승들에 대해 서술하는 가운데 이러한 당시 불교계 상황을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하는 것은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한 나무, 그것도 조그만 가지에만 매달리면서 전체 숲을 이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늘날 불교학계의 폐단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다.

지난 호에서는 중대에 활약한 화엄학승 가운데는 의상과 그 문도들 이외에도 수많은 화엄학승들이 활약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들 화엄학승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들 다수가 황룡사에 소속되었거나 그곳을 무대로 하고 있었음을 주목하였다. 이들 가운데 중대 전반기에는 원효와 사복, 후반에는 법해·지해·표원·연기·범여·견등·명효 등의 이름이 확인되는데, 의상 계통 이외의 화엄종 법계가 별도로 전승되고 있었음을 유추케 해주는 다음의 자료가 주목된다. 일본에 전하는 ‘화엄종소립오교십종대의약초(華嚴宗所立五敎十宗大意略抄)’(이하 약초로 표기함)라는 문헌의 말미에, 인도에서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화엄종 조사들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보현보살(普賢菩薩)·문수보살(文殊菩薩)·마명보살(馬鳴菩薩)·용수보살(龍樹菩薩)·견혜보살(堅惠菩薩)·각현보살(覺賢菩薩)·일조보살(日昭(照)菩薩)·두순보살(杜順菩薩)·지엄보살(智嚴(儼)菩薩)·법장보살(法藏菩薩)·원효보살(元曉菩薩)·태현보살(大(太)賢菩薩)·표원보살(表員菩薩)·견등보살(見登菩薩)·양변보살(良弁菩薩)·실충보살(実忠菩薩)·세불희보살(世不喜菩薩)·총도보살(總道菩薩)·도웅보살(道雄菩薩)”(大正藏 72 200中). 

‘약초’는 저자가 미상이지만, 일본 불교계에서 저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내용은 표제와 같이 법장의 교판인 5교10종, 특히 5교의 내용을 개설한 것인데, 그 말미에서 화엄종의 조사 19인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그 가운데 보현부터 일조까지 7인은 인도 계통의 인물, 두순부터 법장까지 3인은 중국 화엄종의 인물, 원효부터 견등까지 4인은 신라의 화엄학승, 그리고 양변 이하 5인은 일본의 인물들을 나열한 것으로써 인도·중국·신라·일본으로 이어지는 화엄의 법통을 상정하게 하는 것이다. 나열 순서는 법통이 전자부터 후자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주목되는 것은 중국의 지엄-법장의 화엄종이 신라의 의상으로 계승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원효에게로 이어지고, 또한 의상의 법손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태현·표원·견등으로 계승되는 것으로 열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요시즈 요시히데(吉津宜英)는 이 ‘약초’의 화엄학 계보를 분석하여 의상의 법계와 다른 신라의 어떤 학계(學系)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태현·표원·견등 등의 교학의 특징을 원효와 법장의 교학을 융합시킨 형태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원효·법장 융합 형태”의 교학은 신라의 화엄학승(또는 일본의 신라 유학승) 심상(審祥)에 의해 일본의 나라 불교계에 전래되었고, 도다이지(東大寺) 건설에 관여했던 로벤(良弁, 689~773)에 의해서 일본 화엄종의 전통이 되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요시즈는 원효의 화엄사상과 법장의 화엄교학을 비교하여 동이점을 밝히고, 태현·표원·견등 등의 저술을 분석하여 일본에 전래된 신라 화엄사상의 한 흐름을 보여 주는 것이며, 원효와 법장의 교학을 융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그리고 이 융합 형태가 일본에 전해진 증거로서 ‘약초’의 교설 내용이 태현·표원·견등 등 3인의 교학과 상통하고 있음을 밝혔다.(吉津宜英, ‘日本の華嚴思想と元曉大師’1987)

요시즈의 주장은 불교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함으로써 더 이상 진전된 해석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으나, 신라의 다양한 화엄사상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고 본다. 그런데 ‘약초’에서 원효의 불교를 계승한 인물로 거명된 태현·표원·견등 등 3인의 생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현이 경덕왕대(742~765)에 활약하고 있었고, 견등은 태현의 저술을 인용하고 있었던 것을 보아 이들은 대개 8세기 후반~9세기 전반기의 인물들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당시 이들 3인의 불교사상의 연구 경향은 경전에 대한 주석, 그 가운데서도 주로 원효와 법장의 ‘화엄경’과 ‘대승기신론’에 대한 주석을 연구하고, 그 주석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려는 것이 대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상의 직계 법손들에 의한 화엄교학 연구가 의상의 ‘일승법계도’ 주석에만 집중되었던 분위기와 대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라 불교학계의 분위기는 8세기 중엽 이후 당의 불교계에서 경론 자체의 해석보다 앞선 학자들의 주석서를 연구하고 비판하는데 그쳤던 연구 경향과 같은 맥락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파나 종파가 일단 확립됨에 따라 근본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작은 해석상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인식하여 논쟁하였고, 결과적으로 논쟁을 통하여 회통하려는 결론으로 이끌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번쇄한 주석 위주의 불교학 연구 경향은 창조적인 새로운 해석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하는 한계점을 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약초’에서 화엄종의 법계에 속하는 인물로 열거된 4인의 신라 학승 가운데 태현은 실제 화엄종이 아닌 법상종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유가종의 조사로 추앙되었고, 그가 주석한 경주 남산의 용장사(茸長寺)는 미륵장육상을 주불로 봉안한 법상종 사찰이었다. 태현에게는 50여부 100여권의 저서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성유식론학기’ 8권 ‘보살계본종요’ 1권 ‘범망경고적기’ 2권 ‘약사경고적기’ 2권 ‘기신론내의약탐기’ 1권 등 5부뿐이다. 저서 가운데는 ‘고적기(古迹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특징인데, 그것은 각소의 주석에서 요점을 따서 기록하고 자신의 의견보다는 이전 주석서의 설을 근거로 경론을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기신론내의약탐기’에서는 법장의 ‘기신론의기’와 원효의 ‘기신론소’ 또는 ‘별기’의 주석을 병렬시켜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효 불교사상의 의도를 계승한 위에 법장의 교학을 접속시키는 방법을 통하여 이질적인 법장의 교학을 모순 없이 도입, 원효의 사상을 선양하려던 의도로 이해된다. 

‘범망경고적기’에서 법장의 ‘범망경보살계본소’를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원효의 ‘범망경보살계본사기’의 입장을 중시한 것에서도 ‘약탐기’에서 보인 것과 같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태현은 법장이 지엄의 규정을 계승하여 ‘범망경’을 3승으로 판석한 것을 따르지 않고, 원효가 1승 분교로 판석한 입장을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성유식론학기’는 가장 방대한 유식학의 저술로서 전편에 걸쳐 자은기나 원측 등 유식학자들의 주석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지만, 모두(冒頭)에서 법장의 ‘화엄오교장’에 유래하는 청변(淸辯)과 호법(護法) 사이의 공(空)·유(有) 논쟁 문제를 거론한 것은 원효의 ‘대승기신론별기’에서의 화쟁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국 태현의 교학은 유식학이 중심을 이루어 경덕왕 12·13년(753·754) 화엄종 법해(法海)와의 법력 대결의 설화를 남겼으면서도 화엄학의 영향과 원효의 화쟁사상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원측-도증으로 이어지는 신라 유식학승들의 학설을 고집하지 않고 화엄사상이나 일승사상에 대해 조화적인 태도를 보이게 하였다. 태현의 이러한 융회적인 입장은 요시즈가 말한 “원효·법장의 융합형태”에 부합되는 것이며, 본래 유식학승이면서도 ‘초기’에서 원효의 불교를 계승한 화엄학승의 1인으로 열거될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고려 예종 6년(1111)에 수립된 ‘혜덕왕사비’에서 태현을 원효에 이은 법상종의 조사로서 추앙했던 역사인식에도 부합되는 것이라고 본다.         

다음 표원은 황룡사의 승려였음이 주목된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지만, 그의 저서 ‘화엄경요결문답’에 법장의 제자 혜원(慧苑)의 설, 8세기말 9세기 초의 저술로 추정되는 슈레이(壽靈)의 ‘오교장지사기(五敎章指事記’가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8세기말 이후 인물로 보인다. 그의 저술에는 원효와 법장의 설이 대폭 인용된 반면, 의상의 설은 2회의 인용에 그치고 그 가운데 1회는 의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의상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의 ‘화엄경요결문답’ 4권은 ‘화엄경’과 화엄교학상의 중요한 문제를 들고, 주로 원효와 법장의 설을 인용하여 문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태현의 ‘기신론내의약탐기’의 경우와 같다. 그리고 표원의 설을 인용한 일본의 슈레이가 원효 영향을 크게 받았던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다음 견등은 청구사문(靑丘沙門)이라는 기록과 11세에 종산승통(鐘山僧統)에게 투신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고, 단지 8세기 중엽 이후 인물로 추정될 뿐이다. 저술로는 ‘화엄일승성불묘의’ 1권과 ‘대승기신론동이약집’ 2권이 현존한다. 전자에는 태현이 자주 언급되어 있고, 후자에는 ‘간정기(刊定記)’와 ‘법경론(法鏡論)’이 인용되어 있는데, 특히 ‘법경론’의 저자는 경법사(憬法師), 곧 668년에 당에 유학했던 유식학의 순경(順璟)으로 태현 계통의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의상이나 표원은 언급이 없는 반면 원효를 구룡(丘龍), 법장을 향상(香象)으로 호칭하며 2인을 이상적 불자의 전형으로 병칭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화엄일승성불묘의’는 원효와 법장 등 여러 학승의 설을 인용하면서 일승의 성불론을 전개한 것이며, ‘대승기신론동이약집’은 유식론과 기신론의 같고 다른 점을 논구한 저술인데, 특히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리고 같은 점을 논증하기 위하여 원효의 ‘십문화쟁론’을 비롯한 여러 저술과 법장의 ‘오교장’ 등이 원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696호 / 2023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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