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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서 이름 날린 시각 디자이너, 불교에 감성 더해 ‘MZ’ 사로잡다

  • 무진등
  • 입력 2023.09.18 15:34
  • 수정 2023.09.18 15:55
  • 호수 1697
  • 댓글 0

심효빈 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 대표

녹록지 않은 환경에 긴 방황 겪어…어머니 권유로 황룡사 찾아
30세 이름 내건 사업 시작…관공서·기업·사찰 등 의뢰 줄이어
종교 이유로 거래처 계약 해지 수두룩…키링·엽서 등 굿즈 출시

길고 긴 방황의 시간에서 만난 불교는 ‘삶의 의미’가 됐다고 말하는 심효빈 대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부처님 가르침이 자신을 잡아줬고 수행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길고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좋은 시설에 좋은 학교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그 모든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갈수록 커졌고, 시련은 디자이너 지망생 심효빈(혜경)을 나락으로 밀어냈다.

만화, 잡지 보는게 좋았고, 포토샵 툴을 다루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환경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시각디자이너라는 꿈을 잠시 접고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다. 빨리 취업이 가능한 특성화고 조리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은 분노와 원망이 됐고, 자기 자신을 갉아 먹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디자인 전공이 돈이 많이 들어요. 집에 손 벌리기도 그렇고 아르바이트해서 해서는 턱없이 부족하고 주변에 집안 도움받아서 척척 하는 친구들 보면 부러워서 열등감이 심했죠.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주위에서 자꾸 돈을 벌라고 하니까 그 시간이 많이 힘들었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던 그녀를 잡은 건 다름 아닌 불교였다. 울산 황룡사 신도였던 어머니를 따라 구법순례를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터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방황을 거듭하던 그녀를 두고 볼 수만은 없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사찰을 찾아가 볼 것을 권유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황룡사를 찾아 부처님을 마주한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신도들과 함께 경전을 읽자 속이 후련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은 연이어 찾아왔다.

어머니로부터 사정을 들은 주지 황산 스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리고 눈높이에 맞춘 수행법을 안내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스님에게 배운 대로 그녀는 매일 ‘천수경’을 독송하고 ‘금강경’을 사경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수행에만 매달리며 부처님을 찾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절을 가지 못할 땐 황산 스님이 네이버 밴드를 통해 생중계 해주는 예불에 참여했다. 불교를 마음의 의지처로 삼고 부처님 가르침을 계속 체득해나갔다.

그러나 당시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다. 생업에 치이다 보니 절을 찾는 일도, 수행을 하는 일도 벅찼다. 자연스레 불교는 등한시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했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그리고 서른 살, 그토록 원하던 전업 시각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오랜 염원을 담아 ‘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를 열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나갔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디자인 의뢰는 연이어 들어왔다. 입소문이 나면서 기업, 공공기관에서도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울산에서 ‘시각디자이너 심효빈’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매장도 확장을 거듭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궁금한거에요. 무속인을 찾았죠. 한 1~2년간 외도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잊고 지냈던 그 시간이 떠오른거죠. 그러면서 다시 절을 찾았어요.”

2020년 황룡사를 다시 찾은 그는 가장 먼저 불교대학에 등록했다. 교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수행만 했던 지난날이었다. 체계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알고 싶었고, 불교란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었다. 불자이기에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많은 스님의 법문이 듣고 싶었고, 전국 곳곳의 성지도 둘러보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두 번 비행기를 타고 김포 개화사를 찾아가 주지 송강 스님의 법문을 들었고, 월정사에서 진행하는 명상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스님·신도들과 함께 구례 화엄사, 사성암 등 순례를 다니며 신심나는 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법화경’을 사경하고 운전할 때나 일상 속에서도 염불을 했다. 지탱하기 힘든 삶의 버거움을 느낄 때마다 절을 찾았다.
 

길고 긴 방황의 시기에 만난 황룡사 주지 황산 스님과. 
길고 긴 방황의 시기에 만난 황룡사 주지 황산 스님과. 

“불교가 다시 ‘삶의 의미’가 됐어요. 구분할 수 없는 거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부처님 가르침이 나를 잡아줬고, 수행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삶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니 젊은 친구들에게도 불교를 알려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산증인이기 때문에 주변에 많이 알리고 있어요.”

그렇게 로고, 브랜딩 작업에 집중하던 그가 불교 굿즈로 눈을 돌렸다. 그가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MZ’로 통칭되는 젊은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불교에 관심 갖게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전통에 매몰된 불교, 심오한 불교는 청년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변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일이 좋았고 불보살님을 그리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묵묵히 갈길을 갔다.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때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신앙과 예경의 대상인 부처님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종교적 색채를 줄인 귀엽고, 친근한 모습의 부처님이 그녀의 손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졌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스티커, 키링, 포스터, 엽서 등 다양한 굿즈로 제작돼 소비자들과 만났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주 연령층은 10~30대, 젊은 친구들은 열광했다. 그들에게 불교란 ‘힙’한 종교였고, 그 이미지에 부합한 것이다. 심 대표는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이것저것 엄청 많이 물어봤다. 할머니 선물로 구매하기도, 흥미롭다고 사가는 고객도 있었다”며 “지나가던 사람들도 매장 밖에 붙어 있는 부처님 그림에 자연스레 이끌려 매장으로 들어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페어에서 불교 굿즈를 선보이며 완판을 기록했다.

일찌감치 실력으로 인정받아 이름이 알려진 디자이너 심효빈씨는 감각적인 불교 굿즈로 불교계에서도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매년 출품하던 디자인 페스티벌에 불교를 들고 나갔고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홍콩일러스트페어에까지 참여해 불자는 물론 비불자, 심지어 외국인들에게까지 인기를 끌었다. 준비한 굿즈는 완판되기도 했다.

“제가 불교를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굿즈를 만들어서 팔겠다는 욕심을 부려도 되나 싶더라고요. 이렇게 만드는게 부처님 가르침을 잘못 전파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자현 스님과도 우연히 인연이 닿으면서 본격적으로 책 디자인도 맡게 됐다. 워낙 합이 좋다보니 스님은 또 다른 작업을 제안했다. 월정사 봉찬기도 디자인이었다. 로고부터 앱 디자인까지  그녀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작업물이 호평을 받으니 교계에 소문이 퍼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사찰 행사 디자인, 사찰로고는 물론 조계종 포교원에서도 ‘전법ON! 부처님법 전합시다’ 로고 의뢰가 들어왔다.

그는 불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신행활동을 기록하고 사찰 예절, 문화 등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다. 불교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면서 MZ세대 겨냥 포교 영역을 나름대로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 공공기관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유튜브에 불교 관련된 영상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기독교 신자인 팀장이 추추비니 유튜브를 보고 “어떻게 이런 업체에다가 맡기냐”며 다른 업체를 찾아보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기독교 신자인 기존 단골들도 심 대표의 연락을 피했고 종교를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도 했다. 수익을 담당했던 큰 거래처들 절반 이상이 떨어져나가자 그는 “연등회 부스에서 저를 째려보고 가는 분도 있을 정도였어요. 곱지 않은 시선들과 마주칠때면 억울하기도 해요. 작업물만 보면 되지. 그래서 그때 지인들이 말린 건가 싶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불교는 내 삶이고 나와 분별할 수 없는걸요. 불교 관련 작업은 계속 이어갈거예요.”
 

매장에 붙여놓은 포스터.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의 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수백억의 자산가다. 누가 보면 욕심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꿈은 크게 꾸라고 하지 않았나. 이 욕심 또한 불교를 위한 일이라 했다. 경제적 여유를 갖추게 되면 청년들을 위한 사찰을 짓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이 불교로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다. 내가 힘들었을 때 불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보듬어주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인터뷰가 마무리됐을 무렵, 매장으로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번화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추추비니’를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란 쉽지않다. 홍보도 하지 않았음에도 고객은 제발로 찾아왔다. 굿즈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라 전시돼 있는 품목이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구경하다 떠났다. ‘젊은 세대는 불교의 감성을 사고 싶어 한다’고 표현한 심 대표의 말 뜻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97호 / 2023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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