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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느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명상-1

기자명 일중 스님

지혜의 길 안내하는 중요한 분기점
​​​​​​​
몸·마음서 일어나는 느낌들
지혜롭게 다루고 관찰 필요
어떤 느낌을 느끼든지 간에
온전히 마음챙김·알아차리기

사람들은 느낌 때문에 행복해하고, 느낌 때문에 괴로워한다.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재산이나 사랑, 명예나 성공인가?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요인들보다 좀 더 근원적이고 직접적인 요인은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일 것이다. 좋은 느낌, 행복한 느낌,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 행복하다고 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불쾌한 느낌을 느끼면 불행감을 느낀다. 이렇게 느낌은 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느낌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빨리(Pāli)어로 느낌을 ‘웨다나(Vedanā)’라고 한다. ‘웨다나’는 몸과 마음에서 ‘느끼는 것, 느껴지는 것’이다. 영어로는 feeling, sensation이라고 하고 한문으로는 수(受)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웨다나’, 느낌은 감정이나 정서로 진행되고 분화되기 이전의 일차적이며 직접적인 맨 느낌이다. 감정이나 정서는 이 웨다나가 주는 정보에 따라 일어나는 좀 더 복잡한 후차적인 정신현상이라고 한다. 느낌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중립의 무덤덤한 느낌 세 가지가 있다. 이런 세 가지 느낌은 몸에서도 일어나고 마음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세 가지 느낌들을 지혜롭게 다루고 관찰하는 것이 느낌관찰명상이다. 

그럼 느낌은 왜,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가? 아니면 창조주가 매 순간 창조하는가? 아니다. 느낌은 전적으로 조건 발생이다. 원인과 조건이 있을 때 느낌이 일어나고, 원인과 조건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진다. 느낌은 매 순간 매 찰라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거기엔 늘 조건들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자면, 눈이 보이는 시각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의식과 함께 느낌이 일어난다. 다양한 조건들로 생멸 변화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마음챙기며 관찰하는 것이 바로 느낌관찰 수념처(受念處), 수수관(受隨觀) 위빠사나명상이다. 그럼 먼저 붓다가 제시한 느낌 관찰을 ‘대념처경’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비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위 인용문을 보면 반복구가 많아서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리해보면 간단하다. 현재 이 순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중립의 무덤덤한 느낌, 어떤 느낌을 느끼든지 간에 온전하게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탐진치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사람들은 느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느낌에 휘둘리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업의 원인을 만드는 무의식적 자동반응의 굴레에 빠지곤 한다. 바로 여기에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의 명상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느낌은 분명하고 거칠게 때로는 미세하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며 생멸 변화한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명 속에서 탐진치로 계속 반응한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자라면 마음을 예리하게 챙겨서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이 확립될 때까지 어떤 느낌일지라도 평정심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느낌관찰명상은 괴로움과 해탈의 두 갈림길에서 지혜와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697호 / 2023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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